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는 순간 못생겨진다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4-08 16:13:00

청명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산소에 다녀왔다. 이번 청명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잠깐 절만 올리고 급하게 산소를 떠났다. 제사는 불과 10분만에 마치고 나머지는 산 사람들의 술자리다. 저승의 사람들을 위한 제사인지 이승의 사람들이 모이는 회포의 자리인지 올해따라 돌아보게 된다. 마침 호텔에서 학교 선배님 부부를 만났는데 이렇게 물어온다.

“부모님 산소에 왔는가봐요? 효자네요...”

과연 내가 그럴가?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가끔 고상한 모자를 쓰고 사심이 가득한 일을 한다.

한가지만은 진심으로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항상 함께 산소에 다녔던 사촌녀동생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였다. 작년 청명날 이튿날에 저세상 사람이 됐는데 언제나 허~허~ 하면서 성격 좋은 친구였다. 묘소에서 차린 음식에다 배갈을 함께 기울이던 친구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삼삼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웃으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리 천하절색의 연예인도 캡처사진에서 망가지는걸 보게 된다. 사람마다 그런 순간이 있는거다. 그런데 화내는 얼굴은 순간의 문제가 아니다. 화를 내는 내내 쭉 못생겨진다.

화를 내면 얼굴은 굳어지고 눈은 꼿꼿해지고 목소리는 높아진다. 상상만 해도 못생긴 장면이다.

검으락푸르락이 무슨 상황일가? 사람들은 직장생활에서나 사회활동에서나 심지어 가정생활에서 이런 경우를 한번쯤은 경험한다. 당장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길이길이 뛸 때면 진짜 하늘이 두쪽 날 것 같다. 그러나 천둥번개 뒤의 소낙비에는 땅만 진흙탕이고 하늘은 금방 개인다. 결과적으로 화낸 이만 머쓱해지고 얼마 안 지나서 금방 후회한다. 그냥 못생긴 얼굴만 보여줬을 뿐이다.

설득력은 화보다도 웃는 얼굴이 훨씬 효과적이다. 일단 거부감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엄숙한 사람도 한번 또 한번 거듭되는 웃는 얼굴을 만나다 보면 원래대로 그냥 굳어져있기도 힘들다. 어떤 경우에는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엄숙한 표정을 짓고있는 사람도 만난다. 그러나 그 권위보다 강세인 게 웃음이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 전형적인 례로 비행기 승무원들은 어떤 경우에도 웃음으로 손님을 대하라는 수칙을 철같이 지킨다. 비행기를 드문드문 타는데도 이상한 승객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직업인 승무원들은 별의별 상황을 다 만난다. 다른 비행기는 다 밥을 주던데 이 비행기는 왜 밥이 없냐고 따지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어차피 비여있는데 공무석에 앉으면 어떻냐며 버티는 손님도 있다. 그래도 승무원들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차근차근 해석해 준다. 항상 웃는 얼굴로 다 받아주는 승무원한테 대한항공의 땅콩회항과 같은 경우를 빼고는 끝까지 시비를 걸 승객은 드물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강아지들도 각양각색이다. 대부분 강아지들은 밝은 표정으로 꼬리를 살살 흔들며 친화적인데 간혹 짖어대며 험상궂은 얼굴에 이발을 드러내는 개들도 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 개가 사람이 무서워서 일부러 짖는다고 한다. 개나 인간이나 속이 허하면 목소리가 높아지는건 똑같은가 보다. 누가 어쩌지 않는데 괜히 자기를 무시하는가 해서 언성을 높이며 자존감을 찾는 거다. 물론 주인이 옆에 없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화보다는 약하지만 그 사촌으로 불만이란 정서가 있다. 역시 보기좋은 얼굴표정은 아니다. 이런 경우는 먼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해결안을 찾는게 아니고 일단은 부정을 해놓고 해결될 수 없는 구실을 찾는다. 그리고 암울한 면만 들여다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약점을 많이 찾는다. 이렇게 불만이 많고 남의 약점을 캐는 사람은 결국 혼자 남는다. 혼자 남은 사람은 웃을 일이 없다.

골프를 치다 보면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 때가 있다. 그래서 풀숲을 뒤지며 찾는데 고맙게도 그 전의 치던 사람이 찾지 못하고 포기한 공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내 공은 잃어버렸지만 다른 공으로 미봉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순간에 락심하는 표정들이 있다. 자기 공도 함께 찾았더면 공이 두개였을텐데 하나밖에 못 찾았으니 우울한 거다. 그러면 함께 찾아주던 사람들도 괜히 뭘 잘못한 것 같고 까닭없이 미안해지면서 기분이 가라앉는다.

슈퍼에서 계산대에 줄을 서 기다리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들고있던 주머니를 계산대에 던지며 화를 낸다.

“어디 도적질한 물건이라도 들어있나 뒤져봐요.”

그러자 점원아주머니도 언성이 높아지며 만만치 않게 맞선다.

“당연히 검사해야죠!”

그러고는 주머니에 든 물건을 전부 쏟아서 하나하나 검사한다.

“지금 뭐하는거예요? 어디 아픈거 아니예요?”

“이봐요, 누가 아프다는거예요? 말 가려서 하세요.”

결국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넘어갔지만 끝까지 툴툴거리는 할아버지와 입안에서 중얼거리는 점원의 원망은 끊이지 않는다. 다음 계산 차례가 된 고객의 기분도 괜히 언짢아진다.

사실 할아버지는“주머니를 보관함에 두고 왔어야 되는데 미안하다”면 되는 일이고 점원은“미안한데 규정상 주머니 물건은 꺼내서 확인을 해야 된다”면 그만이다. 서로 언성을 높여서 둘은 물론 다른 고객의 시간과 기분에까지 영향줄 필요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렇다치고 이쁘장한 아주머니의 얼굴이 참 아쉽다.

긍정적인 사람의 내심에는 항상 선량함과 고마움이 안받침돼 있다. 이 두가지 마음만 가슴속에 새겨두면 얼굴이 자연스럽게 밝아지게 돼 있다.

사람은 화를 내는 순간 지력상수가 급격히 내려가면서 순간 바보가 된다.

궁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