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 이리 좋은데 제힘으로 빈곤에서 벗어나야죠”
래원:연변일보      2018-07-17 10:43:00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은 있지만 방법도 없고 능력도 없고 성과도 없었습니다.” 화룡시 룡성진 토산촌 촌민 한사화는 지난날의 생활을 돌이키며 감개무량해했다.

올해 43세인 한사화는 초중을 졸업하고 산동성으로 일하러 갔다. 해본 일은 많지만 학력이 낮은 원인으로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십여년을 일했지만 저축도 얼마되지 않았다. 2009년에 한사화는 귀향창업하려는 생각을 안고 토산촌에 돌아왔다.

사람은 돌아왔지만 밑천도 없고 기술도 없이 무엇을 할 것인가? 최종적으로 한사화는 100여마리의 병아리를 구매하고 닭사양을 시작했다. 닭사양을 통해 돈을 조금 벌었지만 이어 결혼하고 아기가 태여나면서 가정지출은 혼자 있을 때보다 크게 늘었고 몇백마리의 사양규모로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산업규모를 확대하려면 자금이 문제였다. 하여 그는 평범하게 작은 닭사양장을 경영하면서 치부의 꿈을 소모하는 나날을 보냈다.

2015년, 한사화가 빈곤호로 평가되자 그는 큰 압력을 느꼈다. “아직 젊고 병이 들거나 재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어찌 나라에서 주는 빈곤층부축 자금으로 생활한다는 말입니까. 알려지면 부끄러운 일이고 그 돈을 떳떳하게 쓸 수도 없습니다.” 누가 그의 집을 방문하든지 그는 시종 자기의 능력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겠다고 말했다.

‘젊은이가 부지런하다. 비록 가난해도 포부는 원대하다.’ 이는 토산촌 촌민들이 한사화에 대한 보편적인 인상이다. 2016년 토산촌에서 금융 빈곤층부축 대출을 어떻게 사용할지 연구하던중에 사람들은 한사화를 떠올렸고 그가 이 돈을 잘 사용할 거라는 믿음으로 한사화에게 60만원의 대출을 돌려 닭사양대상을 발전시키도록 했다.

2016년 11월, 계약을 체결하고 대출금을 받은 후 한사화가 한 첫번째 일은 토산촌당지부 서기 조립국을 찾아 빈곤호에서 퇴출하겠다고 요구한 것이다. “정책도 주어지고 자금도 해결됐습니다. 치부하지 못하면 이러한 기회에 미안합니다. 아직 수익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빈곤호라는 이름을 달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올해 빈곤호에게 주는 배당금도 저는 갖지 않겠습니다.” 한사화는 조립국에게 ‘군령장’을 내놓았다.

그 후 한사화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화룡시복원가금사양전문합작사를 설립했으며 20여만원을 투입하여 공장건물을 짓고 5만원을 투입하여 지게차를 구입했으며 남은 돈은 병아리와 사료를 구매하는 류동자금으로 두었다. 한사화의 계획에 따르면 그가 보름에 한번씩 2000마리의 병아리를 구입하고 해마다 련속 다섯달 구입하며 넉달간 사양하면 출하할 수 있다.

처음 이렇게 많은 닭을 사양하다보니 한사화의 압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병아리를 돌보고 한집한집 뛰여다니며 판매했는데 지난해에 사양한 2만마리를 전부 팔았다. 한사화의 사업이 잘되는 것을 보고 적지 않은 촌민들은 그에게 병아리 구매를 도와주고 사양기술을 지도해달라고 부탁했다. 한사화는 빈곤호에서 마을의 치부인솔자로 되였다.

“지난해에 근 80여만원을 벌었습니다. 사양원가를 빼고 20만원의 대출을 갚고 촌민들에게 3만 6000원의 배당금을 지불하고 나니 남은 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2년만 대출을 갚으면 모든 소득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향후의 생활을 그리는 한사화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