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의 산증인”: 동방의 명주를 빛낸 조계정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8-05-23 10:02:00

중앙인민방송국 중국의 소리 채널에서 특별제작한 “개혁개방의 산증인”, 오늘은 동방의 명주를 빛낸 조계정을 소개해드린다.

1940년 북경에서 태여난 조계정은 1963년 중국 과학기술대학 근대 물리계 핵물리 학과를 전공했다.

지난세기 90년대 초, 조계정은 상해 포동 신구 관리위원회 제1임 주임을 맡고 포동 신구 계획과 개발의 전과정에 직접 참가하였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포동의 조계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8년, 38세 조계정은 상해시와 항천부에서 발급한 “선진 과학기술 사업일군”과 “로동모범”칭호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곧 “핵공업 전문가”로부터 “사회 관리자”로 탈바꿈될 줄을 전혀 상상치 못했다.

11기 3차 전원회의에 대해 조계정은 지식인만의 리해를 갖고 있다. 그는, 우선 이번 회의에서 지식인을 로동계급의 한부분이라고 선포하였다면서 이로써 우리 지식인들도 나라의 주인으로 되였고 이는 국가의 선직적인 면을 보여준다고 표하였다.

조계정은, 또한 개혁개방을 통해 외국 동업자들과 교류할수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이는 자신의 과학연구 수준을 판단하고 외국의 경험을 학습하는데 좋은 조건을 창조해주었다고 감수를 터놓았다.

1984년, 등소평 동지가 심수 특별구를 시찰하였다. 바로 그해, 조계정도 원 업무단위에서 상해시 당위원회로 전근되였다.

당시 중앙에서는 “혁명화, 청년화, 지식화, 전문화”요구에 따라 간부를 선발등용하였는데 나젊은 지식 인재였던 조계정은 상해시 당위원회 지도 직무에 임명되여 도시 관리자로 변신하게 되였던것이다.

그후 6년이 지나 국무원은 포동 개발 결정을 내렸고 2년뒤 포동 신구를 공식 설립하였다. 조계정은 포동과 함께 개혁개방 시험을 경험한 산증인이 되였다.

조계정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시험 사업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전반 중국의 수입이 줄어들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며 5개 특별구에 이어 10년뒤에야 포동 개발을 선포한것은 중앙의 신중함을 보여준다고 말하였다.

이로써 상해는 신구라는 명칭을 가진 전국의 첫 신구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