[응모] 막걸리 한잔 하실래요?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2-08-22 16:49:00

만물을 소생시키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이 봄의 이 신비로움 때문에 지루한 기다림도 아름다울수 있다. 영영 봄이 오지 않을것처럼 칼 바람이 기승부리던 겨울밤의 흔적은 옅어만 가고 봄의 도래로 인해 나는 다시금 화사한 랑만을 느껴본다. 그렇다. 희망을 꿈꾸게 하는 봄이다.

요즘따라 창밖에는 보슬보슬 여우비가 풀잎에 간지러운 키스를 하듯 조용히 또 조용히 내리고있다. 그래서인가 웬지 싱숭생숭해진 내 마음을 달래며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고싶어진다. 스파클링와인같은 톡 쏘는 맛도 없고 올드빈티지술 같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맛도 없고 그렇다고 레몬소주같은 새콤달콤한 맛도 없는 그냥 빛갈이 흐리고 맛도 텁텁한 그런 막걸리가 너무나도 마시고싶어지는 이유는 뭘가?

사실, 내가 막걸리에 애틋한 사랑이 생긴건 1년전부터이다. 지난 여름방학, 운 좋게도 "재외동포모국연수"라는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한국에 가게 되였다. 그때 한국친구들이 비오는 날에는 해물파전에 동동주가 제일이라고 해서 한번 같이 가서 먹어본후 부터였다. 예로부터 비오는 날이면 동동주에 파전을 먹는것이 우리 조상들의 오랜 전통이였다는데 사실 그때는 별로 리해하지도 못한채 그냥 그렇겠지 하는 마음으로 본 막걸리, 그렇게 한국에서 처음 맛보게 된 막걸리임에도 불구하고 난 그 맛에 반해버렸고 중국에 돌아와서도 소주 대신 막걸리를 마시기 더 좋아하게 되였다. 한번 반한 막걸리의 매력은 쉬이 잊혀지지 않아 나는 지금도 막걸리에 애착을 느낀다.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술의 일종이며, 맑은 술을 떠내지 아니하고 그대로 걸러 짠 술이다. 이렇듯 막걸리는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이 즐겨 마시는 상징적인 술이라고도 할수 있다. 영화속에서 조선시대 량반들이 미녀들의 우아한 춤사위에 청아한 가야금 소리와 함께 질그릇에 담긴 마알간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인생을 즐기는 장면들을 보며 나는 동경해마지 않았다.

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오늘날 우리가 즐겨먹는 막걸리가 조상님들 시대에는 비참한 운명을 달래는 술이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조선족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정착하고 밭을 갈고 힘들게 삶의 터전을 만들어갔다. 이렇듯 세월을 거슬러 일제강점기에 고달픔의 련속으로 힘들었던 생활속에서도 그나마 막걸리가 있었기에 우리의 조상들은 허기진 배를 달래고 슬픔을 달랠수 있었다고 한다.

 비오는 날, 일터에도 못나가고 수중에 돈은 없고, 방문을 열어보니 한모퉁이에 보이는거란 실파뿐인 가난,막걸리나 한되 받아놓고 파 다듬어 부침개 만들어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소리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시다보면 배도 불리고 취하기도 하였으리라. 우리 조상들의 피가 내몸에 흘러 그런지 오늘같이 마음을 간지럽히는 비가 오는 날이면 난 유난히 아삭아삭 부친 파전 한조각에 막걸리 한잔이 당긴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 수많은 술중에서도 나는 막걸리가 유난히 좋다. 근데 웬지 비오는 날 막걸리를 마시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쓰려온다. 조금씩 잊혀져가는 막걸리가 우리 조선족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나도 모르겠다. 우리는 중국에 살고있는 조선족이다. 어릴 때부터 오성붉은기밑에서 자라왔지만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는 우리가 조선민족임을 재차 확인시켜주고있다. 중국의 방방곡곡에 많은 조선족들이 살고있다. 적은 인구로 치렬한 경쟁속에서도 조선족은 어엿하게 자기위치를 지키고있으며 새로운 변화속에서도 자신의 빛갈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고있다. 이 큰 땅덩어리, 13억 인구를 가지고있는 중국의 곳곳에서 우후죽순마냥 일떠서고있는 조선족 기업가들과 유명인사들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기만 하다. 우리 조선족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자신의 얼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우리 문화를 알릴것이라 믿기때문이다.

1596년, 정유재란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의 후손인 심수관씨는 한국에서 강연할 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작업실에서 물레우에 고령토 진흙 한덩어리를 놓고는 진흙 한가운데 바늘을 꽂고 무얼 느끼냐고 그에게 물었다. 하여 심수관씨는 "돌아가는 물레의 중심속에 움직이지 않는 바늘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돌아가는 물레의 움직이지 않는 중심, 앞으로 네가 추구해야 할 인생임을 기억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때, 그는 그 말의 참뜻을 제대로 리해하지 못한채 끊임없이 기술을 련마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백발의 로인이 되고나서야 아버지 말씀의 참뜻을 깨닫게 되였다고 한다. 그 참뜻인즉 바로 비록 일본땅에 와서 일본말을 하며 살지만 조선도공의 얼을 이어받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뜻이였다. 그렇다, 세상의 물레는 현란하게 돌아가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정체성과 옳바른 가치관은 움직이지 않는 바늘처럼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가야 할것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새로운 것이 갱신, 교체 되고있는 지금, 화려한 유혹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지금, 우리 말과 우리 글, 그리고 우리 민족문화가 자꾸만 작아만 지는 지금, 난 그래도 우리의것, 우리만의 색갈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다. 와인같은 몽롱한 유혹이 없어도 올드빈티지 같은 깊은 매력이 없어도 레몬소주 같은 상큼한 맛이 없어도 오직 한 빛갈 한 맛으로 우리 민족의 하얀 넋과 애환을 담고있는 그 묘한 막걸리맛이 난 좋다. 한것은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하얀 넋과 중국땅에서도 자신의 노력으로 생활을 개척해가고 있는 조선족의 삶을 련상케 한다.

그리고… 오늘도 거울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한 남자, 깊게 패인 이마주름과 반쯤 벗겨진 머리, 이젠 어떤 희망이나 열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보이는 중년을 훌쩍 넘긴 거울속의 남자, 하지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위해 이국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 남자… 늦은 퇴근시간 걸려온 전화 한통, 그토록 익숙하면서도 따뜻한 그 목소리…

"연…연이야, 아빠다. 학교 생활은 잘 되여가니? 허허 아빠는 바라는게 없다. 우리 딸이 자기 몸 잘 챙기고… 하고 싶은것 있으면 아빠랑 말하고… 다 해줄테니까,다. 허허"

깊숙이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한숨처럼 바람에 실어보내고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것만 같았다.

"알았어. 그리구 아빠두 혼자 몸 잘 챙겨. 근데 우리 아빠 술 드셨구나. 기분이 좋아보이네."

이렇게 말하고있는 내 입술은 어느새 파르르 가볍게, 아주 가볍게 떨리고있었다.아빠가 내뿜은 담배연기, 그 쓸쓸함이 내 가슴을 싸하게 훓고지나가고있었다.

"응. 막걸리 한잔했어. 비가 칙칙하게 자꾸 내리니까 네 엄마도 보고싶고 우리 이쁜 딸 목소리도 듣고 싶고 …"

아, 한국에도 비가 내리는구나. 그렇게 막걸리 한잔으로 이국땅에서 홀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달래고있을 우리 아빠, 아빠가 너무도 보고싶다. 오늘따라 막걸리 한잔에 부모님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고마움을 전하고싶다. 우리 조선족의 애환이 녹아있는, 막걸리, 저기요, 막걸리 한잔 하실래요? (전 연)

 

편집: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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