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저에게 발전 동력입니다”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8-11-02 10:24:00

"기술을 배운 후 고향에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연변억가락난방공정유한회사 총경리 리국화가 창업하게 된 경위를 돌이키면서 말했다.

18살 되던 1980년 리국화는 도문시제재공장에 근무했다. 일할라치면 활력이 넘치고 탐구하기 좋아했던 그는 제재공장 공급과에 배치됐다. 원자재의 구입으로부터 완제품 가공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리에서 일하며 경험을 축적한 그는 얼마 안되여 기업의 골간으로 성장했다.

시대가 변하고 도문시의 경제 발전이 전환기에 진입하면서 전통적인 로동집약형 기업은 갈수록 그 립지가 좁혀졌다. 지난날 활기를 띠던 제재공장은 감원을 실시했다. 중년에 접어든 리국화는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향했다.

북경에 간 그는 그곳의 기술수준이 보다 성숙되고 능률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북경에서 지낸 10년이 리국화의 일생에서 가장 빨리 성장을 이룩한 시기였다고 한다.

2011년에 리국화는 한국 한신설비설치주식회사에 취직했는데 그것이 나중에 창업을 하는 발단이 되였다. 그는 한국에서 장악한 선진 기술과 관리 리념을 바탕으로 선후하여 연변억가락난방공정유한회사와 도문시흥농짚대종합리용유한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가장 경쟁력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억가락난방공정'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타지역의 발전모식을 모방하는 데 치우치다보니 실제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시장 개척에서도 애로에 봉착했다. 난국을 타개할 만한 뾰족한 수가 없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여러 면으로 대안을 찾았다. 그는 도문에서 경쟁력을 갖춘 곡식대 연소기술로 발전의 폭을 넓혀보리라 작심했다. 그 지탱점은 친환경적이고 과학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을 공략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였다.

리국화가 설립한 도문시흥농곡식대종합개발리용유한회사는 도문시 농촌에서 곡식대를 태워 환경보호에 영향주는 문제를 해결하고 종합리용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설립 취지를 뒀다.

농민들에게 곡식대 처치가 골치거리로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장악한 그는 소각 과정에 산생하는 과립먼지와 연기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농민들은 신에너지 제품에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리국화는 전통적인 소각 방식에 습관이 돼온 점을 리해하고 주동적으로 제품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사람들의 질의에 상세히 해답하고 한세대 한세대 찾아다니며 성능을 설명하고 새 기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농민들은 그의 제품을 받아들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층 당위와 정부의 지지하에 환경보호 에너지절약 제품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고향은 저에게 발전 동력입니다. 계속 연구사업에 몰두하여 더 좋은 제품을 만들겠습니다.”리국화는 고향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기여를 하련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