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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나와 나의 조국" 어떻게 만들어졌을가? 탄생 그 뒷이야기

2019-09-24 17:21:00     责编:김룡     来源:央广网

원곡 가수 리곡일이 

부른 “나와 나의 조국”

 

 

 

연변의 9살 꼬마 가수 전소희 양의 

“나와 나의 조국”

새 중국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최근 “조국 노래하기” 열풍이 일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와 나의 조국 (我和我的祖国) ”이란 노래가 가장 많이 불리우고 있다. 얼마전 연변의 9살 꼬마 가수 전소희 양도 이 노래로 새 중국 70주년 생일에 축복을 전하기도 했다. 노래 “나와 나의 조국”이 세상에 나온지도 어언 35년이 흘렀다. 친숙한 선률은 이미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했지만 이 노래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지어졌는지 그 배경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준비했다. “나와 나의 조국” 탄생 뒷이야기!

작사가 장려 선생 (좌)  

작곡가 진영성 선생 (우)

진영성 선생이 20분만에 지어낸 선률

“나와 나의 조국”의 작곡가는 진영성(秦咏诚) 선생이다. 일생 동안 지은 수많은 곡들중에서도 진영성 선생의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곡은 다름 아닌 “나와 나의 조국”이다. 진영성 선생은 당시의 창작 배경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 작사가 장려(张藜) 선생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제가 1962년에 창작한 바이올린 독주곡 “海滨音诗”가 정말 마음에 든다면서요, 선률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곡에 가사를 입히고 싶은데 악기 독주곡이라 입히기 힘들다며 이 곡과 정서가 비슷한 곡을 따로 하나 지어달라고 저에게 요청을 해왔습니다.”

곡을 쓰고 있는 진영성 선생

진영성은 당시 북경중앙교육행정학원에 재학중이였다. 어느날 오후 진영성은 장려 선생의 집에 요청을 받았다. 진영성은 장려 선생의 요구대로 선률을 구상했고 20분도 안되여 완정한 곡을 지어냈다. 

장려 선생이 반년의 시간을 들여 입힌 노래말

곡을 받아쥔 그날부터 장려 선생은 악보를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진영성 선생으로부터 곡을 받은 날 장려 선생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악보는 반년만에 완전한 노래로 되여 세상에 나왔다. 

장려 선생이 광서쫭족자치구에 갔을 때였다. 기차로 가는 길 내내 가사만 생각했던 장려 선생은 담배꽁초가 베개를 태워 큰 구멍을 낼 때까지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광서쫭족자치구에 도착한 이튿날 이른 아침 창문을 열어보니 아침 안개에 싸인 초록의 큰 산이 장려 선생의 눈앞에 펼쳐졌다. 산 아래로는 맑은 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장려 선생의 령감을 자극했다. 순간 장려 선생의 머리속에는 “我和我的祖国一刻也不能分割,无论我走到哪里都流出一首赞歌,我歌唱每一座高山,我歌唱每一条河……”라는 시구가 떠올랐고 떠오른 즉시 그는 진영성 선생이 준 악보에 노래말을 입혔다. 그때가 1984년 추석명절 즈음이였다.

장려 선생은 1932년 대련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여났다. 음악을 좋아하는 형의 영향으로 동생 장려도 음악과 함께 즐거운 유년을 보냈지만 그것도 잠시, 일본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면서 어린 장려는 갖은 모욕을 당해야 했다. 한번은 일본군에 잡혀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16세때 해방군에 참군한 뒤로 소년 장려는 문예병으로 활약하면서 로신예술학원에 입학해 공부했다. 걱정없이 예술성을 키워간 시간이였다. 그러나 25살 되던 해 고난은 또 시작됐다. 끊임없는 투쟁과 검토를 해야 했고 개조를 내려가 궂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작사를 해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시절이였다... 그렇게 장장 20년 시간을 보낸 장려는 1979년에야 북경으로 왔고 중앙민족악단 창작실 창작원을 시작으로 국가1급 연출자, 중국음악문학회 부주석을 력임했다. 

작곡가 진영성 선생과 작사가 장려 선생이

함께 “나와 나의 조국”을 부른 유일한 무대

굴곡진 인생을 지나왔어도 조국에 대한 장려 선생의 사랑은 흔들린 적이 없었고 “친애하는 조국”을 노래하고픈 그의 추구 역시 그대로였다. 그의 인생 경력은 희비가 어우러진 “노래”로 승화됐다. 

기자의 취재를 받고 있는 진영성 선생 (좌)

1933년에 태여난 작곡가 진영성 선생은 일찍 료녕가극원 창작원, 료녕악단 부단장, 심양음악학원 부교수, 원장을 력임했다. 장려와 진영성 선생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문화대혁명 시기 장려가 시 한수를 지어 진영성에게 보이면서 둘은 협력을 시작했다. 둘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모두 대련에서 태여나 바다와 같이 넓은 감흥을 갖고 있었으며 모두 새 중국 창건 전에 혁명 사업에 참가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자연의 미, 조국의 미, 정감의 미를 담은 노래말과 곡을 써 사람들을 감동시켰다는 점이였다. 세대를 넘어 전해져 내려온 거작 “나와 나의 조국”은 작곡가 진영성 선생과 작사가 장려 선생이 만수천산을 지나온 정신적 산물이며 당시 한 세대 사람들의 념원이였다. 

작곡가 진영성 선생과 작사가 장려 선생은 2015년과 2016년에 각기 별세했다.  

 

 

상해 포동에서 펼쳐진 

“나와 나의 조국” 깜짝쇼 

 며칠전 상해 포동 륙가취 원형 륙교에서 “나와 나의 조국” 깜짝쇼가 펼쳐졌다. 피아니스트 랑랑이 깜짝 등장해 연주를 맡았고 상해 각 분야 종사자와 시민 남녀로소 할 것없이 륙교에 나와 “나와 나의 조국”을 부르며 새 중국 창건 70주년에 축복을 전했다. 

“나와 나의 조국”을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랑랑

상해 포동 륙가취 상공에 펼쳐진 무인기쇼

    작곡가 진영성 선생과 작사가 장려 선생의 창작으로 1984년에 세상에 나온 “나와 나의 조국”은 35년이 흐른 지금에도 나라에 대한 사랑과 축복을 전하는 최적의 노래로 중국 대지의 상공에 널리 울려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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