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후 조선족의 주택상황 4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6-02-25 15:04:00

1945년 8월에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후 동북3성에서는 1946년 겨울부터 1948년도까지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농민들도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모두 토지를 분여받게 되여 소작농의 신세를 영원히 면하게 되였다. 토지를 갖게 된 농민들은 다시는 떠돌이생활을 하지 않고 그 고장에서 집을 짓고 안착된 생활을 하게 되였다.

1960년대 말까지 동북3성 조선족농촌의 주택은 절대 대부분이 초가집이였다. 1980년대초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시범적으로 사회주의 새 농촌 건설을 하기 시작하여 벽돌기와집으로 일신한 새 농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농민들의 생활수준이 현저하게 제고됨에 따라 기타 농촌에도 벽돌기와집이 점점 많아졌다. 움집, 3간짜리 초옥 같은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전에 없던 2층 혹은 다층 주택들이 곳곳에서 일떠서기 시작하였다. 21세기에 이르러 사회주의 새 농촌 건설이 전면적으로 추진되면서 초가집은 점차 사라지고 여러가지 새로운 형태의 벽돌기와집으로 사회주의 새 농촌을 장식하게 되였다.

이 시기의 조선족농촌주택은 주택의 규격, 집안구조, 실내장식, 앞마당리용 등 방면에서도 현저한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날의 주택은 일반적으로 너비 3~5메터, 부지면적이 40~50평방메터 되지만 지금의 주택은 너비 7메터좌우, 부지면적이 70~100평방메터 정도가 된다. 실내구조에서 전통적인 량통형은 사라지고 외통형과 새로운 다양형이 일반화 되였다. 지난날의 초가집은 중천반이 없으나 지금은 모두 중천반을 누른다. 1980년대에 이르러 농민들의 경제의식이 제고되면서 앞마당에 고추와 가지 같은 남새를 많이 재배하던 관습을 벗어나 참외, 땅꽈리 같은 경제작물을 재배하는 현상이 새롭게 나타났다.

이 시기 동북3성 조선족주택 조사실록:

1) 연변

(1) 박정수: 남성, 40여세, 룡정시 동성용진 룡산촌에 거주. 1995년에 조사.

박정수의 주택은 1980년대 초에 지은 벽돌기와집인데 연변에 찾아온 중앙지도자들에게 여러차례 선을 보인 주택이다.

박정수 주택

① 출입문 ② 부엌을 덮은 널판 ③ 솥 ④ 정지 ⑤ 식장 ⑥⑦⑧ 단스, 옷궤 ⑨ 웃방 ⑩ 공간 ⑪ 세면시설 ⑫ 침실 ⑬ 침대 ⑭ 부뚜막 ⑮ 로인을 모시는 방 ⑯ 연통 ⑰ 창고 및 화장실

(2) 안도현 만보진 홍기촌

홍기촌은 2000년에 국가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중국제1민속촌≫이란 칭호를 받았다.

안도 홍기촌 민속마을 사진

2) 길림성

(1) 신경환: 남성, 1940년생, 구태시 음마하진 홍광촌에 거주. 1992년에 조사.

이 마을의 조선족주택은 대부분이 벽돌기와집이다. 지붕은 맞배형이고 집안구조는 3간식으로 되여있었다. 온돌은 한쪽면 온돌로 되여있었다. 전통적인 조선집은 한두집(1%)밖에 없었다. 화목은 벼짚으로 하였고 겨울철엔 간이보이라(土暖气)를 설치하여 난방하였다.

신경환 주택의 내부구조

① 출입문 ② 공간 ③ 봉당 ④⑪ 온돌 ⑤ 부뚜막 ⑥ 부엌간 ⑦ 군불 때는 아궁 ⑧ 창문 ⑨ 객실 ⑩ 봉당 ⑫ 연통

(2) 윤봉만: 남성, 1927년생, 류하현 타요령진 양선3대에 거주. 1989년에 조사.

이 마을에는 조선족이 35호 있었는데 모두 경상도사람이다.

윤봉만 주택(벽돌기와집, 맞배지붕)의 내부구조

① 출입문 ② 미닫이문 ③ 부엌간 ④ 부뚜막 ⑤ 창문 ⑥⑩ 봉당 ⑦⑪ 온돌 ⑧ 창고 ⑨연통

⑫ 창문(미닫이식) ⑬ 궤

3) 료녕성

(1) 리윤화: 남성, 1936년생, 서해농장 쌍안촌에 거주. 1993년에 조사.

이 마을에는 평안도사람이 많았고 평정집(平顶房)이 많았다. 부엌의 특징은 지실과 온돌의 높이 차이가 연변의 주택보다 작은것이다.

리윤화의 주택(벽돌집, 평정식지붕)

(2) 류명걸: 남성, 1953년생, 관전현 하로하진 통강촌에 거주. 1993년에 조사.

이 마을은 관전현에서 제일 큰 조선족마을인데 대부분이 평안도사람들이다.

류명걸 주택(초가집, 맞배지붕) 평면도

① 출입문 ② 창문 ③ 부엌간 ④ 부뚜막 ⑤ 창문 ⑥ 아래간(부모가 사용) ⑦ 새간(조부모 혹은 아들 며느리가 사용) ⑧ 마주간(아들며느리 사용) ⑨ 단방 ⑩ 연통 ⑪ 외양간(지붕만 있고 벽은 없다.)

이것은 전형적인 평안도집인데 이 마을에서 1950~1970년대에 지은 집은 모두 이런 격식이였다.

* 당반

평안도집의 한쪽 벽에 당반이 설치되여있는데 등대처럼 물건을 올려놓는 시설이다.

당반

4) 흑룡강성

함경도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녕안현, 해림현, 밀산현, 계동현 등 지방에는 외통형의 조선집이 많았고 기타 지방에는 맞배지붕에 남북구들을 설치한 한족식의 주택이 많았다. 조선집이 적어지고 한족식주택이 많아지는 원인은 주로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족식주택은 신을 신고 집안에 들어갈수 있으므로 편리하고 다른 하나는 대대손손이 한족식주택에서 살다보니 한족식주택에 습관된것이다.

(1) 최범천: 남자, 50여세, 계동현 계림조선족향 계림촌에 거주. 1989년에 조사.

최범천의 주택은 1980년대에 지은 2층짜리 벽돌기와집이다.

최범천 주택 일층평면도

① 출입문 ② 복도 ③ 빈칸 ④ 간이보이라실 ⑤ 온돌 ⑥ 봉당 ⑦ 객실 ⑧ 침실 ⑨ 침대 ⑩ 봉당 ⑪ 온돌 ⑫ 부뚜막 ⑬ 화식간 ⑭ 빈칸(예비용) ⑮ 창문 ⑯ 연통

(2) 정룡섭: 남성, 1946년생, 치치할시 룡사구 룡사향 명성촌에 거주. 1993년에 조사.

이 마을의 주택은 절대 대부분이 벽돌기와집인데 지붕은 맞배지붕과 평정지붕 두가지가 있었다. 벽의 두께는 벽돌 3장을 세로 놓은 정도(약 70센치메터)인데 벽을 쌓을 때 드문드문 가면서 벽돌을 한장씩 빼놓았다. 이렇게 하면 벽돌이 절약되고 보온효과도 더욱 좋다고 하였다.

정룡섭 주택 평면도

① 출입문 ② 부뚜막 ③⑦ 온돌 ④⑥ 봉당 ⑤ 창문 ⑧ 연통

(3) 김혁근: 남성, 1912년생, 상지현 하동향 광명촌(17호)에 거주. 1993년에 조사.

상지현과 오상현 일대의 벽돌기와집은 맞배지붕과 평정지붕 두가지가 있었는데 맞배지붕은 양철 지붕이 많았다. 이전에는 남북구들을 놓은것이 많았는데 지금은 김혁근의 주택에만 남아있었다.

김혁근 주택 남북구들

① 출입문 ② 부엌간 ③ 부뚜막 ④ 남쪽구들 ⑤ 봉당 ⑥ 북쪽구들 ⑦ 널마루 ⑧ 창문 ⑨ 연통

5) 내몽골

리윤태: 남성, 1930년생, 울란호트시 울란쑤무 삼합촌에 거주. 1993년에 조사.

이 조선족마을의 주택은 모두 벽돌기와집이였는데 지붕형태는 맞배지붕과 합각지붕 두가지가 있었다. 실내구조에서는 조선족식으로 통구들을 놓은 집이 한집, 맞은칸구들(남북구들)을 놓은 집이 한집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한쪽면구들이였다.

조선집 실내구조

① 출입문 ② 부엌간 ③ 부뚜막 ④ 온돌 ⑤ 창문 ⑥ 연통

한쪽면 온돌형태

① 출입문 ② 부엌간 ③ 부뚜막 ④ 지실 ⑤ 온돌 ⑥ 창문 ⑦ 연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