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선봉, 농민교수 리보국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6-05-30 08:20:00

4월10일 새벽, 하북농업대학 교수이며 박사생 지도교수인 리보국이 돌발성 심장병으로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소식이 전해진후 하북성 석가장시, 보정시, 형대시 등 여러 지역의 농촌 또는 농업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각종 추모행사를 조직했다.

신화사는 특별히 시사단평을 발송하여 시대는 천만명의 리보국을 수요한다고 표했다. 공산당원으로서 리보국씨는 당원의 신성한 사명과 책임을 명기하고 35년을 하루와 같이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했다.

태항산 산간지구와 태항산지역 인민군중들에게 깊은 정을 갖고 있는 리보국은 농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늘 로심초사하면서 산간지구 농민들의 빈곤해탈과 초요사회 진입을 사업의 출발점과 노력방향으로 견지하고 이를 인생가치의 가장 큰 추구로 여겼다.

확고한 신념은 그가 평생토록 몸과 마음을 현대화건설에 바칠수 있었던 지지력과 견인력이였다. 대공무사하고 공적인 리익을 위하여 사적인 리익을 희생해온 리보국씨는 단한번도 농민들로부터 수강료를 받아본적이 없고 기업으로부터 대가를 요구한적이 없었다.

리보국씨는 한 공산당원의 인민을 사랑하는 고상한 도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림업전문가로서 리보국씨는 진리를 추구하고 실효성을 중히 여기며 명리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과학연구와 농촌경제발전, 농민치부, 산구생태문명건설을 밀접히 결부시켜 과학기술성과의 전화를 다그치고 과학기술을 쾌속적으로 생산력으로 전환시켜 인민들에게 복지를 마련해주었다.

리보국씨에게서 사람들은 과학기술혁신의 힘을 감지하고 생산 학습 연구가 직접 결합되여 발산하는 위력을 실감하게 되였다.

대학교수로서 리보국씨는 맟춤형 교육을 실시했고 몸소 행동으로 가르치는데 충실하였으며 실천경험을 수업에 융합시켜 학생들에게 실천기능을 전수하였다.

리보국씨는 더 많은 학생들을 산간지구에 뿌리를 내리고 삼농사업을 위해 봉사하는 유용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였고 교실이 아닌 황토에서 학생들에게 실천 강의를 했으며 태항산에서 론문을 작성하게 했다. 그의 몸에서 사람들은 교육, 과학연구의 발전예비를 엿볼수 있었다.

우리나라 빈곤해탈 공략 정세는 여전히 준엄하다. 빈곤해탈 공략사업은 현재 어렵고 힘든 임무를 수행하는 막바지 단계에 진입했다.

리보국씨의 과학기술 가난구제 실천에 힘입어 10만명 농민들이 빈곤에서 해탈하였고 천만무 황산이 록지로 변모했다. 리보국씨의 사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산간지역 빈곤해탈과 치부의 거대한 공간과 발전예비를 실감하게 하였다.

우리는 리보국 동지를 따라배우고 과학기술을 정밀 가난구제의 내적 동력으로 삼아 과학기술을 진정 빈곤지역 군중들의 운명을 개변시키는 강대한 추진력으로 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