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을 아들에게 10년동안이나 속인 그녀, 도대체 무엇때문에...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4-07 17:00:00

“10년동안 당신을 딱 한번 봤어요. 사람들은 당신이 영웅이고 전사라고 하지요. 하지만 저는 늘 생각해요, 당신은 어떤 모습의 아빠일지” 

방금 서장 궁가비행장에서 나온 11세 강소 소년 호박문은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호박문의 아버지 호영비는 변방을 지키던 군인이였다. 2009년 그가 희생될때 호박문은 겨우 1살이였다. 엄마 주충연은 이 사실을 아들에게 10년동안이나 숨겨오다가 지난해에야 비로소 이 비밀을 털어놓았다. 

청명절을 맞이하여 기자는 주충연과 호박문을 따라 4000km를 동행하여 호영비가 싸우던것곳을 같이 둘러보기로 하였다. 

10년 전 그는 물자를 운송할 때 전우를 구하다가 희생되였다 

호영비는 생전에 서장 산남군분구 변방모부대 자동차대 대장으로 우리나라 서남대문에 주둔하며 400여 km의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 

호영비는 2009년 6월 24일 라저라 초소를 짓기 위해 자동차팀을 이끌고 물자를 수송하다가 산사태를 만났다. 호영비가 탄 차는 절벽으로 추락했고 차 안에 있던 세 명은 밖으로 뿌리워나갔다. 절체절명의 순간, 추락하는 바위가 혼수상태에 빠진 전우 류파를 향해 굴러왔다. 호영비는 있는 힘껏 류파를 밀어냈지만 자신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2010년 라저라 초소는 드디여 완공되였지만 호영비는 볼수 없었다. 

아빠는 아직 맞추지 못한 퍼즐 

호영비가 희생됐을 때 아들 호박문은 1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안해 주충연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돌보면서 슬픔속에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당분간 숨기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그 기간이 10년이나 지속될줄은 그녀도 예상치 못했다. 그동안 주충연은 가두의 도움으로 세탁소를 열어 온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엄마가 집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데 아빠는 어디에 있나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철이 든 호박문은 가족사진이 하나도 없는 집안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물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빠는 서장에서 군복무를 하는데 바빠서 올수 없단다." 주충연은 항상 이렇게 말해주었다. 호박문도 줄곧 아빠가 있다고 믿어왔다. "아빠가 계세요, 다만 집에 없을뿐이예요." 

아들이 점점 자라면서 이제는 감당할수 있겠다고 판단한 주충연은 2018년 호박문문을 강소성 고우시 렬사릉으로 데려가 진실을 알렸다. 

"아빠의 모습은 사진일뿐이예요, 이것은 다만 여러분의 입에 있는 우리 아빠입니다. 저에게 아빠는 퍼즐과도 같아요, 아직 제대로 맞춰지지 않은것도 있습니다." 호박문은 아버지가 영웅인 것만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제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아빠가 사람을 구한 절벽이예요 

2019년 청명절을 앞두고 호박문과 어머니는 서장행 비행기를 탔다. 

"아빠 자동차대는 산길을 길게 돌아가야 했고 주둔지에는 나무가 한그루도 없어..." 가는 도중에 호박문은 묵묵히 마음속으로 아빠에 관한 이야기쪼각들을 맞추어나갔다. 다른 사람의 말 속에만 있었던 아빠의 모습이 점점 분명해졌다. 

가는 길에 호박문은 아빠처럼 묵묵히 헌신하는 군인들을 많이 목격하였다. 

자동차대에서 물자를 중대로 보낼 때마다 길이 막히면 짐을 지고 갈수밖에 없어요. 그럴때면 많은 전사들이 자진해서 짐을 더 지군 합니다. 50kg을 멜수 있는 사람도 있어요. 우박이 내리고 칼이 내리더라도 초소 장병들이 잘 먹도록 우리는 보장해야 합니다." 서장 산남군 분구 변방의 모 중대 지도원 곽신이 말했다. 

“조국 변방을 위해 보초를 서는것은 우리의 본분입니다.” 

한때 작은 텐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절벽 위에 세워진 커다란 초소로 변모하였다. 

초소앞 호영비가 희생된 절벽을 마주서니 호박문과 주충연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아빠,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혹시 우리가 보고싶었나요? 

아빠, 그 당시에 고치지 못한 초소가 수리되었는데, 보이세요? 

아빠, 아빠는 세상 최고로 대단한 영웅이예요, 나도 아빠처럼 용감한 사람이 될거예요... 

"여보, 비록 제가 당신 유골을 고향에 가져 왔지만, 당신의 혼은 영원히 여기에 남아서 매 한치의 땅을 지키고 있을거예요, 그래서 영원히 데려갈수가 없네요...” 

1998년부터 호영비가 고원을 묵묵히 지킨지 11년째로 4000여일이 되여온다. 

그는 얼음땅에 누워 눈을 덮고 변방을 지켜왔다. 

결혼한지 4년이 되도록 호영비는 집에 불과 3번밖에 들리지 못했고 상봉한 기간은 100일도 채 미치지 못했다 

아들이 태어난 후로 호영비는 2번밖에 보지 못했다. 

 

 

4,000km를 넘나들어 10년 늦은 이 가족사진이 드디여 완성되였다 

희망이 있는 민족이라면 영웅이 없어서는 안된다. 

장래가 촉망되는 나라에 선봉이 없어서는 안된다. 

수많은 영렬들이 변방선에 뜨거운 피를 뿌렸다. 

수많은 전사들이 청춘을 집과 나라에 바치는 시사시로 엮었던가.. 

청명을 빌어 충혼에게 경의를 표시한다! 

그동안은 두 사람이 함께한 가장 긴 시간이었다. 동시에 가장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다…… 
결혼때 호영비와 주충연은 부대에서 3개월간 함께 생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