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6-06 16:48:00

래일부터 당장 대학입시다. 해마다 학생과 학부모와 학교와 나라의 관심사이다. 할 공부는 할만큼 다 했고 이제 남은건 실력발휘 뿐이다. 실력발휘는 심리자질이 최고의 변수다. 실력만 충분히 발휘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다 받아들이는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시험에 림했으면 좋겠다.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

“우리 애는 머리만 믿고 공부를 안 해”

학교 다닐 때 여러 부모님들이 많이 치던 대사다. 공부가 리상적이지 못하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무슨 리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럴때 머리라도 좋은 걸로 포장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저 머리로 공부에 조금만 신경쓰면 큰일 난다는 얘기다.

물리선생님이 우리 아버지하고 하는 얘기를 들은적 있다.

“시험문제를 푼걸 보면 다 아는데 답이 잘 나오지 못했습니다.”

참 체면을 잘 세워주는 말씀이다. 내 시험지는 내가 잘 안다. 진짜 문제를 풀 줄 몰라서 답이 틀린거다. 그런데 저렇게 예술적으로 에둘러 말하면 아버지의 체면도 세워주고, 그러나 답은 틀렸다는 명확한 신호도 보낼 수 있는 아주 세련된 언어구사이다.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시다.

어느 연예프로에서 한 녀자연예인이 재벌 4위 안에 드는 가문의 왕자님으로부터 사귀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서 “그럼 제 4대 그룹이네.” 라고 금방 파악했다. 보통 언어습관에서는 3위권이라고 하는데 4위 안이라고 하면 1,2,3위보다는 4번째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재벌이란 자랑은 해야겠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니 상대방의 사생활도 있고 해서 범위를 네개로 넓히느라 했는데 결국에는 다 알아버리게 된거다. 문제를 던진 사람도 맞힌 사람도 다 머리가 좋은데 결국에는 맞힌 사람이 한수 더 우이다.

전에 외가집 마을에는 반에서 공부를 몇등 하냐고 물으면 마을에서 1등을 한다고 약간 동문서답을 하는 소학생이 있었다. 이 마을에서 그 반에 다니는 학생은 두명뿐인데 나머지 한 명은 반에서 꼴등이다. 그러면 얘는 반에서 마지막 2등인셈이다. 그런데 마지막 2등이라고 말하기는 싫은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마을의 1등으로 슬쩍 넘겨버리는거다. 반에서 몇등인가고 물었는데 마을에서 1등이라고 답하는 림기응변은 나쁜 머리가 아니다. 성적이 전부가 아니니 앞으로 어느쪽으로든 큰일을 해낼 학생이다.

시험을 앞둔 저녁자습시간에 보면 굳이 하교시간을 정해놓지 않아도 다 더 늦게까지 앉아서 공부하는게 정상적인 그림이다. 그런데 이럴 때에도 꼭 독보적으로 일찍 집에 가는 애들이 있다. 그런데 또 시험을 치면 성적은 잘 나온다. 그러면 옆의 애들은 더 초조하다. 쟤는 저녁자습 때에도 제일 먼저 집에 가서 자는데 마지막까지 앉아있는 나는 왜 성적이 쟤보다 못한걸가. 초조할수록 성적은 더 오르지 못한다. 그런데 걔가 교실만 일찍 나갔을 뿐이지 집에 가서 일찍 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도의 심리교란전술이다.

공부 얘기를 많이 했는데 다른 분야라고 다를바 없다. 간혹 술자리에서 보면 배갈을 맥주잔에다 부어서 건배를 해버리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진짜 주량에 진짜 성의일 때도 있지만 기선제압의 경우가 더 많다. 보통 이렇게 두잔만 비워버리면 누가 감히 도전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두잔이래 봤자 반근 량이다. 웬만한 주량에서 반근은 쉽게 마신다. 그런데 괜히 그렇게 큰잔으로 건배를 해버리면 상대방은 지레 기가 죽어서 포기하는거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가동작 전략이다.

북경대학 철학교과서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싱거운 무사가 길을 가다가 차잎을 지고가는 차농과 어깨가 부딪혔다. 무사는 다짜고짜로 차농과 무예를 겨루자고 시비를 건다. 차농은 차를 파는 사람일뿐 무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거듭 해석했건만 무사는 막무가내다. 결국 무사는 일방적으로 장소와 날자를 정했다. 집에 돌아와서 고민하던 끝에 차농은 여러가지 무예에 뛰여나다는 뒤산의 고승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기로 했다.

차농의 사정을 듣고난 고승은 무예에 능하지 못하면 다도에는 자신이 있는가고 물었다. 차농은 자신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고승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무사차림으로 다도만 선보이라고 했다. 그게 통할가고 반신반의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차농은 고승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날 차농은 무사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예정 장소에 도착했다. 차농는 여러가지 도구를 잘 배렬해놓고 자신이 평소에 하던 그대로 익숙한 다도를 현란하게 다루었다.

드디여 약속장소에 나타난 무사는 검을 빼들었다. 그러건 말건 차농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자기 다도에만 집중했다. 무사는 몇발짝 왔다갔다하면서 가동작도 여러번 했지만 차농은 끔쩍도 하지 않았다. 무슨 차농이 이 상황에도 이렇게 침착할가 약간 주춤하던 무사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결국에는 검을 집어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내가 만났던 무사중에 당신이 제일 고수였습니다. 무례했던 점 용서해주십시요.”

이렇게 차농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무사를 항복시켰다. 내공의 외적인 압박전략이다.

하수는 싸워서 이기고 중수는 적을 만들지 않고 고수는 적이 스스로 무너지게 한다.

아침 산책길에 강아지가 옆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사납게 짖어댄다. 왜 그러나 내려다 봤더니 다가오지는 못하고 제자리에서 왔다갔다하며 으르렁거린다. 주인이 급하게 해석한다.

“이 개가 당신이 두려워서 그래요.”

무는 개는 짖지 않고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옛날 시골 어른들이 그랬다. 불안하니까 짖는거고 또 불안하니까 짖는데만 그치는거다.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리면 더 난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수는 내공이지 외적 표현이 아니다.

글쓴이:궁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