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도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2-16 16:27:00

두도(头道)는 진(镇)이다. 1970년대 말기, 두도에서 한 20리 상거한 룡문촌에서 태여난 나에게 있어 두도는 동경의 대상이였다. 가끔 보이는 층집들과 길 량켠에 늘어선 상가들, 그리고 자동차, 소수레, 사람들로 제법 흥성한 거리는 산이나 강과 동무하여 자라온 시골 아이들의 눈을 틔워주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두도에는“장마당”이 있었다. 그 유명한 연길의 서시장에 비하면 많이 작지만 그래도 일상에 필요한 물건들은 두루 다 찾아볼수 있었다. 룡문촌을 비롯하여 두도 주위 향촌의 사람들은 두도장마당에 와서 물건을 사고 팔며 생활을 영위하고 시장경제를 익혀나갔다. 당시 룡문과 두도를 오가는 교통편은 버스 한대밖에 없었다. 룡문촌과 화룡현성 사이를 오간다고 하여“화룡버스”로 불리는 이 버스는 아침에 룡문에서 출발하여 화룡에 갔다가 오후 조금 늦은 시간대에 다시 화룡에서 룡문으로 돌아왔는데 가고 오는 사이에 두도를 경과하였었다. 당시 룡문촌을 외부와 련결하는 유일한 현대식 교통도구인 이 버스를 놓치면 부득이 다음날 갈수밖에 없었다. 가는 것은 다음날 가더라도 오는 것은 다음날 올수가 없었다. 하여 장마당의 화려함에 눈팔려 혹시라도 버스 시간을 놓치면 20리길을 걸어 와야만 했다. 9살 좌우에 나도 한번은 그 20리 길을 걸은 기억이 있다. 그 먼길을 한번도 어른들 등에 업히지 않고 홀로 걸어왔다고 아버지가 훗날 거듭 칭찬을 했다. 이런“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우리 촌아이들은 가능하면 부모들따라 두도에 가려고 했다. 당시 우리에게 두도, 특히는 그 흥성한 장마당은 신생사물을 받아들이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두도에 한번 다녀오면 학교에서 한주일 정도는 외부세계의 화려함을 자랑할수 있었으며 그 시간만큼은 반급에서 가장 모던한 사람이 될수 있었던 것이다. 범이 있고 비행기 모형의 놀이기구가 있는 인민공원이 위치한 연길에라도 다녀오면 그것은 근 일년간 자랑거리가 되였다. 그리고 그런 모던한 도시 연길로 가려면 먼저 화룡버스를 타고 두도에 가서 연길행 버스를 바꿔타야만 했었다. 두도는 주변 향촌 사람들에게 외부세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창구인 동시에 보다 큰 세계로 나아가는 다리였다. 1980년대 두도는 이런 곳이였다.

1991년 봄, 나는 선망의 도시 연길의 한 소학교로 전학을 갔다. 모아산을 넘어 철남에 들어서면서 드넓은 거리 량켠에 줄느런히 들어선 5층, 6층의 건물들이 주던 시각적인 화려함과 충격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당시 우리 촌에는 향정부가 3층 건물이고 나머지는 모두 단층집이였으며 그것도 대부분이 초가집들이였었다. 자치주 수부인 연길은 서시장, 인민공원처럼 볼거리가 많을 뿐만 아니라 먹거리가 많기로도 유명하다.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랭면”이다. 당시 연길에 가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몇가지 있었다. 서시장 구경, 인민공원 구경, 그리고 복무대로랭면을 먹는 것이였다. 복무대로랭면, 진달래랭면, 삼천리랭면에 이어 오늘의 순이랭면에 이르기까지 랭면은 시종 우리의 사랑을 받아온 음식으로서 오늘날 조선족을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로 불리고 있다. 한겨울에도 찬물을 먹는 것이 우리 민족이다. 동북이란 추운 지역에서도 “시원한”랭면을 선호하는것은 우리의 “화끈함”, “꾸준함”, “외고집”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 하여 우리가 “조화(和谐)”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표면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면에는 “온기”를 갖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하여 우리를 대표하는 면에는 랭면 외에 온면도 있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온면이“두도온면”이다. 당지에서는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갖고 있던 두도온면은 최근년에 한국의 음식프로그램“백종원의 3대천왕”에 등장하면서 그 이름을 해외에까지 떨치고 있다.“두도온면”은 현재“연길랭면”과 더불어 조선족의 면음식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하나로 성장해왔다.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을 따라 갈수록 많은 조선족들이 연변과 동북을 떠나 연해도시, 해외에서 삶을 영위해가는 오늘, 우리 조선족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언어, 력사와 문화이다. 연길랭면, 두도온면, 명태, 양고기뀀 등 여러 브랜드들이 모여 우리만의 음식문화를 이루면서 여러 지역에 분산된 조선족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두도는 이처럼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는 곳이다.

“두도”인가“투도”인가? 올해 설, 처가가 있는 화룡에 다녀오는 길에 참 오랜만에 두도에 잠간 들렸었다. 여러 곳들에서 아직도 30년 전의 모습을 찾아볼수 있었다. 추억과 현실 사이를 오가면서 나는“지난 30년간 두도는 자신의 발전보다 타 도시의 성장에 기여를 해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설련휴라 그런지 거리는 조용하기만 했다. 두루 돌아보다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두도령식당(头道岭饭店)”이란 식당이였다. 정통의“두도온면”을 맛볼수 있는 곳이라 써붙였을 뿐만 아니라 “고향의 맛”도 지키고 있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투도”가 아니었던가? 두도를 떠난지 오래되지만 기억 속에 분명한 것은 “투도에 간다”고 말했지 결코“두도에 간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었다. 하여 두도를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문의를 하였더니“두도”가 정확한 것이라 했다. 단지 한자를 그대로 발음하여“투도(头道)”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두도”라고 쓰고“투도”라고 읽었다고 한다.“피쥬 안주는 명태가 좋지”“양로쵈 먹으러 가자”“삥샹에서 고기를 꺼내라”“땐스를 보자”와 같은 조선족식의 발음법에 의한 것이였다. 일상 대화에서는 이처럼 한어와 조선어를 섞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명을 조선어로 쓰고 한어로 읽는 경우는 실로 많지 않다.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두도가 유일한 것 같다. 두도는 이름 만으로도 조선족의 일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이 두도는 행정구역으로 보면 구체적으로 길림성 연변 화룡시 두도진이다. 몇년 전에는 내가 살던 룡문촌도 두도진에 합병이 되였다고 한다. 그러면 나도 이제 고향이 두도라고 해도 되는건가?

글쓴이:최학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