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풍속의 형성과 발전
래원:연변일보      2016-01-18 15:22:00

자식을 낳고 키우는것은 한개 가정이 혈통을 이어나가고 한개 민족이 번성하는것과 직접 관련되는 대사이다. 때문에 총명하고 건강한 자식을 낳으려는것은 세상사람들의 공통된 념원이다. 조선민족의 조상에게도 존재하였던 이러한 관념은 력사문헌, 설화, 민간이야기 등 방면에서 충분히 찾아볼수 있다.

*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는 천제(天帝)가 내려보낸 금궤에서 태여났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도 점잖았으며 총명하고도 지략이 많았으므로 이름을 알지라고 지었다.

* 고구려시조 고주몽은 알에서 태여났는데 몰골이 기특하였다.

*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태여나서부터 총명하였다.

우에서 언급한 김알지, 고주몽, 대무신왕 등에 관한 기록을 보면 고대의 임금이나 시조인물들은 일반사람들과 다르다는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들의 타고난 자질을 미화하는 일면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것을 갈망하는 념원을 반영하고있는것이다.

조선족의 선인들은 건강하고 총명한 후대를 양육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을 채택하였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귀납할수 있다. 첫째는 과학적인 의료보건이고 둘째는 신령에게 기도를 드리는것이고 셋째는 여러가지 금기를 실시하는것이다.

청나라, 민국 및 일제통치 시기에는 의사가 적고 약이 결핍하며 의료시설이 극히 미비한데다가 사람들의 생활이 가난하여 의료수단을 통하여 병을 치료하거나 건강을 보장하는 목적을 달성할수 없었다. 일제통치시기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장티부스, 콜레라, 페스트 등과 같은 전염병이 경상적으로 만연되였다. 일단 어느 집에 장티부스환자가 생기면 그 집 대문에 새끼줄을 쳐놓고 그 집의 식구들이 대문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대문어구에 물독을 하나 설치해놓고 동네사람들이 그 독안에 물을 넣어주면 그 물을 먹고 산다. 돈이 없어 약을 살수 없으므로 돼지똥이나 인분을 말리워 그것을 물에 풀어서 약으로 먹는다. 이런 형편에서 일단 병에 걸리면 사망률이 가장 높은것은 저항력이 약한 어린이들과 로인들이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리훈구가 쓴 ≪만주와 조선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재하였다. “1930년에 그가 동북에 거주하는 조선인가운데서 201세대를 조사하였는데 201세대의 1,074명 인구가운데서 1930년에 출생한 아기가 32명이였으며 출생률이 2.5%에 달했다.

그리고 같은 해의 사망인수는 36명이였는데 사망률은 3.2%에 달했다.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높아 인구의 자연감소률은 0.8%에 달했다. 그해의 사망자가운데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것은 어린이들이였다".

조선족의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높고 어린이들의 사망률이 높은 원인에 대하여 리훈구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로 귀납하였다.

1. 의료기구가 부족하고 위생설비가 나쁘기때문이다.

2. 주택이 협소하여 해빛과 통풍이 잘 안되기때문이다.

3. 음식이 거칠어 영양가가 낮기때문이다.

4. 의복이 얇고 불결하기때문이다.

이러한 형편에서 사람들은 육아방면에 있어서 신령께 기도하는것과 금기조치를 채택할수밖에 없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후 생활여건과 의료여건이 제고되고 사람들의 과학문화수준이 제고됨에 따라 육아풍속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였다.

과거에 조선족녀성들이 해산할 때에는 본가집의 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해산하였는데 전문적인 조산원이 따로 없었다. 해산할 림박이면 온돌에 폈던 자리를 걷고 벼짚이나 조짚을 펴고 그우에서 해산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이후에는 마을마다 조산원을 두고 산실도 마련하였으며 임신부가 해산할 때에는 깔자리를 펴고 해산하였다. 20세기 70년대에 이르러 조선족이 많이 살고있는 지방에서는 현성이상의 도시마다 모두 임신부들이 해산하는 보건소나 부유병원(妇幼医院)이 건립되였다.

지난날 조선족산모들의 전통음식은 쌀밥과 미역국이였다. 그 시기에 이런 음식은 평소에는 먹을수 없는 고급음식이였다. 그리하여 “녀자는 해산을 해야 좋은 음식을 먹어본다.”는 말까지 있다. 지금도 녀자들이 해산하면 미역국을 먹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미역이 피를 맑게 하는 작용을 하기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미역국만 먹는것이 아니라 닭알, 물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같은 여러가지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다.

지난날에 산모와 영아의 건강을 위하여 신령에게 기도를 드리고 여러가지 금기를 실시하던 풍습은 이미 사라지고 과학적으로 산모와 영아의 건강을 보장하는 새로운 관념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수립되였다.

20세기 50년대 이전까지는 생활이 보편적으로 가난했으므로 대다수 가정은 백일잔치, 돌생일 같은 축하의례를 거행하지 못하였으며 오직 생활이 비교적 부유하거나 어쩌다가 귀동자를 보게 된 가정에서만 상술한 몇가지 잔치를 벌리였다. 20세기 80년대 이후에는 생활수준이 현저하게 제고되고 한개 가정에서 어린애를 한둘밖에 낳지 않으므로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돌생일을 경축하는 현상이 보편화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