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 만들기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2-14 16:37:00

이른 겨울날 아침의 지하철에서도 꽃을 한아름 들고 다니는 젊은 친구들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사무청사 울안에서 아침마다 만나는 로인 한분이 계신다. 몇년을 이렇게 만나는데 내 짐작에는 재직 때 한자리 한 로인 같다는 느낌이다. 울안에는 당연히 외인들이 없고 이 시간에는 차도 거의 없다. 조용하고 산책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 따라 이 분이 많이 년로해보인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못쓰게”됐다. 지난 가을까지는 사뿐사뿐은 아니더라도 발걸음이 사뭇 경쾌했었다. 그런데 오늘 걸음걸이는 터벅터벅이다. 늙는건 한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더라.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폴싹”했다. 옛날 어른들이 하루 볕이 새롭다더니 그런가 보다. 세월앞에 장수가 없다. 어제와 래일보다 오늘이 가장 소중한 리유다.

지난 일요일에 “완벽한 타인”이란 영화 한편을 봤다. 동네 조무래기들이 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서는 불에 구워먹으며 놀다가도 그중에 몇은 치고박고 싸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34년후라고 자막을 치더니 다들 결혼까지 한 어른이 되여 영화의 주제를 만들어간다. 부부동반으로 한 친구의 집에 모였는데 밥상머리에서 생기는 각양각색의 폭로와 모순으로 영화가 일관된다. 이런 결과는 한 친구가 “지금 이 순간부터 들어오는 모든 문자와 전화를 공개하자”고 제안을 해서부터 시작된다. 문자는 어떤 내용이든 반드시 읽어야 되고 전화는 꼭 스피커폰으로 받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무슨 그런 싱거운 장난을 하냐며 반대를 하지만 뭐 찔리는게 있냐는 말에 역시 수긍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 공개하기로 합의한다.

그런데 비밀이란건 다 알려지지 말아야 할 그럴만한 리유가 있는거다. 그렇다고 그게 무슨 공개되면 큰일이 날 일도 아니다. 다만 그냥 그대로 덮어두면 더 좋은 그런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판도라의 상자라 할가 그걸 기어코 열어서 화를 좌초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영화속의 친구들은 그걸 참지 못하고 결국에는 상자를 열어버렸다. 결론은 엉망진창 만신창에 란장판이 돼버렸다. 친구는 친구끼리 박산나고 가정은 가정끼리 산산쪼각이 나버렸다. 이동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초하는 비극의 일면을 잘 그려준 영화다.

문자 하나하나 전화 한통두통을 의심의 선입견으로 비틀어서 련상하고 창작을 하다보면 좁쌀만한 일이 태산처럼 되여버리더라. 그래서 종아리를 보면 허벅지를 봤다고 한다는 속담이 생겨나는거다. 어떤 모순과 비밀은 철저히 감추어졌다 해서 누굴 속이고 기만하는 것만은 아니다. 조화와 화합과 화목에는 “모르는 척”이라는 처세술이 상당한 령단묘약이다. 그런다고 누가 바보라고 하지 않는다. 바보라고 해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에 회사 선배가 그러더라.

“련인이든 부부든 같이 있을거면 서로 의심을 하지 말라. 기왕 의심할거면 사사건건 꼬치꼬치 다 캐물어서 철저하게 헤여지든가.”

우리는 이런 경우를 보게 된다. 어린애가 길거리에서 타박타박 걸어가다가 넘어진다. 그러면 애는 금방 울기보다는 넘어진 상태에서 어디 누가 없나 먼저 사방을 둘러본다. 이때 그냥 아무말도 없이 누가 일으켜 세워놓으면 애는 또 그대로 일어나서 신나게 잘 논다. 왜냐하면 애 체중에 스스로 넘어져서 크게 다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엄마가 나타나서 누구 탓인양 막 남을 뭐라 하고 어디가 어떻게 맞혔는지도 모른채 허겁지겁 애 몸을 어루만지며 안달을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애는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애가 놀다가 넘어지는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인데 옆에서 어른이 괜히 상황을 부풀려 놓는거다. 그러면 애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위험에 처했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그냥 더 관심을 끌어야 겠다는 생각에 울어버리는거다. 그냥 놔두면 될걸 괜히 잘 노는 애를 자극해서 울게 만드는거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이고 왔다는 옛이야기가 유명하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를 접하게 된다.

“부장님, 이번 건은 이런이런 방법으로 추진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 그래요? 그럼 김대리가 맡아서 추진해보세요.”

“아니, 그게 아니구...전 다만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거지... 제가 하겠다는건 아닌데요.”

“에이, 왜 그러세요. 아이디어가 좋기만 하구만. 이 일은 그렇게 매듭지읍시다.”

“...”

사실은 내가 이미 하고있는 일도 벅찬데 혹시라도 그 일까지 나한테 돌아올가봐 그냥 아이디어만 내서 다른 직원한테 떠넘기려고 한 말인데 결국에는 자기가 떠안게 된거다. 그냥 가만 있었으면 맡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무실에 A부장이 새로 부임했다. 이 사무실의 B과장은 그 전에도 회사내에서 오다가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만나고 A부장과 안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내 상사도 아닌데 하면서 인사도 하지 않고 다녔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만나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딴짓을 하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A부장도 어린 과장이 저러고있는데 주동적으로 알은체 하기도 멋적은 일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렇게 지냈던 사람이 새 부장으로 부임될줄이야. B과장은 그럴줄 알았으면 진작에 알은체도 하고 깍듯하게는 못해도 모르는 척 외면하지는 않았을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갈수록 마음이 불안해진 B과장은 고민끝에 크게 용기를 내 부장을 찾아갔다.

“저~ 부장님, 제가 요즘 몸 상태도 안좋고 그런데 앞으로 많이 부탁합니다.”

B과장은 자기가 전에 불손했다는 얘기는 차마 꺼내지 못하겠고 해서 다른 엉뚱한 얘기를 둘러대면서 부장의 의중을 시탐하려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부장 왈:

“아~ 그래요? 그럼 안되죠. 사람이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우선이죠. 그럼 한동안 푹 쉬시고 B과장님의 업무는 잠시 C과장님한테 맡기도록 하죠. B과장님 푹 쉬세요.”

그날부로 B과장은 잠시가 아니라 쭉~ 쉬게 되였다. 입방정이란게 있다. 스스로가 켕겨서 쓸데없는 말만 꺼내지 않았어도 상사들이란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사람을 자르지 못한다. 그런데 호박 쓰고 돼지굴로 들어오겠다면 그걸 또 굳이 밀어내지도 않는게 상사다. 상사란 원래 그렇다. 그래서 상사다.

전에 고중 동창이 개인 사업을 하면서 북경에서 한동안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비밀번호 설정이 되는 딱딱한 재질의 얇고 네모난 작은 상자가 류행이였다. 영화에서 보면 조폭들이 마약거래를 할 때 돈을 담아갖고 다니는 그런 상자다. 딱히 어떻게 명사화를 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어렵게 설명을 했는데 그 친구에게도 그런 상자가 하나 있었다. 힘들 때 열어서 쓰라고 누가 선물한건데 친구는 그만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 저 안에 뭐가 들었을가? 누가 봐도 궁금할 법한 상자고 많은 경우에 돈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고는 저 안에 백원짜리가 꽉 차있으면 도대체 그 액수가 얼마나 상당할가 흐뭇한 상상도 해본다.

그러던 어느날 그 궁금증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친구는 며칠이고 상자에 매달려 가능한 수자는 다 돌려봤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진짜 돌우에도 꽃이 피더라. 드디여 상자가 열렸다. 그런데 안에는 달랑 베개 하나가 들어있다.그리고 그 베개 밑에는 이런 글이 씌여진 종이 한장이 있었다.

“친구야 이제 뭔지 알았으니 잡생각 말고 속 편하게 밤잠을 잘 자거라. 실면끝에 찾아오는 꿀잠만큼 고마운 선물도 없을거다. 이거 내 아끼는 베개인데...”

네모반듯한 “돈상자”에서 난데없는 베개가 나오자 처음에는 어이없이 허구픈 웃음만 짓던 친구는 까맣게 속았다는 생각에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중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메모지에는 친구의 깊은 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상자에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도리와 비밀은 알고 싶지만 알고나면 별거 아닐 수도 있다는 도리가 담겨져 있었다. 오히려 상자를 열지 않았더라면 매번 어려울 때마다 나에게는 아직도 저 “돈상자”가 있다는 든든함과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열고나니 다 물거품이 되여버렸다. 물론 “숙면”이라는 돈보다도 소중한 커다란 선물이 대신 들어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너무 넘쳐나도 안되고 너무 속이 없어도 문제다. “너무”라는 부사는 원래 부정과 맞물리게 되여있으나 요즘 사람들이 “너무 감사하다, 너무 이쁘다, 너무 좋다”로 람용하면서 이 부사의 사용이 너무 란장판이 됐다. 세상 단어중에 정신상태가 제일 혼란스러운 단어를 찾으라면 어김없이 “너무”가 당첨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련인사이 사랑미담이 있다. 그런데 굳이 서양의 련인절을 너무 곁들일 필요가 있는걸가?

북경의 겨울은 건조해서 피부에 수분이 좀 부족하지만 그냥 두면 갈라터질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런데 긁어놓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일이 뭐가 있을가.

궁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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