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사상 처음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3-26 15:42:00

누구나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다. 쌍둥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각자의 삶을 살고있고 따라서 각이한 판본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간다.

지난 목요일 위챗에서 멀리를 반만 깎은 상태에서 길거리를 활보해 공중화장실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고백했다. 물론 각양각색의 머리형태를 혁신해가는 예술가들이 즐비한 현실사회에서 량쪽 머리의 비대칭이 그렇게 이상하게 비춰지지 않을 수도 있다.그러나 어디를 봐도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나에게 있어서는 정상적인 현상은 아니였다. 적어도 내 리발 력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볼일을 보고 리발관에 돌아와 물어봤더니 리발사도 자기 직업 생애에서 처음 겪는 일이란다. 처음이라는건 보통 다 신기하다.

전에 “갚을 수 없는 빚”이라는 위챗에서 집사람이 드레스에 신부화장을 하고 서단상업거리 번화가에서 택시를 탔던 얘기를 언급한적 있다. 우리 량측 부모님들도 그렇고 우리 당사자들도 그렇고 줄일 수있는 절차는 줄이자는게 그때의 공동인식이였다. 앞에다 롤스로이스를 앞세우고 뒤에 새까만 벤츠차 600을 줄지어서 성세호대하게 이동하는 정중한 결혼식도 좋지만 결혼은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다. 아무리 10대 100대를 대여해도 식장에 도착하면 그 차들은 각자 제 갈 길을 간다. 심지어 식장에서 저가락 한번 들지도 않을 사람들이다. 다만 풀화장에 드레스를 입고 택시를 탄다는건 드라마에서 결혼식날에 신부가 갑자기 어떤 충격을 받고 식장에서 탈출할 때나 볼법한 광경이다. 거두절미하고 그날 그 택시아저씨는 얼마나 놀랐을가. 북경 택시 사상 초유의 사태였을 것이다.

리발사를 황당하게 하고 택시기사를 놀래우고 나니 나한테 처음으로 있은 일들이 또 어떤 것이 있었을가싶어서 오늘 위챗을 시작한다.

민족이 민족이니만큼 내가 처음 나가본 외국은 한국이였다. 한국에 도착해서 대표단 단장이 한국내에서 쓰라면서 만엔짜리 일본지페를 줬다. 일본돈이란걸 처음 손에 쥐여본다. 한국에 갔는데 왜 일본돈을 줬는지 지금도 그 리유를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돈이 인민페로 환산하면 얼마되는지도 몰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외국돈은 돈 같지 않고 정확한 개념이 없다. 지금도 한국돈을 잘 살피지 않으면 쉽게 헛갈린다. 하물며 술 한잔 하면 더 가물가물하다.

그날은 단체행사로 2차를 마치고 3차에 현지의 아는 선배를 찾았다. 그 선배는 신문사 기자로 있었는데 내가 한국에 가기 일년전에 중국에서 만나 보름동안 같이 여러개 성을 돌아다녔던 인연이다. 그 선배가 호텔바에서 양주를 사줘서 마시고 다음 4차는 포장마차에서 내가 사겠다고 잡아끌었다. 그때 한국 드라마에서 보니까 포장마차가 그렇게 랑만적이더라니 한번 꼭 가보고싶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 세병을 시켜서 그 선배가 한병 마시고 내가 두병을 비웠다. 이튿날 지갑을 열어 보니 그 일본돈이 없어졌다. 내가 계산을 하며 한국돈 만원짜리와 섞어서 줘버린거다. 처음 만져본 일본돈이고, 처음 찾은 포장마차고, 처음 두개 나라 화페로 한개 나라에서 계산을 했다. 포장마차 주인도 자주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일본돈은 돌려줬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 직장이 첫 직장이고 이 직장에 들어올 때 본게 첫 면접시험이다. 회사에서 면접관이 세분 나오셨는데 두분은 령도고 한분은 체중이 어림짐작으로도 90키로는 나가시는 분이였다. 그때는 령도보다는 경로우대가 더 통했던 직장문화였던지 그 듬직한 체구의 분이 가운데 앉고 량켠에 령도 두 분이 앉았다.

“술을 마십니까?”

“자기 앞의 술은 합니다.”

“사귀는 녀자친구는 있습니까?”

“없습니다.”

앞의 답은 약간 겸손이고 뒤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술은 자기 앞의걸 마시는 정도가 아니고 남의 앞의 것도 넘보았던 혈기 왕성했던 시절이였고 련애는 나를 추천한 교수님이 절대 녀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안되다고 해서 그냥 그대로 따랐다. 그때는 학교측의 추천이 절대적인 요소였던지 저렇게 중점적으로 두가지만 물어보고 면접은 끝났다. 그리고 입사했다. 하긴 가장 중요한 알맹이만 질문받기는 했다. 사상 첫 면접이고 때아닌 술겸손과 녀자친구에 대한 첫 “배신”으로 오늘의 직장을 바꿔왔다. 소중히 여겨야.

생에서 내 첫 운전면허를 가지는 심정은 어떨까? 주지하다싶이 운전면허는 리론시험과 도로시험을 봐야 한다. 리론시험을 위해 받는 강의가 있는데 강사가 이런 례를 든다.

“병원의 응급차는 신호를 위반해도 될가요? 안될가요?”

“...”

“당연히 안되죠. 한사람을 살리겠다고 신호를 위반해 두 사람을 쳐죽이면 되겠습니까?”

참 례도 간단명료하고 알아듣기 쉽게 하는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살벌하다. 시간이 생명인 마당에 이 강사의 론리대로라면 어느쪽이든 살 확률이 높지 못하다.

운전강사 또한 절대 권위자다. 약간 제 구미에 맞지 않으면 눈길을 주고 짜증을 낸다. 심지어 아침에 운전학교에 나타나면 보온병을 주면서 가서 뜨거운 물을 받아오란다. 화가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면허를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학원들을 대해도 되나 싶어서 물어봤다.

“운전강사도 인연인데 졸업후 다시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 제자들이 있습니까?”

“음...간혹 있지...”

대답에 힘이 없다. 운전면허를 다 받았는데 왜 다시 찾아오냐구?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머리를 숙여야 될 때는 숙여야만 내 원하는바를 이룩할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처음이란 것, 그건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많이 겪는다. 또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에 갔을 때 소주 “처음처럼”을 시키다는게 “어제처럼”으로 말해버려서 종업원이 얼떠름해서 서있었을 때가 있었다.

신인상은 한번 뿐이고 모든 처음은 다 어제 일이다. 그러나 강력해서 잊혀지지 않는 미래재생형 기억이다. 그것이 희열이든 상처든.

글: 궁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