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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 백신 그리고 항체

2020-03-26 18:07:54     责编:최월단     来源:央广网

글 궁금이 · 방송 강설화

컴퓨터의 바이러스는 컴퓨터 전문 업체가 해결해주고 질병 바이러스는 의료기관에서 해결해주는데 사람의 정신상의 감염은 누가 해결해줄가.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고 평생에 거쳐 연구하고 개발해야 할 대형 프로젝트이다. 우리는 대책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약이 없다고 표현한다. 기껏해야 죽기야 하겠냐고 배를 째라는데 정말 속수무책이다. 이런 경우를 전에 시골에서는 아다모끼라고 했다. 혹시 사투리거나 일어에서 왔나 검색해봤더니 마구잡이나 생억지라고 풀이했다.

얼마전에 오스트랄리아에서 입국한 녀성이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아빠트단지에서 달리기를 하고 방역원들이 제지시키니 당신들 간부를 불러오라며 난리를 하는 영상이 화제였다. 외국 국적이면 자기를 어떻게 못할 줄로 안 것 같은데 결국에는 회사에서 제적당하고 비자도 무효 처리됐다. 종남산 원사의 말처럼 민간인이 마스크를 하고 될수록 집에 있으라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가. 그것도 평생 그러고 있으라는 것도 아니고 이 비상시기에 14일만 자제를 해달라는데 그게 먹히지 않으면 다른데서도 뻔하다.

어제 오후에도 북경시는 기자회견을 열고 입국 인원에 대한 법률조치를 재확인했다. 그 내용을 한마디로 개괄하면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현지 법을 따르라는 지침이다. 쩍하면 자기는 어느 나라 국민이라며 항의하던 낡은 터에서 이밥먹던 우월감은 깔끔하게 접고 조용히 이 나라의 법에 따르라는 아주 간단명료한 처방이다. 

간혹 인터넷에서 자기가 음주운전을 해놓고는 검문중인 교통경찰 앞에서 상의를 벗어버리며 발광을 하는 아줌마의 해괴망측한 육탄전을 접하게 된다. 교통경찰이 아니라 과학원의 최고의 원사도 길거리에서 싸움닭을 만나면 입이 열개라도 이기지 못한다. 이럴 때에는 포장하여 얘기하면 법이라도 말려줘야 되고 무식하게 표현하면 정신이 돌아버린 강아지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다.

전에 어른들이 그러는데 산불이 나면 맞은 편의 일정한 거리에서 나무를 베여 격리대를 만든 다음 산불이 오는 방향으로 맞불을 놓으라고 했다. 그러면 불이 량켠에서 타들어가면서 가운데서 만나면 더 이상 탈 데가 없어서 진화된다는 토방법이였다. 지금처럼 헬기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산에 소방차가 올라갈 수도 없으니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방법이 아닌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 다년간 농사일을 해오면서 들풀을 태우다가 불이 잘못 번졌을 때 써먹던 방법이였는데 나중에는 산불에도 적용했나 보다. 선조 때부터 화재를 많이 겪으면서 항체가 생겨나고 그러면서 개발된 불끄기 백신이다. 이게 혹시 인간생활에서도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

미사일이 개발되면 미사일방어체계라는 것이 구축된다. 그러면 다시 레이다에 잡히지 않는 더 선진적인 미사일을 연구하게 되고 또 다시 그에 따르는 방어체계가 완비화된다. 방패는 창의 날카로움을 연구해 점점 견고해지고 창은 어떻게 하면 방패를 뚫을가 고심하다 보면 또 더 예리한 창끝이 완성되여 간다. 

자극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기존의 형태로도 충분히 편안하고 바빠봤자 더 차례지는 실리도 없는데 굳이 고생을 사서 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안일한 생각에 채찍을 가하기 위해 우리는 위기의식이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한다. 지금의 편안한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자극을 주는 거다. 라태함에는 위기의식 만큼 효과적인 백신도 없다. 멀쩡하고 큼직한 입사귀를 밖에다 두르고 속부터 썩어가는 배추가 되지 않으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백신을 주사하는게 시급하다.

어릴 때 애들이 장난에 빠지거나 다른 데 정신이 팔려서 밥을 잘 먹지 않으면 할머니들은 애를 따라다니며 한술이라도 더 먹이겠다고 로심초사한다. 이때  옆에서 엄마가 할머니로부터 밥그릇을 가져다가 옆집에서 놀러 온 애한테 먹이며 너는 왜 이렇게 밥을 잘 먹냐며 칭찬한다. 그러면 안 먹겠다고 도망가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뛰여와서 자기도 먹겠다고 빼앗아가다 싶이 한다. 내 엄마인데 왜 옆집 애를 더 이뻐하냐는 본능적인 귀여운 질투심에서 유발되는 행동이다. 엄마는 그 심리를 리용해 밥을 잘 먹지 않는 애의 나쁜 버릇을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고쳐준다. 이렇게 번마다 애의 나쁜 행동에는 항상 엄마의 백신이 따르며 더 나쁜 습관으로 굳어지기전에 미연에 싹을 자른다.

그런데 엄마의 백신에 습관이 되다 보면 아이에게도 항체라는 게 생겨난다. 그렇게 애가 점점 커가면서 자기 생각이 있게 되고 주장도 뚜렷해지면서 이제 백신이 슬슬 약발을 잃어간다. 그게 사춘기가 되면 고조에 이른다. 이때 투입되는 게 아빠라는 더 강력한 백신이다. 아무리 남녀 평등이고 절반 하늘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애의 눈에도 엄마의 힘보다 아빠의 권위가 더 서는 법이다. 왜냐하면 엄마와 달리 아빠는 작은 일에서 애한테 많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지척에서 시도때도 없는 잔소리를 밥먹듯 들어오던 엄마의 교육 환경에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애에게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역반심리의 항체가 생긴다. 그런데 간혹 나타나는 아빠의 근엄한 권위 앞에서는 애 마음속의 방어체계가 아직 잘 구축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엄마의 자잘한 “세균공세”보다는 아빠의 굵고 짧은 “권위바이러스”가 애한테는 한결 더 잘 먹힌다. 

그러다가 둘 다 안 먹히는 날이 오면 그건 부모가 애한테 사명을 다한 날이다. 그러면 이때부터는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만년의 시작이다.  엄마가 리모콘을 잘 쓸 줄 몰라도 짜증을 내고 아빠가 휴대폰 문자가 좀 서툴러도 나무람한다. 부모님들은 년로해지면 일단 힘이 없어지고 반응이 무뎌진다. 그래서 이때가 되면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너도 늙어봐라” 이 한마디밖에 없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로 이 세상을 조용히 하직한다.

그렇게 부모를 보낸 자식은 자기가 애를 낳아서 다시 부모 립장이 된다. 그러면 그전의 부모의 심정을 몇배로 리해한다. 그렇다고 그 리해가 곧 애한테 대한 리해로 련결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또다시 부모와 아이의 새로운 공방전이 시작된다. 

마스크는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말라고 쓰고 백신은 이미 들어온 바이러스에 대응하려고 만들어진다. 이미 체내에 들어왔든 아직 밖에 있든 항체만 든든하게 생기면 걱정할 것도 없다. 

그런데 굳이 외부에서 투여되는 백신이 아니더라도 내적인 방어체계도 있었으니 그게 바로 면역력이다. 면역력은 세상만물의 모든 형태에서 필요하고 유효하다.

훌륭한 글의 면역력은 악플에서 온다.

궁금이

youshengxiangban@126.com

*본문은 작가 개인의 견해일뿐 중국조선어방송넷 위챗 계정의 견해나 립장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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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 백신 그리고 항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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