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후회없는 선택입니다.”-연변대학부속병원 종양내과 부주임 장송남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8-15 09:53:00

취재를 받고 있는 장송남 박사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취재까지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퇴근 무렵, 기자와 만난 연변병원 종양내과 부주임 장송남 박사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1979년 생인 장송남 박사는 외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연변병원의 대표적 의무일군중 한 사람이다.

2003년 연변대학 의학원에서 석사연구생 과정을 마친 장송남씨는 선배의 추천으로 박사 과정을 이수하기 위하여 한국 연세대학교로 떠났다.

“사실 연구생 과정을 마치고 림상에 종사할 수도 있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다고 생각되여 류학의 길을 선택하게 되였습니다. ”

장송남 박사는, 한국에서의 4년간 류학 생활이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 놓았다고 회억했다. 교수님의 지도 아래 장송남 박사는 매일 12시간에서 14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면서 종양 유전자 치료에 관한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에 정진했다. 4년간 소모한 실험용 쥐도 천마리 이상에 달하지 않았을가 싶다며 장송남 박사는 우스개삼아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훌륭한 교수님을 만나 참으로 뜻깊은 배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몸은 힘들었을 수 있어도 마음만은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는 일을 하다보니 의학에 대한 열정은 항상 식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 연세대학 윤채옥 교수로부터 전달받은 <우수론문상>

장송남씨의 졸업론문은 연세대학에서 우수 졸업론문상을 수여받았다. 그의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였다.

장송남 박사의 고향은 길림성 룡정시이다. 그가 의학의 길을 걷게 된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어릴 때는 큰 포부도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초중 때부터 저에게 의사가 되였으면 하는 바람을 보이시더라구요. 그 과정에 점차 의학에 대하여 애착을 갖게 되였고 대학지원을 쓸 때 연변의학원을 선택하게 되였습니다.”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후 남들처럼 대도시로 진로를 택할 고민도 했었지만 장송남 박사는 결국 30년간 생활해 온 정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작심했다. 어디서나 의사로서 병을 치료하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연변병원에서 근무한후 장송남 박사는 주로 종양 최소 절개 중재적 치료(微创介入) 와 종양 개체화 약물치료의 림상 제1선에 몸담아 왔다.

“최소 절개술은 말그대로 침이나 바늘 하나 또는 도관 하나로 수술을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통적인 수술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반면 수술자국이 작고 또 환자의 고통도 덜어줄 수 있기에 관련 기술도 날따라 발전하고 세계적인 추세로 되고 있습니다. ”

특히 지난 10년간 장송남 박사는 종양의 혈관성과 비혈관성 중재적 치료에서 풍부한 림상 경험을 쌓았다. 귀국후 그는 선후하여 20여편의 SCI 론문과 국내 핵심 간행물 론문을 발표했고 3가지 국가자연과학기금, 한가지 길림성 보건건강위원회 청년과학연구 과제, 한가지 류학귀국인원 과학연구 가동기금항목을 따냈다. 각종 경로를 통해 발급되는 연구경비가 많을 때는 150만원에 달했다.

당지부 회의에서

“직업이 의사이다보니 어디까지나 림상치료에 대부분 정력을 쏟고 있는 실정입니다.”

취재 당일에도 아침 일찍 출근한 장송남 박사는 오전오후로 수술을 진행했고 취재가 끝난후에는 또 환자들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찌보면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것이 일상으로 되여버린 셈이다.

정보화 시대에 모든 업종의 발전은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의학은 더욱 그러하다. 장송남 박사도 재충전을 위해 끊임없이 학습을 견지하고 있다. 병원 차원에서도 교류학습의 기회를 많이 조직하고 있다. 장송남 박사는 2016년 중국의 대표적 병원중 하나인 북경301병원에서 두달간 연수를 받으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였다고 말했다.

“선진적인 기술도 배울 점이 많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굉장히 높은 탐구 열정이였습니다. 연구를 위하여 식사를 거르거나 제시간에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다반사였습니다. 중국 최고 권위의 의무일군들도 그럴진대 저로서는 열심히 하지 않을 리유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였습니다.”

사무실에서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슴 깊이 간직한 그였기에 수술, 진찰, 연구와 같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고된 일상 속에서도 의학이라는 외길을 고집할 수 있었다.

장송남 박사는 항상 어린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아침일찍 집을 나서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가다 보니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다. 하여 그는 주말이나 휴일을 맞을 때면 가족들과 함께 외출을 즐기며 되도록 딸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학교 1학년 학생인 저의 딸애는 그래도 제가 의사라는 데 대해 뿌듯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딸애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큰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딸아이와 함께

장송남 박사는 치료를 받은 환자가 완쾌되여 인사를 전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환자들의 고마움을 담은 묵직한 한마디가 큰 힘을 실어준다고 장송남 박사는 말했다.

“고향사람들을 위하여 조금이나마 뜻깊은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많은 분들께서 정기검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건강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재부라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기자와 작별인사를 나눈후 장송남 박사는 또 병실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글 중앙인민방송국 박민걸

사진 중앙인민방송국 연변편집부 최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