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 잊지 못할 내 고향 훈춘
래원:      2012-08-22 17:01:00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60돐을 맞으면서 나를 키워준 내 고향 연변-훈춘을 잊을수 없어 잠시나마 타향에서 글로 내 고향 연변자치주 창립 60돐에 헌례의 마음을 전달하고저 한다.

오늘의 금삼각 훈춘은 국무원에서 개혁개방 변경도시로 비준하여서부터 20여년의 시간이 흘러 많은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중앙지도부에서 친히 시찰, 방문하여 자치주의 발전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고 개혁개방과 문명건설의 추진에 정신적, 경제적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발맞추어 지금 훈춘은 경제발전의 창구인 도로건설과 문명건설에 일사천리로 매진하고있다. 훈춘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자연록화 풍경이 첫눈에 안겨온다. 산뜻하고 깨끗한 환경은 훈춘의 모든 사람들의 피타는 노력과 지혜와 갈라놓을수 없다.

지금의 훈춘은 중국-로씨야-일본, 중국-조선-한국 등 나라와 통할수 있는 철도를 부설하고 바다로 통하는 항로를 개척하여 관광객들로 붐비고있다.

세월은 류수라고 잡지도 막지도 못하는 세월의 흐름속에서 인생문을 열고 뛰여나온 나는 래년이면 벌써 칠십고개를 넘어서게 된다. 거침없이 흐르는 세파속에서 많은것을 배우고 보고 들으면서 모진 풍파를 겪어왔다. 나이가 들면 잊혀질만도 하련만 웬일인지 더 또렷하게만 떠오르는 옛추억들… 초가집에서 보리밥 먹으며 자라던 그 시절 생각하지 않으려고 좋은 기억만 되새겨보지만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가는 지난 날들을 어찌할수 없이 다시한번 한폭의 그림처럼 떠올려 본다.

나는 중국 북방의 마지막 하류에 위치하고있는 변경, 즉 동북쪽으로는 높은 산을 에돌아 로씨야와 린접되여있고 남쪽은 두만강을 사이 두고 조선과 잇닿아있는 훈춘시 경신진에 자리잡은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곳에서 자랐다. 봄이면 산마다 진달래가 붉게 만발하고 칠팔월이면 아홉개 호수에서는 붕어, 잉어떼들이 아름다운 속을 자유롭게 꼬리치며 헤염치는가 하면 강건너 저편에서 기적소리 울리며 달리는 조선기차도 볼수 있었고 여름에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쏘련 해변가에서 목욕하는 남녀의 모습을 아득하게 내다볼수 있었다. 맑게 개인 날 방천순라만경탑에 올라가면 일본해도 저 멀리로 보인다. 참으로 경치 좋고 자원(토산물, 광산물, 수산물)이 풍부한 꿈결에도 그려보는 언제나 가고싶은 잊을수 없는 정든 고향이다.

우리 세대들은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겪어보았다. 지역마다 경험해온 과거가 다르겠지만 내가 세상물정을 알게 되면서 호조조-초급사-고급사-인민공사 등을 거치고 보리밥, 수수밥으로부터 흰 입쌀밥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해보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잊을수 없었던것은 1950년대초, 조선전쟁이 일어났을 때였다. 그때 나는 열살미만 갓 소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밤이면 등불도 켜지 못한채 두꺼운 검은색 천으로 문을 가려야 했고 어쩌다가 저녁 일찍 먹고 옆집 친구집에 공부하러 갔다가 귀가할 때는 친구오빠가 집까지 바래다주어야만 했다.

내 추억속에 무서운 기억만 남아있는 나날들이였다. 저녁마다 하늘에는 산넘어 쏘련 전등(화경)불빛이 대여섯갈래로 비추고 가끔씩 마을 간부들이 “미국비행기가 떴다. 불을 죽여라.”라고 웨치며 양재기를 두드렸다. 미제가 내가 살고있던 마을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의 조선으로 통하는 권하통상구 두만강다리(경흥다리)를 폭격하려 시도했을 때 쏘련홍군 비행기의 순라로 다행히 지켜졌던 다리도 생각난다. 지금 그 다리는 중국과 조선-라진 그리고 한국-속초로 통하는 보따리장사군들에 길을 열어주고 또한 경제무역에서 없어서는 안될 교량이 되고있다.

1958년도 대약진, 총로선, 인민공사 세폭의 붉은기를 높이 추켜들고 밤에 낮을 이어가면서 3반, 5반, 반우파투쟁과 쏘련빚때문에 대식품 먹던 그 시절, 집체식당화로 죽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학교를 다녀야만 했었다. 1960년대 훈춘시제2고중에 다니면서 수수밥을 먹으며 숙소생활을 했던 시절, 방학이면 집으로 통하는 차량이 없어 백리길을 걸어다녀야만 했었다.

사회주의공작대가 농촌에 내려와 함께 먹고 일하면서 생활하던 시절, 석유등잔불을 사용하던데로부터 전등불을 보게 되였고 보리밥과 수수밥을 먹던데로부터 농지개간을 하면서 흰쌀밥을 먹게 되였다. 밤이면 계급투쟁, 낮에는 로인들은 탈곡하고 젊은이들은 배수구파기와 홍수방지 제방뚝쌓기를 하면서모두 우리 두어깨로 흙을 날라 쌓아올렸다. 다락전도 많이 만들었지만 사회주의공작대가 돌아간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죄없는 간부들이 계급투쟁의 희생양이 되여 루명을 쓰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호된 매를 맞고 외부출입도 못한채 시름시름 앓다가 루명도 벗지 못하고 세상 뜬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다.

1970년대에는 조선과 쏘련의 수정주의를 배격한다고 낮에는 저작학습과 갱도파기를 하다보니 밤이면 옷도 벗지 못한채 잠을 자야만 했다. 때로는 밤중에 비상소집나팔소리가 울리면 전등도 켜지 못한채 뛰쳐나와야 했다. 급한 나머지 남녀가 옷을 서로 바꿔입은채 달려나오기도 하였고 겁나고 무서워 애를 뒤집어 업고 나왔다는 사람들도 있어 참으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뿐이랴, 전쟁준비로 마을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나도 그 행렬에 포함되여 아이들을 데리고 돈화에 피난해갔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년말이면 로동에 따라 분배하는(按劳分配) 원칙으로 벼와 옥수수를 나누었고 콩기름은 한사람당 매달 두냥씩 로동력에 따라 분배하였다. 할당량이 적었던 우리 집은 먹고 살기 위해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일하며 살아왔다.

1980년대초, 개혁개방의 막이 열리면서 농촌에서는 세대별 생산량도급제를 실시하였다. 집집마다 높은 생산량으로 국가에 공량을 바치면서도 배불리 먹을수 있었고 자기가 땀흘려 일한 대가를 마음껏 향수할수 있었다. 또한 로무수출로 국제경제시장에서 외화를 벌어들일수가 있어 집집마다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었다. 고향은 지금 우리 로인들에게 여러모로 많은 대우를 해주고있다. 지금처럼 살기좋은 세월이라면 화초처럼 죽었다. 다시 소생할수만 있다면 푸른 리상과 꿈을 위해 천리마처럼 줄기차게 달리고싶다.

오늘의 훈춘은 교통이 발달하고 록화가 잘된 도시로 국가급 원림도시, 삼림도시, 위생도시로 비준받았다. 지난 4월13일 국무원에서 중국 두만강지역(훈춘) 국제합작시범구의 설립을 비준하였다. 훈춘시는 5만명의 인구밖에 안되던 페쇄된 작은 도시에서 오늘날 20만 인구를 가진 도시로 신속한 발전을 가져왔으며 중국, 로씨야, 조선, 한국, 몽골 5개국 합작의 새로운 력사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중국 두만강지역 국제합작시범구를 건립하는것은 우리 나라와 주변국가인 조선, 로씨야와의 경제무역합작을 추진하며 우월한 지리적위치와 풍부한 자연조건, 다층차의 경제구조와 거대한 개방잠재력으로 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초점으로 되고있다. 훈춘은 특유의 지리적위치로 물류, 자금, 정보 류통의 우세를 갖고있는바 연변지역뿐만아니라 동북 3성의 발전에 기여도가 높은 경제개발구로 발전해나아갈 것이다. 중국 두만강지역국제합작구는 연변의 경제와 사회발전, 그리고 변경지역의 민족단결, 사회조화에 큰 기여를 할것이다.

그때 우리집 열식구 가정에서 칠남매중 맏이로 태여나 인생의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 곤난한 가정생활로 동생들을 위해 고중학업도 끝을 맺지 못하고 중퇴하여야만 했던 시절, 그 시절 내가 이루지 못한 소원을 자식들에 기탁하며 또한 자식들의 성장에 나의 힘을 보태며 지금은 편안한 로년을 보내고있다.

현재 나는 살기좋고 민족향기가 풍기는 정든 고향을 떠나 머나먼 연해도시 청도에서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사시장철 푸른 소나무처럼 손자손녀의 웃음속에서 즐겁게 보내고있다. 하루라도 더 늙기전에 여생을 인생의 마지막 학원-청도 래서시조선족로인협회에서 정든 고향 연변을 그리면서 동북3성에서 모인 로인들과 함께 우렁차게 고향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고 유쾌한 나날을 보내련다.

내가 겪어왔던 그 시절 그 추억들, 나의 후대들은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그 옛이야기들을 이 글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가슴에 새겨두었으면 하는 마음이다.(김추자 )

편집:최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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