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공감 받고 싶을 때
래원:외신      2018-12-25 15:51:00

남편은 오늘도 퇴근이 늦습니다.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친절하게 전화를 했지만, 그 배려가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요즘 남편은 부쩍 바빠졌습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맡았고 해외출장도 잦아졌습니다.

가끔 출연하는 방송에서 남편 얼굴을 봤다며 여기저기서 톡이 날아듭니다.

'야~ 너 좋겠다. 남편 너무 잘 나가는 거 아냐?!' 그렇습니다. 남편은 소위 요즘 잘나가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내 남편이 잘 나가는데 싫어할 아내가 어디 있을까요?

열심히 일하는데 별 성과 없이 고생만 하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요. 남편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헛헛함은 뭘까요?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식구, 내 편이어야 할 남편에게 묘한 질투와 경쟁심, 열등감이 느껴지는 겁니다.

분명 남편 잘못이 아닌데 애꿎은 원망도 따라옵니다.

-치. 나는 뭐야,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나도 일 계속했으면 더 잘 나갈 수 있었다고!

부부는 일심동체, 한배를 탔으니 당신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라고 함께 기뻐하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습니다.

한때는 나도 열혈 워킹우먼이었는데, 아이 때문에 일을 잠시 쉬고, 성에 차도록 일을 맘껏 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면 그 허전함은 더 커집니다.

그렇다고, 육아를 접고 당장이라도 일을 하러 나가고 싶으냐? 그것도 아닙니다.

아직은 가능한 선에서 아이들을 직접 돌보고 싶어서 일을 줄이기로 결정한 것도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만큼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도 보내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럼에도 가끔 그럴 때가 있는 거죠. 남편은 점점 커지는데, 나는 자꾸만 작아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냥 그렇다는 거지요. 뭘 당장 어쩌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런 내 마음을 누가 좀 알아주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할 마땅한 사람이 또 없습니다. 남편에게 하자니 치사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늦은 밤, 남편이 이제 퇴근한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괜히 낮에 느꼈던 감정이 삐죽이 올라와 툭 터집니다.

남편에게 문자를 넣어봅니다.

-당신 좋아 보이네. 일 잘되어서 좋겠다.

-당신도 일하고 싶어?

그럼 그렇지! 남편은 자동으로 ‘해결사 모드’로 전환됩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잘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해결이 아니라 공감이라고.

그냥 단념할까 하다가 이번에는 어떻게든 이런 내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놓고 싶은 심정입니다. 툭 터진 감정도 다시 담기 어렵고요.

작정하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남편~ 아래를 참고하시오.’

(지금부터 아내가 하는 이야기를 그냥 듣고 있기, 성급하게 문제를 파악하려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기.

가끔씩 ‘응~ 그래~ 아~’ 정도의 추임새 넣기. 아내가 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끼어들지 않기)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남편이 지금 대화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지문’으로 넣어 준 것입니다.

‘엎드려 절 받기’같지만, 이 방법은 매우 효과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할 때 그제야 알아듣습니다.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를 떠올리며 ‘아~ 맞다.’ 하는 겁니다. 남편도 머리로는 알고 있거든요.

나는 지문을 넣어두었으니, 실컷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겁니다.

물론 남편을 비난하는 말은 삼가야겠지요. 요즘 잘 나가는 남편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을 덧붙이면 금상첨화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내 마음을 당신이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에 충실하게, 지금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얼마나 속이 상한지. 허전한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후로도 남편은 여전히 공감보다는 해결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다시 분명한 ‘지문’이 제시되면 쉽게 알아차리고 경청자의 역할을 잘 해냅니다.

학습이 된 거죠.^^

스스로 못한다고, 언제까지 말해야 하냐고 답답해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대화를 위해 먼저 말해 보면 어떨까요?

'남편, 그냥 내 얘기를 들어줄래요?'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