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내 허점에 찍힌 친구의 즙액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8-02-11 09:18:00

오늘저녁 술 생각이 났다. 많은 사람이 모여 욱적거리는 그런 장소 아닌 아늑하고 조용한 술 모임을 가졌으면 싶어졌다. 누구를 부를까? 나는 내게 친구가 아주 많다고 생각되었는데 막상 대접하려고 보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꼭 가까이 해야 되겠다던 공직의 친구들은 별로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와 달리 오히려 그저 평범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얼굴이 더 많이 떠올랐다. 왜 이런 것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이속에 문서가 있었다. 내게 친구를 사귀는 활력소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먼저 왔다. 나는 평범한 시민이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형님이요 동생이요 하면서 잦은 왕래들을 하는데 나는 고직하여 사교를 잘 못하는 편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누가 오늘 저녁의 내 친구일까. 한동안 생각을 하다 보니 차차 떠오르는 몇이 있었다. 그 얼굴들이 떠오르자 불시로 내 얼굴에 내밀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중시했던 신분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돈이 많은 친구도 아니었고 언변이 좋고 활력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아 이런 사람들이 나의 진짜 친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내게 많은 도움을 준 귀 큰 친구가 아니었고 말수 적고 무던하던, 내가 별로 챙기지 않던 친구였다. 평범하고 한가한 이 밤에 제일 먼저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은 얼굴이 오목오목하고 일상 모습이 느슨한 친구였다. 그를 불러  말없이 이 시간을 같이 하고 싶어지는 나였다.

왜 이 느슨한 친구가 내 맘을 당기는 것일까. 기실 우린 서로 많이 무엇을 돕는 그런 실용관계도 아니었고 취미가 같은 것도 아니었다. 전화를 걸었으니 그가 먼저 올 것이었다. 아직 보지 않았지만 그가 나타나 별 말 없이 시무룩이 웃으며 다리를 곁의 의자로 뻗고 한가롭게 앉을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가 별로 친하지도 않은 것 같으면서도 친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제 그도 나를 별로 개의치 않으면서도 좋아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왜 나를 좋아할까? 또 내가 왜 그를 좋아할까? 문제는 간단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쉼터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와 같이 있으면 아무런 부담감이 없었다. 그도 나와 같이 있으면 아무런 거리낌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될 수 있는 건 우리 둘 다에게 허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허점이 있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이 아니다. 경쟁의 시대에 우리는 또릿또릿하게 눈알을 판들거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일상이 느슨하게 사는 나와 이 친구가 서로를 흡인하는 것은 이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맘을 편히 놓고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 거다. 나는 내 몸에 부족점이 숭숭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몸에 친구들이 기대고 쉬여갈 수가 있는 것이겠다. 너무 세련되고 똑똑하면 가까이 하기에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나도 그 친구가 무던해서 같이 있으면 한 집식구처럼 마음이 느슨해지고 편안한 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전화를 세 곳에 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작가:구용기

<송화강>잡지 2017년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