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정 항일련군 문화로 애국주의교양 강화
래원:연변일보      2018-09-19 10:21:00

룡정시 로투구진 천보산사회구역에서 북쪽으로 2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천보산전투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이 기념비에는 항일련군 선렬들이 이곳에서 왜구들을 물리쳤던 력사가 기록돼있다.

해설원의 소개를 들으면서 선렬들이 생활하고 싸웠던 땅을 밟아보니 한편의 생생한 항일투쟁 력사가 안겨왔다. 1916년, 일본침략자들은 천보산의 동광, 은광의 개발권과 경영권을 략탈하고 경영부를 설치하였으며 동을 위주로, 은을 보조적으로 생산하였는데 년간 30만톤의 광석을 채취했다. 1918년 더 많은 자원을 략탈하기 위하여 일본침략자들은 ‘천(보산)도(문)’철도를 조선경내의 회령과 련결하여 ‘길(림)회(령)’철도의 일부분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몄다.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인민들은 즉각 반대해 나섰으며 철도공사는 압력에 의해 중지됐다.

‘9.18’사변 후 식민지통치를 강화하고 천보산자원을 마음대로 략탈하기 위하여 일본침략자들은 천보산에 일본수비대, 괴뢰 만주군, 괴뢰 경찰대, 괴뢰 무장자위단, 광산사무소와 일본인민회 및 괴뢰 금융부 등 기구를 주둔시켰으며 로동자들을 강박하여 추위와 기아 속에서 작업하게 했다. 로동자들은 소극적으로 공사를 지연시키고 기계설비를 파괴하는 등 방식으로 략탈에 맞서 투쟁을 펼쳤다.

1939년 6월 23일, 천보산 광부들이 파업했는데 파업을 령도한 지도자가 괴뢰 만주당국에 체포됐다. 지하당조직에서는 이 소식을 접한 후 항일련군과 련계하고 6월 30일 동북항일련군 제2군 4사, 5사와 제2방면군 제9퇀의 도합 300여명에 달하는 병력으로 천보산광무국과 광산사무소를 습격하였으며 광부들도 적극 부대와 함께 전투에 참여해 대량의 식량, 천과 현금, 총과 탄약을 로획했다. 전투가 끝난 후 50여명의 광부들이 항일련군 부대에 가입했다. 그번 습격은 천보산 광산의 생산을 1년 동안 중단시키고 적에게 80만엔의 손실을 주었다. 전투의 승리는 적 점령 지대에 있는 인민들의 혁명투지를 크게 고무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적과 투쟁하는 활동에 뛰여들도록 했다.

해설을 맡은 룡정시당위 당사연구실 사업일군 왕사기는 “처음 해설할 때에는 원고를 그대로 읽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감명깊게 줄거리를 요약하고 조리있게 홍색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매번 새로운 해설을 할 때마다 새로운 인식과 수확이 있다.”면서 “해설원 사업을 사랑하고 있으며 여생을 바쳐 항일련군의 정신을 선전하여 이 력사가 더 많은 당원과 군중들의 정신적 식량으로 되게 하련다.”고 밝혔다.

“항일련군 정신은 우리 당의 간고분투정신의 집중적인 구현이며 우리 세대 청년들이 신앙을 견정히 하고 용감하게 전진하도록 격려하는 정신적 힘의 원천이다. 당대의 대학생으로서 이번 활동에 참가한 것이 영광스럽고 향후 학습과 생활 속에서 선렬들의 항일련군 력사와 정신을 주변 학생들에게 전달하여 오늘의 행복이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겠다.” 장춘경제학원 ‘청년맑스주의프로젝트’학원 류빈이 감격에 젖어 말했다.

최근 몇년간 룡정시는 홍색자원 우세를 충분히 발휘하여 애국주의교양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이 시는 홍색자원을 간부당성교양강화와 련결시키고 성, 주 당위 선전부의 ‘다섯가지 관념’양성 요구를 깊이있게 시달하며 애국주의양성기지, 혁명력사류 기념시설, 유적양성작용을 충분히 발휘하여 천보산 등 핵심 학습지점을 확정했다. 항일련군의 길 답사, 력사유적지 참관, 해설원 강의, 입당선서문 되새기기 등 방식은 광범한 당원간부, 군중과 청소년들이 실제풍경, 실제문물, 실제사실, 실제사건 가운데서 력사와 접촉하고 혁명선렬들의 정신과 당지홍색문화의 정수를 느끼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