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성상의 발전로정] 내몽골 자치구의 발전성과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7-07-16 10:09:00

1947년 5월 1일 새중국 탄생을 맞이하는 려명속에서 내몽골자치구가 창립되였다. 이는 새중국 민족구역자치제도의 빛나는 시작이기도하다. 70년래 내몽골 여러민족 인민은 당의 민족정책의 지도하에 상부상조하면서 고향건설의 제반사업에서 큰 발전을 가져왔다.

우리나라 동북과 화북, 서북 세개 큰 지역을 가로타고있는 내몽골자치구는 8개 성과 자치구와 린접한, 우리나라 이웃한 성급행정구가 가장 많은 자치구중 하나이다. 또한 내몽골자치구는 중국 민족구역자치제도가 시작된 곳이기도하다.

내몽골자치구는 1947년 5월 1일 울란호트에서 창립되였다. 그때로부터 초원의 여러민족 인민은 전국 여러민족인민들과 함께 상부상조하면서 고향을 지켜 70년의 발전을 이어왔다.

포두시는 내몽골자치구 공업화발전의 기반을 다져놓았다. 1959년 9월 26일 주은래 총리가 포두강철회사 1호 용광로의 개설을 위해 테이프를 끊었다. 그후 전국인민이 포두강철회사를 지원하고 포두강철회사는 전국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좋은 국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8만여명 종업원들이 전국각지로부터 포두 강철회사에 모여왔다. 현재 포두강철회사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희토류 공업기지와 우리나라의 중요한 강철공업기지로 부상하였다. 특히 포두강철회사의 강철제품은 최근년간 급속도로 발전하고있는 중국 초고속철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포두강철회사의 제품으로 부설한 철도궤도에서 초고속렬차는 시속 4백 20킬로메터의 속도로 달릴수있다.

내몽골의 발전은 또 석탄을 떠날수없었다. 하지만 친환경을 강조하고있는 지금 내몽골에서는 점차 석탄에 대한 친환경 리용을 실현해나고있다. 특히 석탄으로 정제한 메탄올, 매탄기름, 석탄가스 등 산업은 전국적으로 앞자리를 차지하고있다.

2016년 내몽골의 생산총액은 1억 8천 6백만원에 달해 1947년 자치구 창립초기에 비해 6백 43배나 늘었다.

내몽골자치구는 초원에 창립된 자치구인만큼 자치구의 발전도 초원을 떠날수없다. 내몽골의 초원면적은 전국초원면적의 5분의 1이상을 점한다. 하지만 과도한 개발로하여 황막화가 조성되여 인민들은 장기간 황사와 싸워야하는 어려운 국면에 직면하게 되였다.

내몽골인민들은 나무를 심고, 비행기로 씨를 뿌려 조림하는 방법으로 점차 사막을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수년간의 노력을 거쳐 내몽골 사람들은 드디어 푸른 록지라는 “사슬”로 누런 사막을 다단히 묶어놓게 되였다. 그리하여 강풍이 불어도 이전처럼 흙모래가 마구 날리지 못했다.

지금 내몽골자치구는 삼북보호림, 천연림 보호공정, 페경림재생, 초원재생 등 생태건설 공사를 적극 가동해 조국의 북방에 튼튼한 생태안전 장벽을 구축해놓았다.

생태안전 장벽의 보호하에 내몽골 목축민들은 푸른 초원에서 시름놓고 방목할수있게 되였다. 실린골맹의 목축민 바트르는 요즘 9천무에 달하는 목장에서 다종 경영을 펼치고있다. 그는 무인기와 감시통제 설비까지 동원해 드넓은 목장을 관리하고있다.

바트르는, 선진적인 설비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지금은 양떼를 따라다니며 방목할 필요가 없이 편안히 집에 앉아서 기계로 방목할수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2016년 10월에 국가에서는 내몽골자치구를 국가 빅 데이터 종합 시험구로 공식 비준하였다. 그리하여 화웨이, 알리, 바이두 등 정보산업 거두들까지 모두 내몽골에 진출하였다.

내몽골자치구 당위 리기항 서기는, 언제나 인민을 마음속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고 여러민족 인민을 단합해 부지런히 분투함으로써 내몽골을 조화롭고 행복한 아름다운 고장으로 건설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