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사물에 대한 편견과 공포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1-10 10:11:00

2016년 5월 7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인공지능 발전사상 첫 자율주행 자동차 사고가 발생했다. 테슬라 전기자동차가 자기 앞에서 가는 트럭과 점점 가까워지는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대로 추돌해 운전기사가 사망했다.

당시 매체는 자율주행 차량의 안전성과 부족점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그럼 실제로 그렇게 위험한걸가? 현대 과학은 그렇게 생각처럼 허술하지 않다. 다만 99%의 우점을 제쳐놓고 1%의 부족점을 “결함확대경”의 효과로 극대화한 것이다. 매체가 흔히 빠져 들어갈수 있는 편파적인 보도의 함정이다.

사람이 운전하는 보통 자동차는 9400만마일에 사망사고가 한번 발생한다. 그런데 그번 사고는 테슬라 자율주행 총 거리 1.3억마일에서 처음 생긴 사망사고였다. 이렇게 자율주행이 보통차보다 사망사고 확률이 낮다. 그럼에도 초점이 자율주행에로 맞추어짐은 보통 자동차의 사고를 많이 보아온 사람들이 신생사물에 대해 가지는 편견에서 비롯된 착시 현상이다.

하물며 현단계 자율주행은 무인주행이 아니다. 아무리 자동운전 시스템을 장착했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한해서는 운전자가 수동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때 사고 당시에도 운전자에게는 7초라는 반응시간이 주어졌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자율주행 시스템을 잘 료해하지 못했고 운전을 통째로 자율주행에 맡긴거다. 미국 국가도로교통안전관리국도 테슬라가 그번 사고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뿐만아니라 테슬라가 이 시스템을 도입한후 사고발생률이 전보다 40% 줄었다는 결론도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자율주행시스템의 안전성은 사람 운전보다 높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자율주행의 상업화와 대범위 보급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일련의 련쇄 반응이 생기게 된다. 운전을 가르치고 면허를 내주는 학교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택시기사들은 또 어떤 선택을 해야 될가? 이같은 인공지능 현대과학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가 공무차량 개혁을 하면서 적지 않은 기관의 운전기사들이 다른 일터로 옯겨야만 했다. 기술혁명이든 물리적인 구조조정이든 개혁이란게 이런거다. 어느 군체에 한해서는 랭혈적이고 참혹하고 무자비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개혁이 이런 군체를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도 난항을 겪고 있는 한국의 카카오 카풀 도입이 대표적인 례다. 출퇴근 시간에 이동 방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카풀 영업을 하는 자가용을 불러서 각자 료금을 분담해 지불하는 운영모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벌써 운영을 시작한지 오래됐고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되였다. 이런 추세를 한국 한개 나라만 막겠다고 해서 막혀지는 일이 아니다. 택시기사가 파업하고 시위하고 분신까지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궁극적으로는 막을수 없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일찍 20세기초에 택시의 등장으로 마차를 모는 마부와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이 대거 직업을 잃었다. 그런다고 인력거군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택시 도입을 무산시킨건 아니다.

우리가 근무하고있는 사무환경도 사회의 발전에 따라 부단히 개선될수 밖에 없다. 전에 사무실을 이사하면서 원래 사무실에는 두대 밖에 없었던 전화기를 네명당 하나로 배정하게 되였다. 그때 일각에서는 전화기를 그렇게 많이 놔서 뭐하냐며 반대도 있었다. 원인즉 전화기가 많아서 여기저기서 울려대면 일에 영향을 준다는거다. 지금은 사람마다 한대씩 가져도 전화벨이 시끄러워 일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사이 휴대폰과 위챗이 전화를 많이 대체하기는 했지만 전화기가 백대라도 울리지 않을 전화는 조용하고 전화기가 한대라도 울릴 전화는 백번 울리게 돼 있다. 전화기같은 이런 전통 물리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바뀌는게 두련운게 그때 당시의 사유였다면 지금에 와서 도처에 존재하는 현실과 가상현실의 교차속에서 아직까지도 그런 사유를 고집한다면 갚팔질팡 헤매일 수 밖에 없다.

화위 지능시계를 사면서도 느낀 점이다. 화위에서 신제품으로 지능시계가 나왔더라길래 그냥 따라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사게 되였다. 샀을 당시에는 휴대폰에 있는 기능을 그냥 중복으로 시계에다 옮겨놨다고 생각되며 다시 환불할가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가 이 신생사물이 생겨난데는 다 리유가 있을 것이고 그걸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들도 심심해서 만들었을리는 없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갈수록 그의 필요성을 의식하게 되고 이제는 잊어먹고 차고 나오지 않으면 휴대폰을 두고 나온 것과 똑 같은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이 시계가 없어서 살아가지 못하는건 아니다. 그냥 있으면 조금이라도 편리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조금의 편리가 쌓여서 현대 생활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조금”을 따라가기 숨가쁠 정도로 바뀌여가는게 요즘 시대다. 이제 우리는 제자리에 있으면 후퇴하는 시대에 살고있는거다.

요즘은 “인공지능”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2017년 5월에 출판된 책이다. 작년 중순경에 이미 이 책을 갖고있었는데 그때는 나의 업무와 거리도 멀거니와 이렇게 급속하게 변해가는 시대에 1년전의 책이 얼마나 낡았겠냐고 생각돼 구석에 처박아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슈퍼IP”란 책을 읽으면서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시점에서 이 분야의 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유공간과 영양소를 제공하는지 스스로도 놀랍게 공명을 느꼈다. “슈퍼IP”는 2016년 7월에 나온 책으로 “인공지능”보다도 거의 1년 낡은 책이다. 그럼에도 그 매력은 색바래지 않았다. 책은 2년전에 나왔어도 내가 전혀 접해보지 못한 분야를 언급했으면 적어도 나에게는 신생사물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집에서 샤브샤브를 해먹으려고 슈퍼에서 양고기를 샀다. 결제는 알리페이로 했다. 그랬더니 오후 1시에 샀는데 저녁 6시에 알리페이에서 문자가 뜨더라. 내용인즉 겨울에 샤브샤브를 먹을 때 몇가지 주의해야 할 점들이다. 다만 알리페로 결제를 한번 했을 뿐인데 5시간후에 내가 뭘 먹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을 한거다. 밥 한끼 먹는데도 이렇게 비밀이란게 없으니 사생활을 운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대에 살고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더니 편리함과 사생활은 동시에 가질수 없는가 보다. “오늘의 톱뉴스” APP도 보는 사람마다에게 다 똑 같은 뉴스를 추천하는게 아니다. 독자마다의 관심사를 빅데이터로 분석해서 그 독자의 취미에 맞게 맞춤식 뉴스를 선별해서 올려준다. 따라서 휴대폰 APP 하나로 그 사람의 취미와 습관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휴대폰에 지문이니 얼굴인식이니 비밀번호가 필요한건 이런 사생활을 보호해 주기 위한 조치의 하나이기도 하다.

옆부서의 동료가 집을 바꾸면서 이러 말을 하더라.

“집을 바꾸려면 언제 팔아도 늦지 않다. 집을 팔았는데 이튿날부터 집값이 수직으로 상승한다 해도 아쉬워 할 것 없다. 오매불망 오르기만을 기다리다가는 영원히 팔지 못한다. 하물며 이러저리 망설이는 사이 집값이 내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집값의 오르내림에 관계 없이 내가 필요한 시점에서 팔면 된다. 왜냐하면 파는 동시에 또 하나를 사기 때문이다. “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다. 만가지 생각보다 중요한게 한가지 실천이다. 우리는 나이는 수자에 불과하다면서 자기최면을 걸어 나이를 잊으려 하지만 동시에 또 오늘이 남은 생에서 제일 젊은 날이라고 말한다. 결국에는 나이를 의식할수 밖에 없는거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젊었다고 나이를 만으로 계산하려 하고 그러다가 만으로도 피해갈 수 없는 해가 오면 또 생일로 계산해서 어떻게 하나 한살이라도 적게 만들려고 무등 애를 쓴다. 이건 마치 고급 호텔이나 아빠트 엘리베이터에서 길한 수자가 아니라고 4자나 13자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 도리다. 그런다고 4층이 5층이 되고 13층이 12층이 되는게 아니다. 꿩은 눈이 온 겨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머리를 눈속에 틀어박는다. 그러고는 자기가 완벽하게 숨었다고 생각한다. 다 눈가리고 야옹하는 식이다. 어차피 직면할거면 공포를 느끼기 전에 주동적으로 일찍 부딪치는게 낫다.

그래서 나는 녀자 동창들한테 30대 때부터 래일모레 40이라고 시대 때도 없이 나이를 의식시키는 작업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그때 그들은 아직 멀었는데 왜 자꾸 그러냐며 번마다 난리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래일모레 50이라고 자기네가 먼저 말한다. 놓아버리니까 편안한거다. 39살에도 40살은 신생사물이다.

바란다고 복이 오며 걱정한다고 화가 사라지지 않는다. 바뀌는게 두려우면 평생 전전긍긍한다. 살아가는 전 과정에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고 직장생활도 부단히 바뀌고 내 자신도 자의든 타의든 그때 그때 바뀌여 가야 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기업의 변화를 추동하라는 의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 그게 25년전의 일이다. 25년전에 벌써 한국의 최대 재벌 총수는 이런 의식으로 그룹을 이끌어왔다. 그럼 오늘과 같은 급속한 발전속도에서는 어느 정도의 강도로 내 머리를 빠꿔가야 할가? 계산이 잘 서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고 했다. 평온한 수면의 호수물이 쉽게 썩는다. 고요하고 안일한게 좋다고 현 상태에 안주할수록 위험부담은 점점 커져가는거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편안할수록 독이 된다. 그렇다고 기성세대에게도 편안한 시간이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사람이 일이 있어서 8시간 근무하는거 하고 뭘 할지 몰라 그냥 8시간 앉아있는 것 사이 차이는 충실과 허무의 차이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무조건 배척하려는 편견과 지레 겁을 먹는 공포심만 없애도 장애물의 반은 없어진다. 로신은 침묵속에서 폭발하지 않으면 침묵속에서 멸망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뒤로 밀려날 것이라고 바꿔본다.

바뀌여야 산다.

작성자: 궁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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