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별것 아닌 날들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8-05-10 14:47:00

저녁 설겆이를 마치고 주방을 나선다. 그러는 내 눈에 남편이 아무렇게나 벗어서 쏘파에 던져놓은 양말이 보여온다. 못 본 척하려고 다짐하며 텔레비죤의 화면만 쏘아본다. 그러나 양말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별것 아닌 일에 나만 괜히 이상해질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남편의 퉁명스러움에 나 또한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댈 게 뻔하다. 나는 눈길을 애써 돌리다가 탁상시계가 조금 비뚤어졌다고 여기며 바르게 고쳐놓는다. 무의식적으로 다가가서 한 행동이다. 그리고 차라리 양말을 내가 빨래바구니에 가져다 넣기로 생각하는 동시에 역시 행동한다. 어쩌면 행동에 이어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서랍을 뒤진다. 분명 있을 것 같았던 감기약이 없다. 다시 찾아본다. 없다. 꼭 있어야 할 듯한데 없다는 게 누구의 탓처럼 화가 나려고 한다. 정리해놓은 것들이 자꾸만 이렇게 흐트러지는 게 참을 수 없다. 나는 입을 앙다물다 싶이 하며 옷을 주어입고 문을 쾅 닫아버리며 집을 나선다. 짜증을 낸 리유와 무관하게 애가 아프다는데 짜증을 낸 데 대해 량심의 가책을 느낀다. 약을 사들고 집에 들어와 애에게 약을 먹인다.

다시 텔레비죤에 눈길을 준다. 그러다가 문득 세탁점에 맡겨둔 옷을 찾아오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오늘 한 일들을 떠올린다. 휴식일이여서 아침에 예전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아침을 만들어 먹고 기름때가 끼여있는 가스레인지를 청소했다. 목욕을 조금 오래 했다. 빨래를 돌리는 한편 집안 구석구석을 닦았다. 채소를 사러 시장에 다녀오며 상점에 들려 소금을 샀다. 옷장을 정리했다… 너무 자질구레하고 복잡하고 시시한 일상이다.

그래서일가 때로는 발작적으로 정체불명의 감정에 휘둘리며 그 지리멸렬함과 진부함에 진저리가 나기도 했다. 꼭 마치 오늘처럼 괜히 화가 나듯이 말이다. 그래서 모두를 떨쳐내고 아무도 모르게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싶기도 하고 아무 리유도 없이 줄줄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때로는 차라리 확 미쳐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면 얼마 동안은 무기력해지고 허무해지고 딱히 대상도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분노 같은 감정으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별것 아닌 날들로 이어지는 일상이 권태롭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인 줄 잘 안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그 익숙한 반복들을 지극히 정상적으로 여기며 되려 다정하고 친절하게까지 받아들일 때도 있다. 이 단순하고 지어 멍청해보이기까지 하는 어이가 없는 감정들은 대신 당황스럽거나 혼란스럽거나 위태로운 국면 같은 걸 초래해주지 않는다. 늘 하등의 감정과 생각의 이입이 없이도 잘살아지며 태평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일상을 통채로 부정하는 나의 대책 없는 충동을 비난하기도 하고 다시 안도감이 드는 일상 속으로 꾸역꾸역 스며드는 자신에게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별것 아닌 삶들 속으로 돌아와 깊숙이 가라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도 분명하게 말해준다. 작디작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서 편안하게 안전한 령역으로 숨어들려는 게 아니다. 삶은 화려한 랑만이나 강렬한 열정이나 신비로운 환희 같은 것만으로는 살 수 없으며 그것은 어쩌면 잘못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 신기루 같은 희망들은 정작 우리가 정착해야 할 곳이 가장 평범한 현실이며 그 일상 속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역으로 설명하려고 우리의 리상 속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깊숙이 침전하여 단단한 현실을 밟고 서서 가장 온당한 자세로 리상과 현실을 바르게 직시해야 한다. 그때면 비로소 삶의 참모습을 보게 되며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을 더 잘 리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워가는 그 세심한 노력들과 절대적인 헌신이, 달마다의 로임을 랑비가 없이 잘 계산하며 살아가는 그 치밀함이, 려행이나 장신구나 집이나 옷이나 등과 같은 욕심을 버려가는 용기가, 새로 만나는 사람도 일도 없는 오래된 날들을 계속 살아낸다는 것이, 서로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유약한 내면이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알면서도 마지막 면사포를 벗기지 않으며 스스로 아픔을 위안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일인지를 아무도 감탄하지 않지만 나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살면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거나 세계명작을 펴내거나 세상을 구하거나 하는 위대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가?

문득 얼마 전에 나누었던 문안인사를 떠올린다. 새해를 맞이하며 따뜻한 마음을 담아 문안메시지들을 띄웠고 나는 몇통의 답장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아름다왔던 그 새해인사에 며칠을 두고두고 행복했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문안인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아무 문제될 일은 없다. 결국 나의 생활은 내가 느끼기 나름이니까. 그렇게 삶의 틈틈이마다에서 스스로 반짝이는 날들을 이끌어내고 느끼며 살아가는 게 성숙된 삶의 지혜가 아닐가 생각한다. 때로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때로는 꽃향기를 가슴에 담기도 하고 때로는 하염없는 그리움에 넋을 놓고 시간을 허송하기도 하고 비가 오면 우울해져도 좋고 눈이 오면 고요한 환희를 느껴도 좋고… 짜릿함이나 찬란함은 없어도 너무 따뜻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평이하고 단조로운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설레이고 감동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숨막히도록 괴롭게 만들어주는 건 우리의 일상이 아니라 그 일상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느끼지도 가꾸어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별것 아닌 삶을 초월해서 다르게 살고 싶지 않다. 기존의 친근함 속에 온몸과 맘을 열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미처 듣지 못햇던 것을 듣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느끼고 싶을 뿐이다. 삶 자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순수하고 진실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오감으로 느끼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무심히 지나쳤거나 아니면 떨쳐내고 싶었던 일상들이 기실은 얼마든지 사랑스럽고 감미로운 존재들이라는 걸 깨닫고 싶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금방 양말을 빨래바구니에 갖다 넣을 때 남편이 가볍게 지어주던 미소와 약을 사다 먹여주는 나에게 어리광 부리듯 안겨들 때 내 얼굴에 닿아오던 딸애의 보드라운 살갗의 감촉과 한 집안에서 따스하고 고르로운 숨결로 함께 엮이고 있는 이 시간과 적당한 소음과 적당히 널린 공간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지극히 평온한 분위기…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내 마음의 깊은 곳으로 조용조용히 흘러들어 고운 무늬로 번져가는 걸 느낀다. 소박하지만 또한 싱그러운 이 감정들은 매 하나의 선들이 그어지고 매 한점의 물감이 칠해지면서 완벽하게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듯이 나의 아름다운 삶을 완성시켜가는 것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기실 하찮아보이는 것들이 소중한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나의 별것 아닌 날들을 사랑으로 껴안는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미 행복했다.

작가: 주향숙

<장백산 잡지> 2017년 제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