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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과 연교사이

2019-10-09 18:13:24     责编:박운     来源:央广网

 

글 궁금이 · 방송 전금화

 

 

 

    국경휴일의 마지막 날은 중양절이였다. 연교의 조선족 로인들이 모여서 80세이상 로인들을 위해 명절을 쇠드린다고 한다. 70대가 80세이상 로인들을 위해 명절을 쇠드린다는 건 경로의 뜻도 있겠지만 70대는 아직 로인이 아니라는 뜻도 있는 것으로 나는 리해한다. 하긴 아빠트단지 공원에 내려가 보면 웬만한 로인분들은 다 80세를 넘기셨다. 옛날의 시골에서는 50대도 로인이였는데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 리유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연교까지는 직선거리로 50키로고 제5순환도로로 가면 80키로다. 연교는 행정구역으로는 하북성에 속하지만 북경의 통주구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있어서 지리상으로는 북경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거리가 거리인지라 연교에 사는 친척들도 자주 만나게 되지 않는다. 외삼촌 내외가 생전일 때도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도의적으로 어르신들이 계신다는 잠의식은 있어서 종종 집에도 찾아뵙고 그랬었다. 하지만 이제 다 돌아가시니 남은 사람들은 서로가 시간도 맞지 않고 해서 자주 만나지 못한다. 이번 국경절기간에 연길에서 조카결혼식이 있어서 연교의 외사촌동생이 다녀왔다. 친척들 단체방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친척이 많지는 않지만 북경을 대표해 갔으니 대신 많이 축하해주고 와라.”

 

    “그래도 연길 빼고는 북경이 제일 많소.”

 

    북경에 사는 집들이라야 봤자 결혼식에 간 외사촌동생의 오빠하고 나까지 그냥 세 집인데 이제 고향에는 세 집이 사는 도시나 마을도 드물다는 얘기다. 그리고 앞으로 조카들사이에서는 연락하면서 살면 좋은 거고 연락이 끊겨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 서로 많이 떨어져 사는 원인도 있겠지만 친척이란 개념이 이처럼 희미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6일날에 다들 시간이 된다길래 외사촌동생 두명과 함께 오랜만에 모였다. 만난집은 간판이 없고 단골 예약손님만 받는 음식점인데 게사니료리를 잘 만든다. 전에 시골에서 한족들이 게사니를 많이 키웠는데 게사니 한마리면 개 반마리의 고기가 나온다고 어르들이 그러셨다. 애견인사들이 늘면서 개고기 얘기가 좀 민감한데 어쨌든 그만큼 게사니 고기가 분량이 많다는 얘기다. 그리고 즙만 잘 해놓으면 어느 고기가 무슨 고기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

 

    “같은 북경에 살면서 오랜만이요.”

 

    첫잔을 들면서 외사촌동생이 하는 말이다. 정은 자주 만나야 이어지고 깊어지는 법이다. 누구나 다 아는 도리인데 누구나 다 실천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만나니 옛날에 외가집 마을에서 놀던 얘기며 인상에 남았던 음식이며 추억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때 외가집에 놀러가면 저녁마다 이불이란 이불을 다 꺼내 구들에 펴놓고는 그안에 숨어들어가 손으로 만져서 누가 누군인지 맞히기를 하는가 하면 기어코 이불장 뒤켠에 비집고 들어가 숨박꼭질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은 정신이 잃어지는 장면이지만 욕 한번 하지 않고 그냥 마음껏 뛰놀게 놔두었던 게 외가집 어른들의 너그러운 아량이였다. 이런저런 일들을 돌이켜 보면 눈앞에 선한데 이제 다 수십년전의 일이다. 지금은 애 하나 키우면서도 장난이 좀만 심하면 못산다고 야단인데 비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림이다.

 

    녀동생의 말을 빈다면 “짚신에 양복”이라고 게사니고기를 삶아서 양주를 마셨다. 원래는 양주를 진렬하는 게 취미였는데 이제 마셔버릴 때도 됐다 싶어서 하나둘 들고 나간다. 친구들은 이제 그 양주 다 변했겠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선배는 30년산이 우리집에 와서 십년 넘게 있었으니 이제 40년산 50년산이 됐을 거라고 한다. 양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미 쌓아두었던 술이고 입에 대기가 상대적으로 부드러워 맥주 다음순으로 꼽는 괜찮은 술로 여긴다. 낮술이라 자제해서 기분이 적당하다 할 때 마무리 했다. 그런데 그 적당히가 항상 문제다. 아직 량이 좀 남았으니 저녁에는 통주에 있는 친구와 계속 이어가기로 약속이 잡혔다. 

 

    맥주가 다양하게 있어서 단골로 찾는 집이 있는데 이 집에 가면 복무원을 부를 필요없이 맥주를 스스로 꺼내 마시고 나중에 병이 몇개냐에 따라 계산하면 된다. 회전스시에 가면 접시 색갈과 개수로 계산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이다. 어릴 때 익살궂은 친구들은 창문 옆을 골라 앉아서는 맥주를 마시는 족족 병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나중에 상에 남은 맥주만 계산하겠다고 했던 생각이 난다. 이 집에서도 우리 스스로 랭장고에서 꺼내먹도록 허락하기는 했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계산할 때는 상밑도 들여다보고 확인한다. 어떤 때에는 술상의 신뢰관계란 게 이렇게 취약하다.

 

    친구는 자전거운동에 취미가 깊어 이날도 한시간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왔다. 오는 건 운동삼아 왔는데 가는 게 무척 걱정이다. 아직 도로교통법에는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도로교통법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길에 인증샷으로 몇번을 찍어 올린 걸 보니 차가 적어서 괜찮기는 하겠더만 그래도 이제 마음이 행동을 따라주지 못하는 나이로 가고 있는만큼 조심해야 한다. 

 

    “너도 이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위챗도 쓰고 싶을 때만 쓰라.”

 

    “나도 강박증이 싫지만 쓰고 싶을 때라는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친구의 저 말에는 완곡하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으니 다산을 하다 보면 필히 쭉정이가 나온다는 뜻이다. 후배들도 이런 조언을 해준적이 있다. 오늘 이른 새벽에 모멘트를 보니까 어떤 후배가 꿈속에서 글을 썼다는 사연을 올렸던데 나도 그런 꿈을 자주 꾼다. 여차여차한 주제로 위챗을 써내려가는데 했던 얘기가 계속 반복되고 결말을 맺지 못하는 꿈이다. 항간에는 호랑이도 새끼를 많이 낳다보면 그중에는 시라소니 한마리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아예 끊든가 아니면 견지하든가 해야지 나에게 있어서 중간상태는 아주 고통스러운 형태이다. 하물며 그 쓰고 싶다는 때가 어느때일가? 그게 어렵고 그런 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랴”고 했다. 그냥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 그게 죽음이든 삶이든.

 

    고집은 악질이다.

 

 

 

궁금이

youshengxiangban@126.com

 

    *본문은 작가 개인의 견해일뿐 중국조선어방송넷 위챗 계정의 견해나 립장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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