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연길서시장 80년래 변화!
2018-11-07 0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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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원:연변교통문예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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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서시장은 세세대대 사람들의 기억을 담고 있을뿐만아니라 연길 개혁개방 40년래 발전과정을 고스란히 지켜 본 산증인이기도 하다. 또한 부동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연길서시장은 서로 다른 추억과 이야기로 해석된다.

11월 3일 (시운영 첫날) 아침, 담요와 영유아복장 사업을 하고 있는 업주 최미자씨는 새로 개업한 서시장을 찾아 새로운 가게에서 물건정리에 한창 분주하다.

80년대초, 최미자씨의 시부모님은 서시장에서 견직물 장사를 하였는데 당시 물건이 귀해 장사가 아주 잘 되였다. 1992년 최미자씨는 시어머니의 격려하에 사업단위 일군으로부터 개체업주로 되였다.

최미자씨는 “창업초기 서시장의 환경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바닥을 한번 쓸면 먼지가 날렸다. 후에 대천성에 가 장사를 했는데 아무런 비용도 내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환경도 아주 좋았다. 지금 다시 새로 선 서시장에 이사를 와보니 확실히 조건이 많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고 했다.

(최미자씨 시어머니)

2011년, 대학졸업후 상해에서 사업하던 딸이 연길에 돌아오며 최미자씨와 함께 영유아용품 매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최미자씨는 “3대째 사업이 이어지고 있는 서시장은 저희한테 특별한 의의가 있다. 서시장이 없었더라면 일자리도 없었을 것이다. 딸이 경영에 가입한 후 목전 판매하고 있는 아동복은 모두 한국에서 수입해 온 것으로 광주, 상해, 청도 등지에도 판매되고 있다. 위챗을 추가하면 그 어느 곳에 있든지 수요되는 물건을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최미자씨의 딸 김영씨는 서시장의 미래에 대해 신심이 가득하다고 했다.

“아주 자랑스럽다. 이 가게는 할머니가 저희한테 물려준 것으로 저까지 합하면 3대째 경영하고 있는데 아주 의미가 크다. 새로운 모습의 서시장은 갓 장사에 뛰여든 젊은이들한테 새로운 환경을 마련해주었는데 이는 아주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올해 70세인 장혜주씨는 서시장에서 비닐봉지 가게를 30년 가까이 하고 있다. 80년대초 당시 40여세였던 그녀는 서시장에서 30년동안 장사를 하면서 남편과 함께 네 자녀를 키웠다.

(장혜주씨 대천성의 가게)

  (장혜주씨 새 서시장 가게)

장혜주씨는 “4명의 자식들이 모두 결혼했다. 서시장은 우리 일가족의 경제적 기둥이다. 처음엔 힘겹게 장사를 시작했지만 서시장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고 아직도 이 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서시장에서 복장가게를 하고 있는 황송채씨는 절강사람이다. 그녀는 80년대 부모와 함께 흑룡강을 떠돌다 연길에 자리잡고 복장사업을 시작했다. 1995년 황송채씨와 남편은 서시장에서 가게 몇개를 세 맡고 가죽, 모피제품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가게도 작고 낯선 곳이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20여년간의 분투 끝에 초반의 가게4개에서 현재는 가게 10개를 소유하고 있으며 일가족이 연길에 정착하게 되였다.

(낡은 서시장의 황송채씨 가게)

  (새 서시장의 황송채씨 가게)

“서시장에서 가게자리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연길에 점차 마음을 붙이게 되였다. 지금은 기본상 적응이 되였고 장사도 날로 잘되고 있다”

연길서시장은 연길시중심 가장 번화한 상업거리 해방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공업무역, 농업무역을 일체화한 조선족 민족특색이 다분한 대형종합시장이다.

일찍 지난 세기 30년대, 연길서시장은 상인들이 매매와 거개를 진행하던 장소였는데 이런 형식은 70년대말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부터 천장, 매대, 기둥과 담을 갖춘 간단한 시장으로 건설되였다.

(연길 서시장 초기)

(1980년대 서시장)

선후로 중부 청사, 서쪽과 동쪽 청사, 종합청사를 건설하여 승리, 민강 두개 골목에서 3개 구역으로 분할되는 경영구도를 형성했다. 옛 연길사람들이 익숙한 중부 청사, 고급청사, 엘리베이터 청사, 남쪽 구역과 북쪽 구역, 마당, 채소구역 등이 바로 이 세개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경영면적이 36000평방메터에 달하고 3000여개 가게가 있으며 취업인수는 5000여명에 달했다. 경영범위는 복장, 채소, 육류, 수산물, 부식품 등 농부산물이 포함된다.

30여년의 발전을 통해 연길서시장은 연길시민들의 주요한 쇼핑중심으로 부상했을 뿐만아니라 연변지역 경공업, 농부산물의 중요 집산지로, 백성창업의 주요장소로 떠올랐다.

(새 서시장 재건 전)

연길시상무국 부국장 손소우는 “낡은 서시장은 여러차례 정돈을 거쳤지만 우환을 제거하지 못했다. 지진우환이 존재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참고하고 이 곳이 인원밀집장소로 매일 고정 인구만 4,5천명에 달하고 고객까지 합치면 수만명에 달하는데 만약 화재나 지진 등 재해가 발생하면 백성들의 생명재산안전에 큰 위협을 줄 수 있었다. 더이상 개조불가한 상황에서 결국 철거하고 다시 짓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손소우는 “서시장 재건과정에서 대천성을 서시장 과도경영장소로 정하고 업주들의 우려를 해소해주었다. 서시장이 새로 건설된 후 몇년동안 사용권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임대합동을 체결하고 20년동안 비용 증가가 없고 원유의 표준에 따라 수금한다”고 했다.

(재건 후 서시장)

재건후의 서시장은 총면적이 11.7만평방메터로 지하 3층, 지상 12층 구조로 탈바꿈 했다. 현재 통로가 비교적 원활해지고 소방안전도 더욱 보장이 생겼다. 청사내부, 그리고 실외에 20여개 승강대(扶梯)가 있고 10여개 수직승강기(直梯)를 설치하여 편리를 주었다.

연길관광업의 쾌속발전과 더불어 점점 많은 외지 관광객들이 소문을 듣고 서시장을 찾아 배추김치, 명태 등 조선족 특산을 구입하고 있다.

천진에서 온 손녀사는 “이 곳 음식이 아주 맛있다. 명태, 배추김치, 랭면, 순대를 사서 돌아가 먹을 예정이다. 지금 교통도 편리하니 천진에서 오는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돌아간 후 친척지인들한테도 선물할 계획”이라고 했다.

고객들이 늘어나니 업주들의 장사도 점점 잘되고 있다. 서시장에서 명태를 판매하고 있는 최녀사는 예전에는 본지방 사람들이 많이 사갔지만 지금은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다면서 돌아간 후에도 위챗 등 방식으로 추가한 후 물건을 재구매한다고 했다.

최녀사는 “판매하는 제품 대부분인 특산품이다. 외지사람들이 명태를 맛본 후 맛있다고 미국, 카나다, 영국 등 지에도 보내주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새 서시장이 사용에 투입되면 연길시 상업무역류통산업발전을 크게 촉진하고 사회소비품 소비 총액과 세금수입 증가에 한몫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새 서시장의 경영항목이 증가하면서 취업일터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서시장의 변화는 개혁개방 40년래 우리 주 상업무역류통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개혁개방의 부단한 심화와 함께 향후 40년도 연길서시장은 연길시, 그리고 연변인민과 함께 더욱 아름다운 새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