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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의 둥지 / 리순화

2019-12-21 09:58:00     责编:김룡     来源:

우리의  둥지  

리 순 화

엄마, 지갑.

아들은 문고리를 놓지 않고 소리를 친다.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아들의 몸에서는 전혀 조급함이나 초조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이다. 이젠 아들도 나도 습관이 되어있는 일상으로 되고 있다.

아들의 방으로 쫓기듯 들어가 지갑을 찾는다. 지갑을 찾아 들고 나오다가 랭장고에서 우유를 꺼낸다. 출근이 늦어 아침도 먹지 못하고 빵만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들은 인사도 없이 우유와 지갑을 받아들고 밖으로 뛰여 나간다.

아들은 언제나 바쁘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외국IT회사에 금방 취직한 아들은 풋내기회사원이다. 훈훈한 외모에 말썽 별로 일으키지 않고 자라준 아들이여서 바라만 봐도 한때는 흐뭇했었다.

자식?

무릎아래 자식이고 장가들면 사촌이 된다고 했지만 아들은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어도 이젠 9촌이 아니라 9촌의 사돈처럼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려고 한다.

아들을 탓할 일도 아니다.

아들에게는 아들만의 세상이 있다. 아들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고있지만나는 아들에게서 소외감을 털어버리지 못하고있다.

얼굴을 보기도 힘든 아들,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는것은 아침 출근시간에 문고리를 잡고 내게 심부름을 시킬 때이다

여보 넥타이!

반듯하게 다려서 색상에 따라 걸어놓은 옷장에서 은회색 와이샤쯔를 꺼내 입으며 남편이 부른다.

아들이 출근했으니 이젠 몸은 남편의 차례이다.와이샤쯔에 맞춰 넥타이 골라주는 또한 몫이다.

남편이 말하기전에 준비하고 기다린적도 있었다. 그게 이젠 몇년전의 일인지 기억마저 나지 않지만 분명히 한때는 남편이 말하기전에 출근준비를 위해서 모든것을 준비하고 기다려줬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이 불러야 넥타이도 매주었고 그리고 언젠가 부터는 남편이 불러도 걸어가는 발걸음이 더뎌진다.

지금은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는것이 유행이라서 그런지 심플하고 멋져보이던데 남편은 아직도 넥타이를 고집한다. 회사의 책임자라면 외모부터 흐트러짐이 없어야 된다는것이 남편 나름의 인생철학이다.

은회색 와이샤쯔에 걸맞게 일본에 유람갔다 친구가 선물로 짙은 회색에 오색점이 다문다문 박힌 넥타이를 골라주었다. 고급스럽고 세련돼 보였다. 구두까지 반짝반짝 윤기나게 닦아서 출입문 방향으로 돌려놓고 남편이 신기를 기다려서 배웅한다.

젊어서 많이 말랐던 남편은 중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몸에 살이 적당하게 붙어 듬직하고 품위가 있어보였다.

지금도 젊은 사람 못지 않게 건강과 외모에 신경 쓰고있다. 그것이 백여명 직원을 거느리는 기업인의 자세라면서.

남편은 언제나 바쁘다.

남편에게는 남편을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과 그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보화시대에선 매일마다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나오고 그만큼 먼저 나온 제품은 도태돼 나간다.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끝임없이새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새로운것, 신제품만이 회사의 생명이다. 새로운것들이 얼마 존재하지 못하고 다시 구식으로 기억에서도 사라지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남편?

남편은 회사에서 신제품을 만들고 있지만 집에서는 아무것도 새로워진것이 없다.

나의 일상이 어제와 오늘이 같고 오늘이 래일과 같듯이 남편의 모습도 어제가 오늘이요 오늘이 래일로 되고있다.

어떤 새로운것들을 감지하지 못한채 그대로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가지만 그런 것들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다가 내가 나이들었음을 알게 되였고 귀밑에 남편의 머리를 보면서 남편도 세월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낄수 있었다.

이젠 남편도 남의 편이 된지 오랜것 같다.

아침 한때만 집에서 식사를 하고 점심은 회사에서 저녁은 회사일의 연장이라고 하는 여러가지업무 바쁘다. 그리고 무슨 동창모임에 운동동아리모임모임이 어찌나 많은지 집에서 저녁을 먹는 회수가 가물에 콩나듯이 드물다. 어쩌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식사할때면 나는 허둥대면서 반찬을 만드느라 부산을 피운다.

남편을 탓할 일도 아니다.

남편에겐 남편만의 세상이 있다. 자신만의 세상에서 아주 만족하며 살고있지만 나는 그의 세상에 끼여들수가 없다.

낯설고 두려워서가 아니다.

서로가 완연히 다른 세상, 그런 세상은 어울릴수 있는 뉴대가 존재하지않고 그냥 멀리서 쳐다밖에 볼수밖에 없는 세상인것이다.

썰렁한 식탁엔 아들이 꺼내놓은 빵쪼각과 남편이 먹다남긴 한술, 시라지 된장국, 생선구이, 시금치무침과 련근졸임, 배추김치, 깍두기, 그리고 매일 건강을 챙기느라고 올려놓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 견과류들이 파장한 뒤의 시골 장터처럼 빛을 잃고 널려있다.

텔레비죤 건강프로에서 지중해식 식단이 건강에 좋다고해서 심혈을 기울여 밥상을 차리지만 자정에야 잠이 드는 아들에겐 오분이라는 아침잠이 먹는것보다 향수이고 유혹이다.

밥도 먹지 못하고 뛰어 나가는 아들을 위하여 빵과 우유처럼 편하게 먹을수 있는 음식들이 언제나 랭장고에 들어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침에는 밥과 된장국과 김치와 같은 음식을 곁들여져야 한다.

나는?

모두가 떠난 식탁에 마주앉아 식은 음식들을 먹는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아들과 남편의 식사를 준비하지만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밥을 먹을 기회는 명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세식구밖에 안되지만 오붓이 모여앉아 아침식사를 한지가 언제였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식탁우의 음식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

남편과 아들이 떠난 식탁에 홀로 앉아 음식을 먹었지만 도대체 무엇을 먹었는지, 맛이 어떤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비록 음식맛은 몰랐지만 배가 부르니 숟가락을 놓고 식탁을 거둔다. 쉽게 상할 음식들은 랭장고에 정리하여 넣고 된장국은 그대로 뚜껑을 덮어 식탁우에 둔다.

비여버린 그릇과 함께 숟가락과 젓가락들을 씻는다. 식탁에 아침마다 수저 세개가 놓여있지만 아들의 몫은 항상 깨끗하다. 하지만 습관처럼 세개를 모두 씻는다.

주방을 거두고나서 이젠 아들의 방으로 들어간다.

아들의 방은 간밤에 쓰나미가 핥고 지나간 흔적이 력력하다.

책상우엔 보다만 책들과 이어폰, 과자봉지와 음료수병이 질서를 잃고있다.

책상만이 아니다. 침대도 책상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베개며 개이지 않은 이불과 씻을 옷가지들이 지저분하게 널부러져있다. 게다가 양말 한짝은 침대밑에서 뒹굴고 다른 한짝은 창문턱에 올라가 있고

고중 입시때나 대학입시때 아들은 내가 옆에서 지켜주는것을 좋아했었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든든하다면서 남자애답지 않게 나한테 살가웠다. 시간을 맞춰 간식도 챙겨주고 책도 정리해주고 함께 음악도 들으면서 힘든 3 3시절을 무난히도 견뎌냈다.

사춘기때문에 자식이 말썽부리고 부모와 섞는것조차 꺼려한다며 속상해하는 친구들을 볼때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은근히 속으로 아들한테 감사하기까지 했다그러던 아들이 무질서하게 쌓아놓은 자기의 책들을 정리해주는것을 거부하고 있고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는것을 감사해하기는커녕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자식!

매일 방을 청소해주고 빨래해주고 건강을 위해 영양가를 따져가며 건강식을 만들어 먹이면서 온갖 정성을 몰붓건만 회사생활이나 연애에 대해 좀만 물을라치면 그냥 , 아니하고 단마디 대답만 건성으로 한다.

그래, 절로 컸다 이거지!

흩어진 옷가지들을 와락와락 걷어가지고 아들의 방을 나오며 저도 몰래 튕겨나온 말이다.

빨래감을 세탁기에 넣고 이번엔 서재에 들어섰다.

아들의 방과 다르게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다.

두개의 벽면을 채운 책장의 책들을 훑어보니 전부 남편 책들뿐이다. 집에 이사를 때까지만 해도 나의 책과 남편의 책이 반반씩 책장을 차지했었는데 남편이 책을 사올 때마다 나의 책은 자연히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한때는 나에게도 보물같은 존재였던 전문서적과 명작들이 몇년씩 만져보지도 않았다는 리유로 창고로 향해지고 자리에 남편의 취향에 따른 책들이 올려졌다.

몇년전만 해도 책장에서 좋아하는 책들을 꺼내 읽었었는데 지금은 그냥 웃쪽 한줄에만 눈에 익은듯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오는 책들이 있을뿐이다.그러니 자연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쩐지 서재가 서먹해지고 청소를 때만 생각나서 들어오는 공간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서재를 정리하고 청소까지 하고 나니 9시다.

거실의 열린 창문을 넘어 기어들어 태양이 집안에 하얀 띠를 둘러주고 있다.

거실의 가구들을 하나씩 닦는다. 최고급 음향설비며 TV, 수입제 소파, 와인궤는 자기의 위풍을 과시라도 하듯이 해살을 담뿍 받고 있다. 어디를 봐도 흠잡을데없이 정돈돼있고 윤기가 찰찰 흐르지만 습관적으로 하나씩 열심히 닦는다.

가구들을 닦고 마루까지 닦았지만 아직 10시도 되지 않았다.

집안 어디에도 먼지가 보이지 않았다.

매일 같은 일들을 반복하고 있으니 먼지가 숨을 공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아침을 준비하고 집안을 청소하는 일들마저 없다면 마치 나란 존재는 어느 박물관 구석에 박혀있는 의미없는 박제품과 같을것이다.

거실청소까지 마쳤으니 하루의 일상이 끝난 셈이다. 아니, 어쩌면 개미 채바퀴 돌듯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습관이 끝났다고 하는것이 적절할것이다.

허리가 시큰거린다.

쫓기듯이 드바쁘게 청소를 한것도 아니지만 50살을 넘기니 거짓말같이 온몸의 세포가 반항이라도 하듯이 쑤시고 저리고 아프다. 달거리도 지난해부터 질서를 잃더니 요즘은 리유없이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도 난다. 가끔씩 하얗게 밤을 새는 날이 많아져서 병원을 찾았더니 갱년기 증상이란다. 의사는 약물도 약물이겠지만 우선 육체적, 심리적으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데 가족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의 협조란 묘연한것이였다.

남편은 바쁜 사람이다.

아들은 컸다.

남자는 모두가 바쁘다는것을 아들을 통해서 알수 있었고 그래서 그런것은 바란적도 없었다.

어쩌다 세식구가 함께 뉴스나 경제프로를 시청하면서 서로 담론할때도 있었는데 내가 한마디 참견할라 치면 아들의 얼굴에는엄마도 알아요?하는 의문들이 감돌았다.

한번은 뉴스에 인도수도가 나오니 혼자소리로마닐라라고 중얼거렸더니 아들은엄마 ,문과생 맞아요?하고 놀려주었다.

그래도 한때는 대학에서 공부도 잘해서 장학금을 타는 문학소녀였다고 남편이 두둔했지만 어쩐지 조롱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허공을 쳐다보며 입귀에 스치는 서늘함이 그걸 충분히 설명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쏘파에 몸을 묻는다.

집에서 해야 나의 하루일과는 끝났다.이젠 쏘파에 누워 편히 쉬는것뿐이다.

아들이나 남편이 집에 있을 때면 쏘파가 TV 보기 위한 공간이 되지만 모두가 침실로 들어간 뒤에는 나의 침실로 변해버린다.

우리부부의 공용침실도 남편의 전용침실로 된지가 오래다. 잠을 설치거나 시도때도없이 확확 열이 나고 땀이 나는 통에 새벽에도 뒤척거려서 남편의수면에 영향을 줄가봐 드문드문 거실쏘파에서 잤었는데 이젠 아예 베개를 옮겨다놓고 말았다.처음엔 남편도 괜찮으니 침실에서 자라고 재삼 만류했었지만 인젠 서로를 묵인하고있다.

가끔씩 밤이 두려운적도 있다.

대낮이면 그렇게도 멋지고 위풍당당하던 거실의 가구들과 가전제품들은 커튼을 뚫고 어슴프레 비치는 어둠속에서는 마치 웅크리고 앉아있는 크고 작은 괴물마냥 이루는 나에게 점점 위압적으로 다가오기도한다.

가슴이 갑갑해나서 카텐을 젖힐라치면 거실 복판까지 흘러드는 교교한 달빛은 옹송그리고 누워있는 나를 더욱 초라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어놓아 몇번이고 남편의 품으로 다시 기여들가도 망설였다. 허지만 결국은 홀로 하얗게 밤을 새웠다.

130평방메터도 넘는 . 전쟁도, 포성도, 아우성 소리도 없이 평화스럽다. 하지만 어느 한곳도 나를 포근하게 보듬고 안아주는 따뜻함과 화기로움은 없다.

아들은 이만하면 성공의 발걸음을 떼였다.

남편도 어려운 불경기에 회사를 유지하고 있는것만으로도 성공한셈이다그들은 자신이 개척한 길을 따라 오늘보다 나은탄탄대로를 향해 활보하고 있다.

아들도 성공하고 남편도 성공했으면 당연히 나도 성공한 녀인이라고 해야 하련만 마음의 빈구석만 느껴지면서 도무지 허전함을 달랠수 없다.

이처럼 호화롭고 부유한 집에 아무리 훑어보아도 내가 자리는 없다.

이집안의 모든것, 남편과 아들을 포함한 자질구레한 소품까지 전부 나의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것도 딱히 완벽하게 나에게 속해있는것은 없는것 같다.

벽체에 고정해놓은 커다란 거울에는 생기를 잃은 얼굴에 핏기하나 없이 턱에 군살이 덕지덕지 붙어 두겹세겹을 이루고 있는 녀자가 초점없는 퀭한 눈으로 쳐다보고있을뿐이다.

마음은 땅속을 헤맨다.

한달에 한번이 아니라 20일에 한번씩 빠지지 않고 하는 염색이지만 검은 머리카락 밑에서 고개를 들어버린 새치가 느껴진다.

한참 머리카락을 노려보고 있으려니 서서히 확대되여 머리 전부를 덮으면서 마침내 몸까지도 삼켜버리는것 같은 느낌에 전신이 오싹해진다.

이대로 있으면 그냥 숨이 막혀 돌아버릴것 같다.

도망치듯이 밖으로 뛰쳐나온다.

해볕이 뜨겁다.

넓은 공간에 나섰지만 따로 숨이 나오는것은 아니다.

눈앞이 트이는 공간에 서있지만 여전히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어디로 가야 곳이 정해지지 않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으니 여전히 마음이 막막한것이다.

거리에서 얼쩡거리기 싫어 시내뻐스 정류장에 멋적게서 있는데 마침 낯익은 번호가 앞에 멈춰선다.

37 뻐스다.

집청소를 하고 아침상을 차려놓는것이 매일 반복되는 습관이라고 한다면 며칠에 한번씩은 뻐스를 타고 백화점마트에서 채소들을 샀다. 그건 며칠에 한번씩 꼭꼭 하는 굳어진 습관일가?

뻐스문이 열리자 몸은 여전히 습관대로 움직인다. 뻐스에 올라 자리에 앉고보니 뒷자리다. 항상 앉는 뻐스의 뒷자리, 마치 자신이 어느 책속의 주인공처럼 움직이는 느낌이다.

출근시간이 훨씬 지나서인지 뻐스안은 썰렁하다. 그렇다고 고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운전수뒤에 앉은 녀인이 핸드폰을 들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뒤쪽에 뒤에 앉은 나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녀인은 금방 한국에서 돌아온듯 친구들과 마시자는 약속을 잡고있었다. 열기에 들뜬 녀인의 목소리가 귀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지지만 술을 마시자는 약속을 빼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다.

대화하는 녀인의 목소리에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갑자기 공허해진 마음이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있을뿐이다.

창밖으로 가끔씩 손에 쪽걸상을 로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공원이나 강변이 아니면 어딘가 그늘진 곳을 찾아서 자신들만의 여유를 즐길것이다.

창밖에 의미없는 시선을 주고있다가 다음역이 연변대학이라는 안내방송에 나는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변대학?!

내게는 모교다. 하지만 연길에서 살면서도 학교를 졸업한후 한번도 다녀간 기억이 없다.

뻐스가 멈추기 바쁘게 나는 밖으로 뛰어나왔다.

연변대학에서 내리는것은 나의 습관이 아니다. 차라리 이름마저도 기억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것이 습관이라고 해야 맞을것이다.

습관에 없는 행동, 행동이 연변대학 앞에서 미아를 만들어버렸다.

백화점에 다닐 때마다 뻐스에서 본의 아니게 수없이 보아왔던 대학정문이다. 한때는 나도 문을 통해서 학생이란 이름으로 활기찬 날들을 보내기도 했었다.

며칠에 한번씩 지나다니면서도 그냥 스치는 풍경으로 흘려버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자의 안해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부터 대학정문은 내게 낯선 풍경으로 변해버렸던것이다.

그런 낯설게 익숙해버린 곳을 마주하니 마음은 그대로 돌이 되어 버린다.

얼마나 서있었을까?

저도 모르게 정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금 올라가니 작은 숲이 나졌다. 30년전에도 봄이면 연분홍 살구꽃, 새하얀 오얏꽃 .진분홍 복사꽃을 화사하게 피우던 곳이다. 숲은 그때도 배움에 목마르던 대학생들에겐 새벽의 청신한 공기속에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로 상쾌함을 선사하던 곳이다.

대학의 정원은 청춘남녀들의 보금자리고 청춘의 상징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해있다. 지금은 새하얗게 칠한 기둥을 촘촘히 박아 멋을 정자와 아기자기 아름드리나무 단면모양으로 만든 둥근 책상과 의자가 숲속에서 짙푸른 나무잎과 쭉쭉 갈라터진 거무죽죽한 나무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늑하고 그윽한 교정의 정서를 다분히 느끼게 하였다.

정원의 모습은 변했지만 젊음의 향기는 여전히 곳곳에서 풍겨오고있었다.

나는 따스한 해빛에 나무잎사귀의 그림자가 아롱다롱 비낀 둥근 책상을 찾아 앉으려고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줌마 . 사진 찍어주시겠어요?

어느새 왔는지 아직 고중학생티가 다분히 묻어있는 녀학생 셋이서 핸드폰을 나에게 내밀며 생글거린다. 아마 올해 입학한 신입생인 모양이다.

아줌마?

낯설지 않은 부름이다.

이젠 누구에게라도 례외없이 아줌마로 통한다. 하지만 정작 대학교 정원에서 아줌마라는 부름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마치 한순간에 내가 청춘에서 파파할머니로 변해버린듯한 착각이 든다.

나는 서운함을 뒤로 하고 새하얀 정자기둥에 몸을 숨기고 일제히 얼굴만 내민 학생들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았다. 하나같이 귀엽고 다정한 표정을 꾸미고 있지만 내게는 모든것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지고있다.

학생들이 떠나고 다시 고요해진 숲에 멍하니 서있는데 문득 도서관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대학에 다닐때에는 교실 다음으로 많이 곳이 도서관이였다. 도서관, 그곳은 어쩌면 대학시절의 전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도서관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그리고 곁에는 항상 은희가 있었다.

은희는 나와 마을에서 대학에 입학한 소꿉시절의 친구다. 흑룡강성 동녕이란 작은 현성에서 연길이란 낯선 곳에 왔을 은희는 단순한 친구를 넘어 내게는 마음의 지탱점과 같은 존재였다.그래서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가깝게 지냈다.

학급뿐만아니라 학교에서도 우리가 절친한 사이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둘이 그림자처럼  붙어다녔으니까.

문학과 전혀 관계없는 경제학부에 다니고있었지만 은희와 나는 모두 작가가 되는것이 꿈이었다. 항상 도서관에 박혀있었고 학교문학사에서 꾸리는 잡지의 편집도 경제학부 학생으로는 나와 은희가 유일하였다.

그리고.

도서관에는 우정만이 아닌 나의 사랑도 쉬고있었다.

건이.

도서관에는 건이가 있었다.

그날도 나는 은희와 함께 도서관에서 표지에 낼시를 찾고있었다.

은희는 윤동주의 시를 선택했다.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날 분명히 은희는 윤동주의 시집을 잡고 놓지 않고있었다.

서시던가?

아마서시 아닐것이다.

은희가 선택한 시는 윤동주의 "자화상" 아니면 " 다른 고향"이였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은희가 선택한 시를 찬성하지 않았다.

손에는 윤동주가 아닌 미국의 알프레드 수자의 시집이 들려있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는 제목부터 나를 잡고 놓지 않았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 아니라 유령처럼시가 나를 잡고 있었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날 읽은 시는 30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기억을 끈끈이 잡고 놓지 않고 있다.

나한테 다가와 손에 시집을 빼앗아 들고 읽던 은희도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구구절절 심금을 울리지만 마지막 구절이 제일 마음에 들어! 매일매일 맞이하는 오늘을 생애 마지막날인것처럼 살려면 자기와 가족에게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것 같애 !

시만큼 내게는 작가의 생애도 인상적이었다.

6살에 소아마비로 장애자가 되고 18살에 교통사고로 척추뼈가 부러져 하반신이 마비되고 세번의 임신과 유산.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 8차례의 척주수술, 다리절단, 고통으로 인한 모르핀중독. 결국 47세에 자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강철로 셋을 착용하고 침대에 누워 허공에 칸바스를 걸고서도 수많은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과 사랑했던 녀류작가의 삶과 열정이 소녀감성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된 녀대학생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기엔 너무도 충분했다.

너희들 여기에 있었구나!

후리후리한 체격에 말쑥한 얼굴을 남학생이 화색하며 보폭으로 걸어 왔다.

건이였다.

건이는 나보다 학년 선배였다. 학교의 행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첫눈에 반했노라면서 나의 그림자를 찾아 다녔다.

기계전공인 건이는 문학서적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남자가 너무 감성에 빠지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이였다.하지만 건이는 나를 위해서 가끔씩 시집도 사주고 나를 보고 읽어달라고 하면서 감상하기도 했다.

그런 건이를 나도 좋아했고.

도서관에서 만나면 건이는 기계와 관련된 책들을 읽었고 나는 문학서적에 빠져있었지만 둘이 함께 있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사람들 몰래 책상밑으로 건이에게 손도 잡혀보았다.감히 뿌리칠수 없었다. 손을 잡은 건이를 뿌리치면 엄청난 소동이 일어날것 같았고 그러면 도서관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 소문이 파다히 퍼질수 있어 부끄러워도 참아야 했다.

건이가 오면 은희는 다른 책상을 찾아 앉아서 진지하게 독서만 하였다.

언제였던가?

그날은 늦은 시간까지 책에 빠져있었다. 헌데 도서관을 나설 은희가 아닌 건이가 곁에 있었다.둘이 고요한 학교 정원에 들어서자 건이가 강제로 입술을 빼앗았다. 그렇게 마음의 전부가 건이의 소유로 되였다

도서관을 마주섰지만 이상 걸음을 옮길수 없다.

도서관에는 대학시절의 나의 전부가 있다.

나의 젊음이 있었다.

나의 꿈이 있었다.

나의 친구 은희가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건이가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이 머물던 곳이지만 이젠 그냥 그때그 시절의 추억만 남아 있을뿐이다.

-아줌마.

정원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말이 다시 귀가에 울린다.

추억은 있지만 이젠 아줌마가 되어버렸고 은희도 건이도 떠나버린 자리, 자리를 자신있게 활보할수 없다.

건이?

지금은 남편이 되였으니 건이와 헤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젠 이상 그때의 건이가 아니다.

은희?

대학을 졸업하고 연길에 남아서 여전히 우정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랑만을 간직하고있는것은 아니다.

남편이 보고 싶어진다.

도서관 앞을 떠나는 발걸음이 급하다.

대학정문을 나와 신호등을 무시하고 그대로 길을 건너버린다.

지나가던 택시가 급정거를 하더니 운전수가 머리를 내밀고 뭐라고 소리지른다. 하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침 정류장으로 들어서는 4 뻐스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한참 달려 내린 곳이 남편의 회사이다. 남편이 대학을 졸업한후 시기계공장에 배치받았을 때만 해도 공장은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몇년 지나지않아 시장경제의 물결을 타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국영기업이였던 기계공장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파산의 국면에 처하게 되였다. 기계학을 전공하고 공장을 집보다 소중히 여기던 남편이 공장을 도급 맡았다.

그동안 남편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과 타격을 거쳐 새로운 기술을 혁신하여 오늘날 현대적이고 능동적이고 성능이 좋은 새로운 농기계를 만들어냄은로써 일약 시중점기업으로 부상했다. 새로 지은 회사건물도 성공을 자축이라도 하듯이 듬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회사건물앞에서 다시 주춤주춤해진다.

마침 대문으로 남편이 직원들과 함께 걸어 나온다 . 회사유니폼을 입은 남편은 아침에 출근할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모습과 너무나 다르다.

남편이 보이지만 정작 선뜻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마치 내가 지금 다가가면 남편의 질서를 깨버릴것 같은 주저심이 발을 묶어버린다.

몸을 돌리자 남편은 나를 스쳐서 지나간다. 남편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도망이라도 치듯이 달려오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어디로 모실가요?

가타부타 말이 없자 택시운전수가 물었다.

어디로 갈가? 오늘따라 은희도 보고싶어진다.

청년호 맞은 켠에 있는 은희회계사사무소요.

대학을 졸업한후 은희도 건이의 친구와 결혼했다. 은희의 남편은 주정부의 공무원인데 제법 나가고있다.

하지만 은희의 인생은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남편이 회사일때문에 바쁘다는 리유로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주부로 되였지만 은희는 남편이 성공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힘들다는 공인회계사자격증을 따서 자신의 사무소를 차렸다.

은희회계사사무소.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회계사사무소, 그것이 은희의 공간으로 되었고 남편의 그림자가 비끼지 않는 곳에서 그만의 빛을 만들어가있다.

공간?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할 자신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은희가 그렇게 말렸지만 나는 마이동풍으로 여겼었다. 늦었지만 이제야 은희가 말하는 자기만의 공간의 의미를 알것같다.

은희가 반색한다.

몸에 맞는 짙은 하늘색원피스를 받쳐입고 왼쪽 가슴우에 새하얀 풀잎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고있는 은희의 몸에선 어떤 범접못할 아우라가 비껴있다. 얼핏보면 검정색인것 같지만 해빛에 보라색을 은은히 뿜고있는 머리카락은 한오리도 흘러내릴세라 가쯘하게 빗어서 둥글게 틀어올렸는데 세련미를 더해준다 .다소 통통했던 예전의 얼굴은 다리미로 다려놓은듯구김살 하나없이 탱탱하고 윤기가 반짝인다. 거기에 옅은 화장까지 해서 지나치게 사무적이지도 그렇다고 요염하지도 않다.

은희가 어깨와 턱사이에 수화기를 끼고 통화하면서 커피를 타는 사이 나는 사무실안을 휘둘러보았다. 벽면을 전부 차지한 서류장에는 은희네 회계사무소에서 맡아 관리해주는 공장이나 회사의 서류들로 빼곡하다.

서너명의 회사 직원들이 전화를 받거나 서류를 정리하는 모습이 분주하다.

새로운 회사의 설립을 위해 영업허가증을 대신 내주고 다달이 영업액에 따라 세금을 계산해서 세무국에 신고하고 재무도표도 작성해준다. 번거로운 업무도 언제나 엄격한 관리와 고객의 수요와 편리에 초점을 맞추어 서비스를 해주기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경기는 날마다 좋아진다고 한다.

분주히 전화를 치고 받고 직원들에게 뭐라고 지시하던 은희가 나와 마주 앉은 것은 한참은 지나서였다.

요즈음은 올해 51일부터 길림성에서 전면 실시되는 영업세를 증식세로 변경시켜 징수하는 세무정책때문에 눈코 없어!

영업세를 징수하던 건축업, 부동산업, 금융업에 음식복무업까지 범위를 확대해서 증식세로 바꿔야하니 업무가 얼마나 번거롭고 까다로울지 상상이 된다.

눈을 내리깔고 은희의 말을 들으며 커피잔을 내려다 보노라니 아침에 생각없이 신고 나온 끌신이 눈에 거슬려 테이블 밑으로 슬그머니 다리를 뻗쳤다. 워낙 깔끔하고 멋을 부리기를 좋아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편안한것만 찾고 자기관리에 게을러졌는지 모르겠다.

편안해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은희의 말을 들으며 웃음으로 화답하려했지만 어쩐지 입귀만 실룩거려질뿐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힘들다고 푸념처럼 늘여놓는 은희에게서 풍겨오는 거부할수없는 매력과 자신감과 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은희는 대학졸업때의 약속대로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몇마디의 안부를 주고받으니 서로 말이 없다 .

전화벨도 끊임없이 울린다.

어쩌면 은희를 방해하는것 같아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붙잡는것도 한사코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손이 허전하게 느껴진다.그제야 오늘은 백화점 마트에서 채소를사는 날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친다.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리다가 시장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시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리용하고 움직이는 곳이지만 시장은 언제나 나와는 무관한 곳으로 되여있었다. 남편과 아들의 건강을 챙긴다는 리유로 붐비는 시장보다는 항상 물건이 좋고 값이 비싼 백화점 마트를 리용했었다.

타인들이 모여서 쉽게 어울리는 공간, 공간도 나는 갖지 못한것일까?

백화점으로 향하던 걸음은 시장으로 옮겨진다.

난전주인들은 자기의 물건이 좋다며 목청을 돋군다. 한창 점심때라 쪽걸상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눈은 여전히 고객들을 훓기에 여념없다.

혼잡하다.하지만 아비규환이란 말보다는 사람이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것이다.

시장을 한바퀴 돌았지만 나의 손은 여전히 비어있다.야채나 고기들도 넘쳐났지만 나는 시장에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방인이 되고말았다.

시장을 나설 때도 여전히 빈손이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그다지 허전하지는 않다.

시장밖에 있는 작은 골목에 들어서니 시골녀인들이 산에서, 터밭에서 금방 따고 캔것들을 가져다 파는지 싱싱한 채소와 산나물들이 많았다.땡볕에 그을린 얼굴만 보아서는 남자인지 녀자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된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만 아니라면 정말 남녀구분이 불가능할것 같다.

앞에서 흥정을 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해서 산다는것쯤은 알고있었지만 나는 값만 물어보고 그대로 돈을 치렀다. 백화점에 다니면서 굳어진 습관이다. 그리고 시골녀인들의 고달픈 모습에서 좀처럼 몇푼을 아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시장을 지나 백화점 마트에 들렸다가 나왔을 때에는 손에는 구럭들이 가득 들려있었다.

집으로 가려고 뻐스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오지를 않는다.

량손에 갈라 비닐구럭을 멍하니 들여다본다. 아들이 좋아하는 돼지갈비, 남편이 좋아하는 산더덕.명란반찬이 들어있다. 아무리 들여다 봐야 내가 좋아하는 반찬거리는 구경조차 할수없다 .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였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던 음식마저 잊어버리고 살아야했던 리유라도 있었던것일가?

저쪽에서 11 뻐스가 달려온다.

눈에 익은 번호지만 한번도 본적이 없는 뻐스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훌쩍 올라탔다.

백화청사를 떠난다.

북대시장도 지났다.

새로 건축된 고속철로도 머리우에서 멀어져간다.

도심을 벗어난 뻐스는 코스모스가 하느작거리는 시골길을 달린다.

지세가 낮은 왼쪽 논밭에선 벼이삭들이 하느적이고 무연하게 뻗는 비탈밭에선 옥수수 잎이 누런색은 띠고있다.

뻐스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어딘가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것만은 분명하다.

발밑에 놓인 구럭을 내려다본다.

낯설다.

내가 들고 왔지만 모든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내가 어디로 가고있지?

뻐스가 나를 싣고 집이 아닌 낯선 곳으로 가고있지만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때문에 가야 하는지를 모른다.

나는 누구지?

남자의 안해로, 아이의 엄마로 살아왔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아리숭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나로만 그냥 살아왔을뿐이다.

-아줌마.

어디선가 소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줌마.

아들의 키들거리는 얼굴이 보여온다.

-아줌마.

남편의 표정 없는 모습이 비껴간다.

-아줌마.

입속으로 속삭이지만 가슴에서 커다란 울림이 되어 흘러간다.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머리와 가슴은 마침내비어버린다. 비여버린 가슴으로, 머리로 갑자기 보이지 않는 외로움들이 덮쳐든다.

마음을 잃어버린 눈은 창밖의 허공에 머무른다.

하늘에서 조그마한 둥지 하나가 떠가고있다. 둥지는 내게로 다가오면서 조금씩, 조금씩 커지다가 마침내 하늘 전체를 덮는다. 아늑하고 따스한 커다란 둥지, 그런데 둥지는 둥지여서 생기와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신에 소름이 돋으려고 한다.

굳어진 내게로 다가온 둥지, 둥지앞에서 나도 마침내 하나의 커다란 둥지가 되여간다.

-아줌마.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만들어 말은 겨우 한마디다.

마침내 나도 하나의 둥지가 되여버린다.

모두가 떠나버린, 그러나 나만은 떠날수 없는 그런 하나의 둥지가 되여 허공을 떠돈다.

 

프로필 :

리 순 화

길림재무학원 졸업. 연변대학경제관리학원 석사졸업. 현재 연변대학도서관 근무.  룡정윤동주연구회 사무국 임원. 로신연변문학강습반 및 11기연변문학원강습반  수료  

소설 "우리의 둥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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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의 둥지 / 리순화

아들은 문고리를 놓지 않고 소리를 친다.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아들의 몸에서는 전혀 조급함이나 초조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