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 마비 아들을 북경대학,하버드 대학으로 보낸 홀어머니 이야기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7-11-10 17:25:00

2017년 8월 하버드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사법시험에 응시한 정정이 호북 무한의 집으로 돌아왔다. 10년전인 2007년 정정은 660점의 높은 점수로 북경대학으로 진학한뒤 북경대학 국제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화려한 경력은 그 어느 젊은이한테도 너무나 자랑스러운 성적일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학업에서 우수한 그가 한때는 뇌성 마비를 앓고 있었던 아이였다는것을 믿을수 있는가?

결코 버릴수 없는 내 자식

29년전인 1988년에 출산할때 자궁내 질식으로 정정은 태여나서부터 뇌성 마비 진단을 받았다. 다섯장의 위독 통지서와 “아이의 장래는 지적 장애아”라는 의사들의 예언 앞에서 정정의 엄마 추굉연은 아이를 남겨달라는 선택을 했다.

추굉연: 장애가 있다해도 나는 내 아이를 버릴수 없었다.

정정의 아빠는 리성적으로 포기하자고 주장했다. 애 엄마인 추굉연의 강결하게 견지하에 애 아빠는 “아이를 남기면 혼자 키워라”는 모진 말을 내뱉었고 그래도 추굉연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추굉연: 그때 생각으로는 내 아이가 살아만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두렵지 않을것 같았다.

태여난지 5일만에 정정은 드디어 세상을 향해 첫 울음소리를 냈다. 열흘이 지나 추굉연은 퇴원하고 정정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뇌성 마비 아이는 3가지 증상이 있다. 하나는 운동신경 손상으로 마비가 오는 경우; 두번째는 지력손상으로 지적 장애아로 성장하는 경우; 세번째는 상술한 두가지 경우가 동반하는 것이다. 추굉연의 가장 큰 바램은 아이의 지능이 정상인것이였다고 한다. 그러면 설사 마비가 오더라도 독립적으로 생계를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살전 정정의 지력은 량호한것으로 나타났으나 경한 마비 증상을 보였고 왼발의 움직임이 령활하지 못하였으며 운동 장애가 있는것으로 진단됐다. 정정은 침을 자주 흘리고 두손은 힘이 빠져서 물건을 잡지 못했으며 두살반이 되여서야 겨우 걸음마를 뗐다. 정정의 사지 조화 능력을 가강하기 위해 추굉연은 먼저 어린 정정한테 종이 찢기를 시켰고 후에는 젓가락 사용법을 배워주었다. 하지만 젓가락 사용법 련습은 정정이한테 엄청 힘든 일이였다. 수없이 반복되는 련습으로 어린 정정은 짜증이 나서 젓가락을 뿌리기까지 했다.

추굉연: 3살이 됐을때 할머니는 그만 련습하고 숟가락을 사용하라고 했다. 어린 아이가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사용하는것은 괜찮은데 다 큰 중국인이 젓가락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모두들 다 젓가락을 드는데 혼자 어릴적부터 뇌성 마비가 있었다고 설명할것인가? 하여 나는 반드시 젓가락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조차 못하는것은 남한테 뒤지는 매우 열등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런 노력을 통해 정상인들과의 거리를 줄일수 있다면 앞으로 모든 일에서도 노력을 통해 목표를 실현할수 있을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면 어쩔수 없는데 꼭 노력해야 된다.

추굉연은 아들 정정이가 일반 아이들중 한명인데 단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느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손상된 뇌성 마비 아이가 일반 아이들처럼 생활하는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는 나만 보면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운동신경이 손상된 뇌성 마비 아이의 경우 3-6세는 운동기능을 되살리는 황금기라 본다. 그래서 3살때부터 추굉연은 아들 정정을 데리고 병원에서 재활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추굉연은 무한 유아사범학교 교사였다. 낮에는 출근하고 퇴근후면 자전거를 타고 아들을 데리고 이틀에 한번씩 마사지 받으려 다녔는데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변함이 없었다.

한번은 폭설이 내린후 길이 미끄러워 자전거가 물 웅덩이에 빠졌다. 정정이는 넘어져서 울었다. 우는 정정을 일으켜 세우면 자전거가 넘어지고, 자전거를 세워놓으면 정정이가 넘어져 울었다. 그날 추굉연은 정정을 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진흙 투성이가 되여 병원에 도착한 두 사람을 보고 의사가 “이런 날씨에는 오지 않을줄 알았다”고 말했는데 추굉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의 치료를 중단되면 안된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추굉연: 정정을 키우는 과정에 점차 내가 리성적이고 스스로 감정을 정확히 컨트롤하고 두뇌가 명석해야 된다는것을 인지했다. 만약 그가 운다고 따로 울면 모든 일은 엉망진창이 될것이 분명했다.

넘어진 아이가 대성통곡하는것은 어른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 누군가가 그를 도워줄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옆에 아무도 없다면 두어번 징징대다가 계속 갈길을 갈것이다. 나는 옆에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 아이와 같기 때문에 내가 울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속으로는 힘들어도 반드시 강한 척을 해야 한다. 강한 척을 많이 하다보니 그것이 진짜로 몸에 배여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되였다. 아이 앞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다. 언제든지 아이는 내가 보이면 마음을 놓여하는것이 보였다.

녀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1990년대에 뇌성 마비 치료는 환급받는 항목이 아닌데다 매번 치료는 5원씩 지출되는데 일반 가정에게는 적지 않은 비용이였다. 아들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사람들과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 추굉연은 자신을 마사지원으로 만들었다. 틈만 나면 아들한테 마사지 해줬는데 점심 시간에도 집에 달려가 아들과 함께 종이 찢기 게임을 하고 치료비가 없으면 일당도 열심히 뛰였다. 전 호북성의 기업을 순회하며 강의를 했고 중간에 5년간 보험 상담원으로 겸직했던적도 있었다.

장애아를 계속 키우려 할때부터 애 아빠는 찬성하지 않았고 정정의 전반 치료과정에 애 아빠는 참여하지 않았다. 정정이 열살 되던 해에 정정 부모는 리혼 결정을 내렸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추굉연은 항상 “녀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1%의 희망이라도 있으면 100%의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는 원동력이 있었다.

추굉연: 아이가 태여날때는 다른 애들과 달라 조용히 이 세상에 왔다. 세상을 떠날때에는 이처럼 조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지금에 오기까지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노력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느꼈다. 정정은 남들이 하는 일도, 남들이 아직 못하는 일도 노력을 통해 장악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노력하지 않을 리유가 있는가?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된다고 4살된 정정은 정상적으로 걸을수 있었고, 5살된 정정은 다른 아이들처럼 뛸수 있었으며 7살때에는 의젓한 소학생이 되였다. 그리고 초중, 고중...

최대의 지혜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개변하기 위해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것!

2007년 정정은 660점의 높은 점수로 북경대학 환경과학 공정학원에 입학했다. 오랜 기간의 꾸준한 재활 훈련으로 그의 몸은 정상인들과 별다르지 않아 전반적으로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았지만 바느실을 꿴다거나 정밀함을 요구하는 과학실험을 진행할때에는 다소 동작을 완성하기는 어려웠다.

본과를 졸업하고 북경대학 국제법학원에 진입하여 석사 학위를 따냈으며 그동안 여러차례 국가장학금,북경시 우수 졸업생,삼호학생 등 영예를 받았고 졸업후에는 유명한 인터넷 회사의 법무부에 취직하였다. 1년후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정정은 하버드 대학에 록취되여 지식을 학습 하였으며 올해 5월 하버드 대학 법학원의 법률 석사 학위를 성공적으로 손에 넣었다. 그후 미국 사법시험에 응시하였는데 아들의 응시 시간에 맞춰 추굉연은 미국에 다녀왔다.

뇌성 마비 아이를 하버드 대학에 보낸 추굉연은 단 한번도 자신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가진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자식의 부단한 성장을 동반하고 응원하는 엄마”라고 말한다. 아이의 성장 과장에 엄마로서 그녀는 항상 한편이 되여주고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였다. 간난신고로 가득찬 기나긴 과정이였지만 자식과 함께 노력할수 있어 그녀는 행복했고 부단히 힘이 생겼다고 한다.

추굉연: 30여년간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비록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많은 시간, 정력과 사랑이 필요한 자식이 있지만 나의 학생들한테도 존경받을수 있는 떳떳한 선생님이였다. 사업상의 이런 추구와 투입으로 아들은 무엇이 진정한 노력이고 분투인지를 알게 되였으며 왜 노력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였다. 정정이와 나는 서로 응원하고 서로 격려하며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도 항상 그에 대한 요구를 낮추지 않았고 나 자신에 대한 요구도 낮추지 않았다. 내가 자신에 대한 요구를 낮췄으면 아마 아이도 지금처럼 나를 신뢰하지 않았을것이다.

2017년 10월 정정은 한 대형 회사의 법률 상담원으로 취직했고 추굉연도 무한 도시직업학원의 부교수로 승진했다. 아들을 우수한 인재로 양성하는 과정에 상상할수 없을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추굉연은 사업적으로도 매우 우수했다. 선후로 무한시 제1기 우수 청년 교사, 무한시 학과 선두자, 무한시 청년 교직원 모범 등 수많은 명예를 받았다.

추굉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아들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혜롭다면 그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을 바꾸고자 노력했기 때문일것이다. 아들은 예전에 나를 “돌판 아래 잡초”라 평가했다. 그만큼 생명력이 있고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으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기때문 그런 평가를 내린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