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羽泉)그룹밴드의 유일한 녀자 키보드 연주자 김음래, 그는 누구인가?
2018-09-06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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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원:중앙인민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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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음래씨는 "김씨 성을 보고 조선족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때면 자랑스럽게 목소리톤까지 높혀 "저 조선족 맞습니다!"라고 얘기를 한다.

조선족이란 단어에 기분좋게 힘주며 말하는 김음래씨, 수줍은 성격으로 여직 매체에 얼굴을 공개한 적 없는 그녀는 업계에서는 실력파로 인정받는 음악인이다.

김음래,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그녀는 우리나라 2인조 가수그룹에선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羽泉”그룹 밴드의 유일한 여성 키보드 연주자이다. 키보드란 건반 악기를 말하는데 그 연주자하면 사람들은 대뜸 긴 생머리에 검은 쟈켓차림의 쿨한 남성의 모습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만큼 여성 키보드 연주자는 드물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음래씨는 우리나라에서도 보기드문 명품 여성키보드 연주자이다.

일할때만큼은 남성 못지 않은 쿨한 모습의 음래씨

웬만한 남성들도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탓에 키보디스트에는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작은 체구의 여성이 어떻게 키보드 연주자가 되려는 생각을 했는가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음악을 배우면서부터 개성이 넘친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사실 전공은 바이올린이였는데 가끔 악기연습중 반주가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피아노를 쳐주기도 했습니다. 키보드는 선배님들에게 여러모로 궁금한 점을 물어가면서 독학을 한겁니다. 키보드 연주는 멜로디를 들으면서 자신의 감정까지 보태어 즉석에서 연주를 해야 하는 어려운 것외에 여자가 다루기엔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거든요. 하여 바이올린을 배워주었더니 웬 건반을 다루냐는 선생님의 핀잔도 있었죠."

우리나라 최년소 키보드 연주자로 불리우는 그녀지만 나이에 비해 너무나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羽泉全国巡演演唱会键盘手

毛阿敏跨年演唱会键盘手

四川卫视《围炉音乐会》键盘手

许嵩全国巡演演唱会键盘手

于湉草莓音乐节键盘手

周治平演唱会 键盘手

天津卫视《国色天香》栏目中 键盘手

어린시절 짬만 나면 외할아버지 집에 놀러 다녔던 음래씨는 바로 이웃에 살고 계시던 계몽선생님인 이민자 선생님(원 연변대학 예술학원 바이올린 교원)을 운좋게 스승으로 모시면서 음악과의 인연을 맺게 되였다. 개성뿐만 아니라 천부적 음악재질도 뛰여났던 그녀에게 이민자선생님은 수도 북경에 가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할것을 권고했다. 하여 2002년, 소학교를 갓 졸업한 음래씨는 부모님의 배동없이 배낭하나 달랑 메고 북경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낯선 곳에서 뭐든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보다는 어린 나이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이 더 컸다. 그후 경쟁이 치렬한 중앙민족대학 부속중학교에 순조롭게 입학을 했고 장차 유명한 음악인이 될거라는 큰 꿈도 가지게 되였다.

그리고 불과 몇년만에 그 꿈을 현실로 이루었다.

우리나라 키보드연주자중 여성은 극히 드뭅니다. 북경에 온후 줄곧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던 저로선 취미로 배워두었던 키보드 연주를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다들 경험이 풍부한 대선배들이여서 어지간히 노력을 해선 여자인 제가 설 자리를 찾기 힘들었죠. 보이지 않는곳에서 울기도 많이 울고 자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피타는 노력을 했습니다. 다행히 인복이 많아 훌륭한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천(羽泉)그룹 콘서트에서 가수 호해천의 소개로 짜짠! 멋지게 등장한 음래씨 ~

키보드 연주외에 음래씨는 또 유명한 가수들을 위해 작곡, 음반편곡도 해주고 있다. 홍콩 4대 천왕으로 불리우는 가수 黎明이 부른 옛 노래 "你让我忘”도 그녀의 편곡으로 새롭게 탄생되였다. 《中国好声音》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 张赫宣 가수가 부른 《我全都记得》란 노래도 알고 보면 음래씨가 작곡을 하고 대만 유명 작사가 姚若龙 (张惠妹 가수의 대부분 노래 작사) 선생이 가사를 부쳐준것이다. 그외에도 《中国好声音》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 许钧가수가 부른 《火车司机》란 노래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의 편곡을 맡아하기도 한 그녀는 기회가 되면 조선족 가수들을 위해서도 편곡을 하고 싶다고 했다.

"조선족 가수들은 기타 민족과는 다른 특유의 음악재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력도 뛰여나구요. 그런데 좋은 기회와 스승 혹은 재능을 선보일 무대를 만나지 못해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가 적죠. 근 20년을 한족분들과 어울려 살아온 저는 조선족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성격도 내성적이라 한어로 휩싸인 주변환경에 외로움을 느낄때가 많았죠. 우연히 음악을 하는 지인을 통해 김귀성이라는 조선족가수를 알게 되였는데 그날 너무 반가워 우리말로 수다를 실컷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작품 《有你的远方》과 《风灯》의 편곡을 할수 있게금 기회를 주어 자주 련락하면서 지내다 보니 지금은 친한 오빠 동생사이가 되였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조선족 가수들을 위해 편곡이나 작곡을 할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것 같습니다."

고운 민족복장차림의 음래씨, 여성미가 물씬 ~

조선족임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음래씨,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말과 글 공부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언어는 한 민족의 상징이잖아요. 소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북경에 왔기에 우리말이 더 서툴때가 많습니다. 언어환경이 중요하다고 우리말로 대화를 할수 있는 가족마저 옆에 없었기에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말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비록 억양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한류붐이 일면서 한국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중국유행음악인들도 많은데 저는 통역도 필요없이 음악관련지식을 손쉽게 배울수 있잖아요. 그럴때면 조선족으로서의 자부심이 큽니다."

늘 혼자여서 외로웠던 그녀의 옆에 이젠 든든한 가족이 있다.

일년전,역시 음악을 전공한 친언니 음파씨가 외국유학을 마치고 북경에 정착하면서 부모님도 모셔오게 되였다. 콜택시가 없던 시절, 공연이 끝난후 무거운 키보드를 메고 택시를 잡지 못해 비속에서 한시간을 혼자 헤매고 다니며 눈물을 훔쳤던 음래씨, 이젠 더는 혼자가 아니다. 바쁜 공연일정으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그녀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요즘은 羽泉그룹 20주년 콘서트로 전국 각지 순회공연을 다니며 바삐 보내고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동생을 살뜰히 챙겨주던 언니 김음파씨

인터뷰를 마치고(좌:강설화 아나운서. 우:김음래씨)

키보드연주를 주로 하는 외에 전공을 살려 대형행사에서 바이올린 연주도 하는 음래씨는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조선족 젊은이들과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키보드 연주외에 바이올린 연주 그외 우리나라 유명가수들의 음반 편곡에 작사, 작곡까지 .. 음악면에서 이룩한 성과는 이미 충분히 남들의 부러움을 자아낼만도 한데 그녀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바로 언젠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무대에서 직접 부르는 가수가 되는것,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이름 "음래"로 된 자작곡 한수도 발표한 상태이다. 음래 (音来)라는 이름처럼 조선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중국유행음악전파의 선두를 달리고있는 그녀에게 멋진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작곡을 부를수 있는 날이 빨리 도래하기를 응원해 본다.

중앙인민방송국 강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