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전놀이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6-03-02 14:47:00

동채싸움이라고도 한다. 차전놀이는 1937년까지 연중행사로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낮에 강변 백사장이나 벌판에서 거행되다가 일제에 의하여 금지되었다. 8·15광복 후 1958년 건국 10주년 기념행사로서 공보부가 전국 민속예술 제전을 개최하면서 다시 부활하였고, 1966년에는 안동농업중고교 학생이 본격적 차전놀이를 연출하였다. 1969년에는 '사단법인 안동차전놀이 보급회'가 설립되고 이 해에 안동 차전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면서 차전놀이의 대표격이 되었다.

안동차전놀이의 유래는 통일신라 말에 후백제(後百濟)의 왕 견훤(甄萱)이 고려 태조 왕건과 자웅을 겨루고자 안동으로 진격해왔을 때 이곳 사람들은 견훤을 낙동강 물속에 밀어 넣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팔짱을 낀 채 어깨로만 상대편을 밀어내는 차전놀이가 생겼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는 견훤이 쳐들어왔을 때 이 고을 사람인 권행(權幸)·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이들을 모신 3태사묘가 안동에 있어 지금도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이 짐수레와 같은 수레 여러 개를 만들어 타고 이를 격파한 데서 비롯한 놀이라고도 한다.

놀이는 먼저 부정을 타지 않게 정성껏 베어 온 길이 20∼30척의 참나무를 X자 모양으로 묶어 동채를 만들고 끈으로 단단히 동여맨 다음, 가운데에 판자를 얹고 위에 방석을 깔아 동여맨다. 동채 머리에는 고삐를 매어 대장이 잡고 지휘할 수 있게 하고 판자 뒤에는 나무를 X자 모양으로 하여 4귀를 체목에 묶어 동채가 부서지거나 뒤틀리지 않게 한다. 동채꾼은 대장·머리꾼·동채꾼·놀이꾼으로 이루어지며 대체로 25~40세의 남자 500여 명이 동서로 갈리어 승부를 겨룬다. 동부의 대장을 부사(府使), 서부의 대장을 영장(營將)이라고 하며 승부는 상대편 동채가 땅에 닿거나 동채를 빼앗으면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