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날도 명절증후군? 화병 없이 보내려면
래원:경향신문      2018-02-14 09:17:00

울화병·한국민속증후군 등으로 불리는 화병은 한국에만 있는 질병이다.

“아빠, 나 이번에 할머니 댁에 안가면 안 돼? 취준생인데 어른들이 또 뭐라고 할지 너무 피곤해.”

“난들 좋아서 가냐. 애들 세뱃돈도 줘야지, 차 막히는 것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여기서 나보다 더 피곤한 사람 있어? 잔말 말고 얼른 갈 준비 해.”

설날을 앞둔 가족의 흔한 대화다. 이처럼 한국에 명절을 진정으로 고대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어쩐지 이 무렵에는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 ‘명절 후 화병에 속 타는 주부들’ 같은 헤드라인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중 화병은 흔히 중년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요즘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명절을 두려워하고, 스트레스 받는다. 학생들과 취준생들은 친척 어른들의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스트레스 받고, 가장들은 무리하게 세뱃돈과 선물을 준비하느라 등골이 휘고, 주부들은 여기에 시댁 스트레스까지 겹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이처럼 명절에 특히 도지기 쉬운 화병, 광동한방병원 화병클리닉 문병하 대표원장의 도움말로 현명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본다.

■ 한국에만 있는 화병, ‘정식 질환’ … 신체화 증상 넘어 질병 악화까지

울화병·한국민속증후군 등으로 불리는 화병은 한국에만 있는 질병이다. 이는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에 등재된 정식질환이다. 억울한 감정이 누적되고 해소되지 않은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한방에서는 화병을 분노와 걱정거리가 오래 쌓여 인체의 기순환을 막고 가슴에 열이 뭉친 병이라는 의미로 ‘심화’(心火)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화(火)는 서양의학의 스트레스와 대응되는 한의학적 개념이다. 오행 중 ‘불’의 성질을 가져 위로 올라가려는 속성을 나타내고, 심장과 연관돼 온몸의 진액을 손상시킨다.

문병하 원장은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학생, 직장인, 주부 등이 화병에 쉽게 노출된다”며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지만 성격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 가정불화, 엄격한 상하 위계질서 같은 환경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기분이 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슴 두근거림 및 가슴통증, 두통, 온몸이 쑤시는 증상, 소화기장애 등이 나타난다. 또 기존에 갖고 있던 고혈압, 두통, 관상동맥질환, 위십이지장궤양, 역류성식도염,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질환을 더욱 악화시켜 조심해야 한다.

■ 주부, 힘든 명절 보낸 뒤 극대화 … 억눌린 감정 표출

명절 이후 특히 주부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은 명절음식 준비, 귀향, 가부장제도 등 한국 특유의 불합리한 문화가 가장 많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문병하 원장은 “설날 등 연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천불이 나고 이유 없이 화가 나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중년여성이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때 남편과 시댁 등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더해지고, 이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않는 상황에 분노와 좌절감을 느낀다”며 “여성들은 대부분 이런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못하고 억누르다 결국 화병으로 진행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화병은 보통 충격기·갈등기·체념기·증세기 등 4단계를 거쳐 발생한다. 충격기엔 분노로 살의까지 느끼다가 이성을 회복하는 갈등기에는 해결법을 찾기 위해 고민에 빠진다. 이후 체념기엔 해결법을 찾지 못해 이런 문제를 자신의 운명이자 불행으로 받아들이는데 이 과정에서 우울증이 많이 발생한다. 마지막 증세기엔 그동안 쌓여왔던 화가 소화장애·두통·어지럼증·답답함·불안·짜증·신경질 등으로 표출된다.

■ 갈등해소 어려워도 자신의 심신안정 찾아야

이런 경우 대개 대안법으로 ‘서로 오해하고 다투지 않도록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고, 감정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남녀가 가사분담을 잘 나누도록 하자’는 등 교과서적인 제안이 나온다.

하지만 화병 환자들은 그렇게 쉽게 말로 풀어질 것이었으면 애초에 화병이 생길 일도 없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그런 방법들을 안 써봤을 것 같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다. 화병 환자들은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한 사람이 희생하다보니 마음이 상하는 것은 물론 몸까지 아픈 지경에 이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갈등해소에 앞서 자신의 지친 몸을 달래고 심신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광동한방병원에서도 이러한 상황에 화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침, 약침, 부항, 한약 등으로 화병을 다스린다. 문병하 원장은 “화병은 짧은 기간 동안 잠깐 앓는 질환이 아니라 오래 동안 점점 악화되는 병이므로 스스로의 몸을 돌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침은 팔·다리·머리·가슴중앙 등에 시술해 가슴에 뭉친 기운을 풀어주고, 전신의 기혈을 순환시켜준다. 약침은 사향·웅담·우황 등의 성분을 가슴과 어깨 목에 주입해 화를 풀어주고 기혈 순환을 촉진한다. 향부자·오약·연자육·용안육·황금·백복신 등으로 제조한 한약을 병용하면 지속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열을 내리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

치료 과정에서 기체조나 스트레칭, 유산소운동 등을 병행하는 것도 기혈순환에 효과적이다.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인지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