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자녀와 깊이 공감하는 5가지 방법
래원:외신      2018-05-17 17:13:00

 

누군가와 관계를 잘 맺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진정한 공감 없이는 관계의 진전이 있을 수 없다. 상대방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사람에게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은 없다.

혹시 자녀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가? 그 문제 이면에는 반드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리해받지 못해 아팠던 상처가 아이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숨어 있는 아픔과 상처를 발견하라

아이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 흔히 어른들은 문제의 원인이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아이가 변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아이의 감정과 생각이 거부당하고 리해받지 못해 아팠던 상처가 치유되면 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될 수 있다.

우리 아이에게는 그렇게 큰 상처는 없다고? 꼭 큰 아픔과 상처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아픔과 상처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을까? 아이는 생각보다 더 큰 상처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추어진 그 상처를 보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우리가 아이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헛된 노력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상처를 안은 채 불안정한 어른으로 자라고 만다. 아이들이 느껴야 할 든든한 안정감을 줄 기회를 놓친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아이의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서 그 아픔을 발견해야 한다.

아이들의 사랑을 무시하지 말라

어른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의 사랑은 풋사랑이고 큰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거다. 절대 그렇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눈물 나고 가슴 절절한 사랑이 있다. 깊이가 어른들의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순수하기에 더 깊고 절박할 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사랑은 풋사랑이 아니다. 그들의 표현이 어른들에게 짜증스럽고 못마땅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표현 방식이 어른과 맞지 않는 것일 뿐, 그들의 사랑이 진실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들의 사랑을 평가절하하고 무의미하다고 단정 짓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고 이성친구를 못 사귀게 하는 것보다, 자신의 사랑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에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상한다. 실연으로 힘들고 아픈데, “그건 별 거 아니다.”라고 하면 아이들은 어떨까? 자신의 고통에 공감을 못 해주는 사람은 밉고 싫다. 그런 어른들과는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통을 분석하지 말라

우리는 말 몇 마디로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몇 마디가 오히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리해받지 못하는 고통’까지 더해 주고 관계도 서먹해진다.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고 분석해서 결론 내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관계를 깨뜨린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 문제에 대해 ‘리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 사람이 느끼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함께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을 정말 알아주고 함께 아파한다면, 머리로만 ‘리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정’하고 공감해 준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나의 고통이 누군가의 고통에 연결될 때 그래서 함께 고통을 끌어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된다.

억울함을 알아주라

어린 시절, 나는 딱지의 달인이었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자랑스러운 딱지가 가득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사하면서 “저 쓰레기를 뭘 가지고 가. 버려!”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절망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분신 같은 딱지를 가지고 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아버지가 울고 있는 내게 눈을 찡긋하고는 엄마 몰래 이삿짐 트럭 한구석에 딱지를 실어 주셨다.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나이도 많으셨지만 내 마음을, 내 억울함을 알아주고 싶이 공감해주셨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것을 지켜주셨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고 아픈데 상대가 이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 억울함은 어떻게 하나. 이런 억울함이 관계를 깨트리는 계기가 된다. 그 억울함 때문에 벽이 생겨서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억울함을 알아주고 그 사람이 억울해하는 자리로 내려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를 내려놓고 내려가라

상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려는 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 생각이 편견이 되지 않도록 잠시 나를 내려놓고서 그 사람을 그의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 판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상대를 리해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채 자신의 생각으로 문제를 바라본다. 그 결과 마음과 마음이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를 리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그냥 곁에서 함께하며 “많이 아프구나. 많이 힘들구나.” 해주면 된다.

화가 난 사람 옆에서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화를 낼까?’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냥 ‘화가 많이 나 있구나.’ 생각하고 가만히 곁에서 그 화가 누그러지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

화가 난 사람에게 다가가 그게 화를 낼 일이 아님을 설명하면 더 화가 날 것이다. 힘겨워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이건 넘어져 있을 만한 일이 아니다. 툭툭 털고 일어나라.”라고 말하면, 자신의 힘겨움을 알아주지 못하는 그 사람이 야속하고 미울 것이다.

힘들고 지쳐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많이 힘들지.” 하며 가만히 곁에 있어 주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사람 곁에서 힘들어하는 그 모습 그대로를 바라봐 주면 된다.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 함께 느끼는 것, 그것이 관계의 문을 열어 주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