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은 단 한번 뿐이다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9-01-10 10:09:00

지난해 12월 30일에 집부근의 6호선이 새로 통했다. 전의 1호선 역보다 걷는 거리가 반을 넘게 절약된다. 멀리 1호선을 탈 때는 출근길에 운동도 되고 일거량득이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걸어서 역까지 갔었지만 정작 더 가까운데 지하철역이 생기고 나니 운동이고 뭐고 걸을 생각이 사라지더라. 사람 마음이란게 이렇다. 어쩔 수 없을 때는 거기에 합리성을 부여해 자아 위안을 하면서라도 견지하지만 어느날 그보다 더 나은 조건이 주어지면 냉큼 그걸 선택하지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를 고집하지 않는다.

썩 전에 회사의 선배님들도 지금 내 집 근처에 산 적이 있다. 그때 그분들도 그러려니 하고 출퇴근을 했는데 정작 회사 부근에 이사 오고 나니까 그때는 어떻게 다녔던지 싶더란다. 아침에 늦게까지 잘 수 있고 걸어서 10분이면 회사에 도착하는 집에서 살다가 차로 한시간씩 이동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라면 입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중한테 고기맛을 들이게 해놓고는 빈대까지 다 치워버리는 식이 돼 버리는거다. 어렵던데로부터 나은데로 가는데는 전혀 반감이 없으나 쉬운데서 어려운데로 가라면 저애가 심한 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가는데서 마냥 순탄한 길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올리막 고생을 해야 쉬운 내리막이 기다린다. 그리고 이제 겨우 올리막을 다 올랐는데 지금부터는 내리막이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마치 어떤 때는 가파른 등산보다 하산이 더 어려울 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 도리다. 그런데 성과는 왕왕 역경속에서 이루어진다.

모래가 처음 말조개 껍질안에 들어왔을 때 조개는 몹시 불편해 한다. 그렇다고 모래를 몰아낼 방법도 없다. 이때 조개앞에는 두가지 선택이 놓이게 된다. 모래를 눈에 든 가시로 여기고 증오하며 평생을 살건지 아니면 모래를 동화 시켜 자기의 일부분으로 만들 것인지. 결국 조개는 후자를 선택하고 자체의 영양분을 조금씩 할여해 모래를 감싸기로 한다. 영양분을 많이 할여할수록 모래는 점차 조개 몸의 일부분으로 되여가고 나중에는 평온한 마음으로 모래와 함께 살아가는거다.

빌게이츠가 대부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던건 자기 자식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자식이 조금이라도 고생을 하지 않게 만들겠다는건 자식에 대한 일종 변상적인 무책임한 행위라는걸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인상은 단 한번 뿐이다. 두번째가 또 있다면 그때는 신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기회는 한번 밖에 안 오며 기회는 늘 역경속에 숨어있다. 왜냐하면 순탄할 때는 기회를 잘 보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또 잘 보이지도 않는다.

또 치과 얘기를 하는데 아팠던만큼 머리에도 새겨지나 보다. 지난주 치과에서 이를 뽑을 때 의사가 왜 이제 왔냐고 묻더라. 참고 넘어갈수 있으면 참는데까지 참자고 하다보니 이제 왔다고 했다. 의사는 할 말이 없다는듯 허구픈 웃음을 짓더러. 일찍 갔더면 뽑을 정도까지는 안 가고 치료로 이를 보존할 수도 있었단다. 그런데 나는 일년을 참으며 견뎌왔다. 결국 나중에 이몸이 붓고 통증도 심하게 되여서야 변원에 나타난거다. 물론 이를 뽑는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뽑고나니 그처럼 시원할 수가 없다. 이가 없으면 이몸으로 산다더니 지금은 이몸으로 살지언정 아픈 이를 끌어안고 갈 생각은 없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였으니 방법이 아닌 방법을 택했고 시원하다고 자아위안을 하고 있지만 만약 그 이가 빨리 아팠더라면 오히려 병원을 일찍 찾아서 더 나은 결과로 마무리 했을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 통증의 역경이 너무 늦게 찾아온거다. 그래서 치료할 기회도 볼 수 없었고 결국에는 놓치고 만거다.

약 중에 제일 구하기 어려운 약이 후회약이다. 별의별 대상을 다 받아 안은 중견배우도 신인상을 못 받은데 대해서는 아쉬워 한다.

퇴직한 선배님께 이런 문의를 한적이 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후 제일 후회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루는 선배의 어머님이 부엌에서 보온병을 어떻게 하다가 바닥에 떨어뜨려서 박산났단다. 그때는 보온병도 귀한 재산이였던지 선배는 그 자리에서 왜 조심하지 그랬냐고 얼굴이 굳어져서 엄마한테 뭐라 했단다.

“글쎄 조심한다는게 그랬다. 미안하다.”

그 뒤로 엄마는 보온병의 곁에도 가지 않더란다. 로인들이 약도 드셔야 하고 뜨거운 물을 쓰실 일도 한두가지가 않으련만 돌아가실 때까지 보온병에 손을 안 대셨던 어머님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단다.

신인이니까 앞으로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나는 후배들이 갓 입사하면 받드시 말해주는 한마디가 있다.

“입사 일년사이에 바짝 정신을 차리고 업무에 몰두하라. 아니면 평생을 헤매인다. “

겁을 주려거나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나두 선배들로부터 들어온 말이고 그런 현상을 보아왔기 때문에 귀띔해주는 조언이다.

신인상은 단 한번 뿐이다. 주는 사람은 여러 사람을 줄수 있겠지만 받는 사람은 단 한번 뿐이다. 그럼 시상자가 더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가 아니며 수상자가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가?

한번 뿐인건 다 소중한 것이다

작성자: 궁금이

youshengxiangban@126.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