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알아야 나를 채워간다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3-28 16:33:00

오늘은 지하철의 첫차를 탔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5시 50분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근 한시간을 더 가진셈이다. 사람은 물론 살기 위해서 자지만 그래도 깨여있는 시간이 살아있는 시간이다.

지난 일요일에 “동물농장”프로에서 이런 장면을 봤다. 강아지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슬리퍼를 물어다가 주인아저씨 앞에 갖다놓는다. 그러고는 주인이 그걸 잡으려 하면 또 못 가져가게 이발을 들어내며 사수한다. 누가 가져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또 기왕 가져왔으면 주인을 주든가. 왜 강아지는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저러고 있을가?

전문가의 판단은 이러하다.

강아지가 이렇게 보니까 이 집안에서 아저씨의 서열이 1위다. 그래서 저 아저씨만 무릎을 꿇게 만들면 이 집안에서 내가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거다. 그런데 무슨 방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가? 고민끝에 슬리퍼를 아저씨 앞에 물어다 놓고는 어디 한번 가져가 보라고 시비를 거는거다. 다음 아저씨가 슬리퍼에 손만 가져가면 금방 달려들어 물어버린다. 그러고는 자기가 이제 주인을 이긴거라고 여기는거다.

강아지의 이런 의도를 알리 없는 주인은 매일 슬리퍼를 물어나르는 강아지가 여간 고민거리가 아니였다. 그런데 전문가의 분석을 듣고나니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겠다는 방법이 생겨난다. 바로 남을, 즉 강아지를 알게 된거다.

요즘 한국 방송인 김제동의 “이럴 때가 있으시죠?”라는 책을 읽는다. 아직 성가전임에도 녀자를 알아야 련애를 한다는 론리가 아주 명석했다. 그럼에도 김제동씨가 련애비법을 얘기하면 주변에서는 결혼도 안한 사람이 무슨 련애에 대해 운운하냐며 믿지를 않는단다. 그런데 결혼만 안했지 련애는 많이 했었나 보더라. 그 련애사가 바로 녀자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의 여러 관점에서 나는 이런 결론을 도출해냈다.

녀자를 알아야 남자가 되고 남편이 된다. 그리고 녀자 마음의 수요를 개괄하면 관심과 공감과 동반이다. 상대방 마음의 동향을 례의 주시해서 관심하고 알아가려 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든 틀린 것이든 교감하고 공감해주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 이 세가지만 실천하면 남자는 남녀관계에서 엄청 성공한거다.

여기서 알아가려는 관심과 노력이 전제이고 기초이다. 이것이 결여되면 뒤의 두가지는 운운하기 힘들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르고 10권의 책은 읽어도 한장의 녀자 마음은 읽기 어렵다. 그럴지라도 또 그렇기 때문에 배가의 관심과 인내의 노력이 필요한거다. 알기 싫은 짜증은 있어도 알지 못할 마음은 없다. 관심과 애정의 깊이에 달렸을 뿐이다.

다음 공감은 나 안에 너가 있고 너 안에 내가 있으며 나중에는 너가 내고 내가 너인 그런 운명공동체가 되는 필수조건이다. 녀자들에게 있어서 하소연은 해결을 바라기 보다는 그냥 들어주고 공감해 달라는 뜻이 더 짙다. 꼬치꼬치 시비를 갈라주는 판사나 변호사보다는 그냥 들어주는 평범한 경청자가 더 필요한거다.

그리고 함께 있어주는거, 그것만큼 더 자상한 사랑은 또 없다. 련인들사이에 다투면 흔히들 다 흥분한 상태니까 잠시 떨어져서 랭정하게 생각해보자는 말들을 많이 한다. 녀자가 아무리 이렇게 나와도 남자는 그냥 같이 있어줘야 한다. 욕을 먹어도 좋고 억지로 쫓아내도 좋고 심지어 때려도 좋다.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심각성은 많이 해소된다. 어떤 때는 반려동물이 이걸 더 잘해 준다.

아침에 산책을 마치고 사무청사 울안에 들어서는데 앞에서 기획재무사 부사장이 대문을 들어선다. 너른 바지와 점퍼차림에 난생 보지도 못한 상표의 운동화를 신고 허름한 자전거를 밀고 간다. 그러다 앞에서 역시 점퍼차림인 부부장을 만난다. 지방으로 치면 주당위원회 서기와 정부 부주장급의 사람들이다. 둘은 서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란히 걸어가는데 누구도 저분들을 길거리에서 만나면 한자리 하는 사람들이라는걸 알아볼리 없다. 이 분들은 북경에서는 자기들의 위치가 어느정도에 있다는걸 잘 안다. 그러고보니 내가 본 령도들은 급별이 높을수록 친절하고 겸손했다. 언제나 어중간한 것이 문제다.

세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고 했다. 그 스승을 알아내려 하고 스승으로 인정하려 하는 자세가 중요할 뿐이다.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손해고 내가 피곤하고 심지어 열등감이 생기기 일쑤다. 항상 저 사람에게서 내가 배워야할 바는 뭐겠냐를 념두에 두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우점만 보이게 돼 있다. 반면 그게 내가 지는거라고 생각하면 도처에서 지게 된다. 한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 그건 결국 내 심령을 정화시켜가는 과정이다.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의 편한 삶을 위해서라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에는 나를 채워가는 과정이다.

하물며 이동인터넷 세상은 갈수록 공유의 특성을 많이 나타낸다. 내 것만 내 것이라는 협소한 페쇄주의 리념은 이 시대의 영원한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니가 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열어주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인터넷 시대의 기본자세와 고품격은 결국 흉금이다.내가 그만큼 나누어주면 다른 사람은 그 이상으로 보답해주고 내가 그만큼 밀어내면 다른 사람은 그 이상으로 무시해버리는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호 련결고리다.

이동인터넷은 아는 사람은 물론 더 많이는 모르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평준화와 정보대칭의 인간관계를 형성했다. 내가 알아가기 싫어도 알게끔 만들어놓는게 이 시대다. 거기에서 혼자만 담을 치겠다고 애를 써봤자 그냥 스스로만 손해다. 왜냐하면 굳이 어느 특정 대상이 아니더라도 사람마다 선택의 기회가 무한정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생동한 실례 하나 없이 메마른 위챗을 적어내려왔는데 요즘 AI와 이동인터넷 관련 공부를 하면서 될수록 빨리 낡은 생각과 고정 관념을 바꿔가야겠다는 위기와 조급정서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창의적인 생각이 없이는 점점 적응해 가기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우리의 선택은 나를 비우는거다. 그리고 다시 채워가는거다. 그러려면 먼저 남을 알아야 한다. 그 남은 구체적인 객체일 수도 있고 더욱이는 추상적인 리념일 수도 있다.

사람과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 나를 채워가는 과정이다.

궁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