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정신 위대한 행정] 철인 왕진희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8-10-24 10:54:00

1959 10, 새중국 제1대 석유 로동자인 왕진희가 북경에서 공업교통운수업 영웅모범대회에 참가하였다.

휴회 기간 왕진희는, 거리에 달리고 있는 공중버스마다 무거운 가스통을 메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되였다. 석유 부족 난을 겪고있는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직접 목격한 왕진희는 너무나 서러워 거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말았다.

당시 왕진희는, 석유 로동자로서자기는 우리나라 자동차들이 석유를 태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 아팠다며 열심히 일해 반드시 석유갱을 찾아내고야 말것이라는 굳은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고 말한다.

1960 3, 송료석유 대회전이 시작되자 왕진희는 1205굴착팀을 거느리고 황막한 대경에 입주하였다. 그들은 미숫가루로 끼니를 떼우고 허술한 마구간에서 피곤한 몸을 휴식하면서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기중기와 뜨락또르가 없는 상황에서 그와 대원들은 직접 어깨로 메어나르면서 60톤에 달하는 굴착기를 끝내 갱 작업현장에 옮겨놓았다.

그들은 짧디짧은 4일만에 40여메터에 달하는 굴착탑을 일떠세웠고 5일 만에 대경유전의 첫 생산 갱을 파냈다.

사람들은,  20년 적게 사는 한이 있더라도 대유전을 끝까지 파낼것이라는 왕진희의 호언장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왕진희는 말한다. 다른 나라에만 석유가 매장되여 있고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조건이 없으면 조건을 창조해서라도 유전을 기필코 찾아내여 채굴할것이다.

1963년 중국정부는 중국 석유의 기본 자급자족을 세계에 떳떳히 선언하였다. 왕진희를 비롯한 개척자들은 3년간의 분투와 노력을 거쳐 빠른 속도와 높은 수준으로 우리나라 첫 대유전을 파냈다. 1966년 왕진희는 굴착팀을 인솔해 년간 채굴 진척 10만메

대관을 돌파해 당시 세계 채굴 사상 최고봉에 올랐다.

왕진희는, 자신은 어릴쩍부터 소를 방목해 봤기 때문에 소의 성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힘을 많이 내는 대신 향수는 가장 적게 하는 소처럼 자기는 당과 인민을 위해 말없이 일하는 늙은 황소가 될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