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이의 일탈-나는 크는 게 싫다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8-05-11 15:23:00

출장에 바삐 돌다보니 오늘의 번역 단어가 끊기게 생겼다. 그래서 림시방편 급한대로 오늘의 내 마음을 번역해봤다.

출장이든 려행이든 북경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면 어쩐지 울쩍하다. 련일 폭음을 한뒤 이튿날 아침에 찾아오는 허무함과 비슷한 느낌이다. 내일의 출근이 싫어지기도 하고 금방 다녀온 도시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사이 보냈던 시간들이 금방 그리워지고 아쉬워진다. 그러고는 조금이라도 좀 더 신경을 써서 아껴서 그 시간들을 보냈더라면...라고 후회한다.

나는 크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게 싫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걸음마를 겨우 떼며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애들을 보면서 쟤네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일가? 길거리를 유쾌하게 산책하는 강아지도 유심하게 들여다 본다. 쟤도 아무 생각 없이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같기도 하고...말로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인생라고 세뇌하지만 득도한 고승도 아니고 실천이 쉽지 않다. 다행히 인류문명사의 기적-술이 있어서 잠시나마 나를 잊고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지만 자고 깨면 일장춘몽이다.

나는 크면서 아는 게 많아지는 것이 싫다. 이런 룰도 알아야 하고 저런 규범도 지켜야 하는 게 구속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이것 저것 앞뒤를 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하고 가고싶은 길만을 걷고싶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 내 머리속에 부단히 많은 것을 부여한다. 주입되는 것이 많을 수록 생각이 복잡하고 이것저것 고려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단순하게 사는 게 꿈이련만 세상은 그렇게 록하지 않다. 내가 원하든 말든 나에게 부단히 새로운 복잡한 현상들을 인식시켜 준다. 일정기간이 되면 쓸모없는 지난 파편들을 깨끗이 지워주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같은 프로그램을 깔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크면서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게 싫다. 100% 배부른 흥타령이란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된다. 또 무한정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고마움 뒤에는 나는 그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라는 자책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한 것보다는 받는 것이 너무 많다. 부담감이 확 몰려온다. 그럼 너도 그렇게 해주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는 게 정상인데 그게 그렇게 안되니 하는 말이다. 마음의 빚이 가장 무겁다.

나는 크면서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는 게 부담스럽다. 여기서까지도 싫다는 표현은 차마 할수 없다. 배부른 흥타령도 이정도면 봐주기 힘들다는 것도 잘 안다. 물질적으로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자극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내가 어렵던 시절이 왜 그렇게 자꾸 돌이켜 떠올려지는지 모르겠다. 10원짜리 한장씩 모아서 자그마한 식당을 찾아 숙소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서비스 료리까지 억지로 달라고 해서 먹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리울 뿐이다. 카드빚과 월급 날짜가 달리기를 하던 그 시절 경제적으로 많이 쫓기며 살기는 했지만 마음은 항상 유쾌했다.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인류사회는 지난 수십년간 엄청난 물질적 부를 창조했다. 그러나 그에 걸맞는 행복을 가져다 준 것만은 아니였다.

나는 크면서 나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게 싫다. 내가 20대 때 바라봤던 40대는 그렇게 거룩하고 년세가 지긋해 보였는데 내가 그 나이 되고 보니 지금의 20대도 나를 그렇게(거룩은 빼고) 보겠지 하면서도 믿고 싶지 않은 이 렴치없는 생각은 또 어디서 오는 걸가? 이쯤 되면 주책이란 게 생기게 되는 법이다. 주책이란 게 별거 없다. 나이 값을 못하는 모든 언행이 곧 주책이다. 남이 나이 먹으면 로화이고 내가 나이 먹는 건 성숙이고 로련함이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 엉뚱한 주책은 없다.

나는 그냥 크는 자체가 싫다. 이는 절대 늙어가는 게 싫다는 말이 아니다.어차피 늙을 걸 빨리 늙는 것도 나쁠 거 없다. 다만 클수록 복잡한 사람이 되는게 싫다는 말이다. 시골에서 살던 어릴 때가 제일 그립다. 그때 무슨 스모그니 황사니 상상이나 했을가? 매일이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 구름이였고 흐린날의 비마저도 하늘이 베푸는 깨끗한 단비였고 엄동설한의 함박눈도 웬지 덮으면 포근할 것 같은 햐얀 이불이였다.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름드리는 아니더라도 길 양쪽에서 수십년 자라 하늘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만나서 도로에 자연주랑을 만들어 주던 가로수를 하나하나 뒤로하며 아침 달리기를 하던 그 때 그 시절의 어린 내가 무지 그립다. 논밭 물도랑에서는 지금 말하는 이른바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며 붕어 미꾸라지들이 한가히 노닐고 간혹 논 두렁을 걷다보면 길을 잘못 들어서서 옅은 물의 벼모판에서 파닥이는 손바닥만한 이름모를 물고기도 귀엽기만 하다.

갈수록 정답을 모르겠다. 어떻게 커가야 하는지를...그래서 나는 크는 게 싫다.

2018년 5월 11일

궁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