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명 자녀를 둔 어머니, 그중 20명을 명문대에 보내...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8-08-25 16:25:00

마운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때

종을 울릴 사람으로

특별히 요청한 사람이 있다.

바로 보통로동자의 몸으로

87명의 “자녀”를 양육했으며

무려 그중 20명을 북경대 청화대에 보낸

맥경방이다.

맥경방은 기타 자녀들도

거의다 대학에 입학시켰다.

맥경방과 시간을 같이 보내는 자녀들

19세에 우연한 인연으로 조학봉사의 길에 올라

1979년 19세인 맥경방은 광서성 백색시 인민병원 세탁실에서 로동자로 근무했다. 그무렵 달강향에서 할머니와 단둘이서 사는 한 남자애가 중등전문학교에 합격했지만 계림까지 갈 차표를 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맥경방은 이 전도유망한 소년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그후 1983년 전림현 평양툰의 한 요족녀성이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주변에 돌볼사람이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맥경방은 한달남짓이 이 녀성에게 밥을 날라주었다. 나중에 이 녀성을 보러 평양툰에 들렀다가 동네사람들이 옷가지를 비롯한 생필품이 부족한것을 보고 시내로 돌아온후 낡은 옷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거리도 사서 멜대로 지고 마을로 향했다.

이것을 계기로 빈곤한 마을과 어려운 학생을 돕는것이 맥경방의 평생사업이 되고말았다.

맥경방과 그녀가 수집한 낡은 옷들

87명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다... 그중20명이 명문대에 진학해

자신의 외동아들까지 합쳐서 선후로 87명의 아이들이 맥경방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이 아이들의 공부를 뒤바라지 했을뿐만 아니라 돌볼사람이 없는 고아들도 거두어줬다.

이렇게 온갖 아픈 사연을 지닌 아이들이 하나둘 맥경방의 자녀가 되였고 그녀는 이들을 친자식과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대했다.

침대와 이불, 그릇과 걸상은 맥경방의 집에 가장 많은 네가지 물건이다.

맥경방의 집에 들어서면 왼켠 바닥에는 두명이 잘수 있는 이부자리가 펴져있고 오른쪽에 놓여져있는 쏘파에도 둘이 잘수 있다. 거실에 놓여진 2층침대에서는 10명의 아이가 잘수 있다.

이렇게 맥경방의 집에서 최고로 14명의 아이가 같이 살기도 했다. 당시에는 일주동안 밥을 짓는데 쌀이 무려 90근이나 필요했다.

87명의 아이들은 현재 90%가 대학에 진학했으며 47명이 해외에서 근무하거나 류학중이다. 그녀의 허름한 쏘파에서 무려 11명의 청화대생과 9명의 북경대생이 배출되였다.

대학에 입학한 모든 아이들에게 맥경방은 매달 500원씩 생활비를 대주었다. 이에 비해 정작 친아들의 생활비는 고작 400원에 불과했다.

집에서 옷을 정리하는 맥경방

“저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지 못하는 대신 사람됨됨이를 가르쳤지요.”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애들을 키울수가 없어서 맥경방은 일거리를 추가로 두개 더 얻었다. 매일 퇴근하자마자 그녀는 야시장에 가서 꼬치를 굽고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깊은 밤이면 회사의 경비를 섰다. 이밖에도 그녀는 땅을 일궈 채소를 심고 돼지우리와 닭우리를 짓고 직접 물고기와 돼지, 닭,개를 키우고 파파야와 망고도 심었다.

정말 힘든 와중에도 맥경방은 산속 마을에 옷을 보내는것을 거른적이 없었다. 멜짐을 나르느라 그동안 맥경방이 부러뜨린 멜대만 무려 18개가 된다. 심지어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졌다가 밤중에야 정신을 차린적도 있다. 몇십년동안 산속에 나른 옷만 하더라도 족히 수십톤은 될것이다.

맥경방의 자녀로 들어온 아이들도 빨리 철이 들었다. 방과후면 채소를 가꾸고 돼지와 닭을 먹이고 삯일로 돈을 벌었다. 공부할때에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서로돕기를 하여 위학년 아이들이 아래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기초가 딸리는 아이를 도왔다.

“저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지 못하는 대신 사람됨됨이를 가르쳤지요.” 맥경방의 말이다.

맥경방의 방안에는 아이들이 쓴 카드로 만든 애심나무가 붙여져있다.

유일한 소원은 아이들이 사랑의 손길을 이어나가는것

선행봉사를 계속하게 한 원동력이 무엇인가는 물음에 맥경방은 처음 시작한 1979년에는 봉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이실직고했다. 다만 해야 할 일인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나중에 다시 가니 한 여인은 저번에 받은 옷이 몸에 딱 맞는다고 좋아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선물받은 옷이 정말 따뜻했다고 고마워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이 일을 계속하게 되였다.

맥경방은 아이들이 자립할수 있게 된후에 자기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울수 있기를 바랬다. 지금 그의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당지의 공익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지에 나가있는 자녀들도 애심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아프리카 후원프로그램을 발기하였다.

우리 함께 이 평범하지만 위대한 어머니를 찬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