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한 전통명절-설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6-01-06 15:09:00

조선민족의 주요한 전통명절은 력사시기에 따라 부동하다. 삼국시기에는 정초(설날), 정월 보름, 3월 삼짇, 수리날(단오), 6월 류두, 한가위날(추석), 9월 중구, 10월 동맹 등이 있었고 고려시기에는 연등회, 류두, 팔관회 등 3대 민속명절이 있었으며 속절(俗節)로는 설, 정월 보름, 한식, 3월 삼짇, 수리날, 한가위날, 중구, 팔관(10월), 동지 등 9개가 있었다. 조선왕조시기에는 설, 정월 보름, 2월 초하루, 3월 삼짇, 4월 파일, 수리날, 6월 류두, 7월 백종, 한가위날, 중구, 동지 등이 있었는데 그중 설, 한식, 수리날, 한가위날 등이 4대 명절로 취급되였다.

중국 조선족은 대체로 조선왕조시기의 전통명절을 전승하였는데 그가운데서 설, 정월 보름, 수리날, 한가위날 등을 주요명절로 취급하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법적으로 휴가일을 정한 전통명절로는 춘절(정월 초하루), 청명, 단오, 중추절(음력 8월 15일), 제석(섣달 그믐날) 등 5개 명절이 있다.

1) 설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이라 한다. 이외에도 정월단(正月旦), 세수(歲首), 년수(年首), 정초(正初), 구정(舊正) 등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웠다. 설이란 명칭의 어원에 대해 민속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추측하고있다.

(1) ≪삼국유사≫에 의하면 매년 첫번째 해일(亥日), 자일(子日), 오일(午日)에는 온갖 일을 꺼리며 조심하여 감히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를 "달도(怛刀)"라 했으며 근심되여 여러가지 일을 금했다고 한다. 설날은 이처럼 "섧다", "슬프다"에서 나온 말이다.

(2) 몸을 사린다는 “신일(慎日)”의 뜻에서 나온 말이다.

(3) 나이를 뜻하는 세(歲)의 고어 "술"에서 변화된 말이다.

(4) 새로 솟아난다는 뜻과 마디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살(sal)"에서 나온것이다.

음력설을 중국의 한족들은 춘절(春節)이라고 한다. 원래는 "년(年)", "원단(元旦)" 등으로 불렀는데 민국 3년(1914년)에 민국정부에서 음력 원단을 춘절로, 단오를 하절(夏節)로, 중추절(中秋節)을 추절(秋節)로, 동지날을 동절(冬節)로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이때로부터 중국에서 음력설을 춘절이라고 불러왔다.(民國三年一月二十六日(陽曆)公布:“陰曆元旦爲春節,端午節爲夏節,中秋節爲秋節,冬至爲冬節。”)

우리 민족이 어느때부터 설을 쇠였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신라 진덕왕) 5년(651년) 봄 정월 초하루날 왕이 조원전에 나앉아 백관들의 신년축하를 받았다.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였다.[(新羅真德王)五年春正月朔, 王御朝元殿, 受百官正賀。賀王之禮始於此。]

신라에서 설명절을 아주 중히 여겼다는 사실은 중국의 고대문헌에도 기록되여있다.

매년 정월 초하루날에 사람들은 서로 축하를 올리며 임금은 연회를 베풀고 문무백관을 대접한다. 이날엔 일신과 월신에게 제사를 드린다.(每正月旦相賀。王設宴會,班齎群官。其日拜日月神。)

≪수서(隋書)≫에 의하면 신라의 풍속은 대체로 고구려, 백제와 같다고 하였다.(風俗…略與高麗、百濟同。)

상술한 력사기록으로부터 조선반도에서는 삼국시기에 이미 설을 쇠는 풍속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설명절 직전이 되면 외지에 있는 자식들은 모두 부모곁으로 돌아온다. 설명절행사는 섣달 그믐날부터 시작된다. 섣달 그믐날행사는 앞부분에서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중복하지 않는다.

설날 아침에 첫 행사로 세상뜬 4대 조상에게 제사지내는데 이것을 차례(茶禮)라 하며 음력설날에 지내는 차례를 정초차례(正初茶禮)라 한다. 한국 민속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차례는 일반제사와 세가지 방면에서 다르다고 한다. 첫째, 일반제사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고 차례는 명절날에만 지낸다. 둘째, 일반제사의 음식은 국과 밥을 놓지만 차례에는 놓지 않는다. 셋째, 일반제사때는 술을 석잔 따르지만 차례때는 술을 한잔만 따른다. 하지만 중국 조선족들은 이러한 구별이 없이 차례도 일반제사와 마찬가지로 지낸다. 세상뜬 부모의 신위로는 유상을 모시고 기타 조상들의 신위로는 지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흔히 날밝기전 자시(子時)경에 차례를 지내고 기타 사람들은 날밝은 뒤에 지낸다. 차례음식으로는 떡국, 설기떡, 송편, 곶감 따위를 놓는다. 음식을 차린 뒤 가정식구들이 주차순서에 따라 술 한잔 따르고 절을 한번 하는 식으로 세번 반복한다. 혹은 술잔에 술을 세번 꺾어 따르고 절을 세번 한다. 중요한 명절날에 차례를 지내던 습속은 20세기 50년대까지 지속되였으며 연길시내에는 지금도 정초차례를 지내는 사람이 있다.

차례가 끝나면 자손들이 부모와 조부모에게 세배를 드린다. 이때 어른들은 세배를 하는 아이들에게 세배돈을 얼마씩 준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 다른 집 로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올리는것을 동네세배라 한다. 동네세배는 일반적으로 남성중청년들이 많이 하는데 "로인님께서 과세에 안녕하십니까?"하고 절을 올리면 세배를 받는 로인들은 "새해에 장가갈 꿈이나 꿨는가?" 혹은 "새해에 횡재할 꿈이나 꿨는가?"하고 답례한다. 그리고는 세배를 올린 사람에게 엿 혹은 술을 대접한다. 20세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네 세배풍습은 전화로 인사를 올리는 형식으로 바뀌였으며 가정세배에서도 어린아이들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배를 드린다. 로인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세배돈은 1990년대 초기에는 5-10원 정도로 주었는데 지금은 50-100원 정도로 준다.

설날이 되면 누구나 깨끗한 옷이나 새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을 설빔 혹은 세장(歲裝)이라 하며 설날 아침에 먹는 음식은 세찬(歲餐)이라 한다. 설이 돌아올무렵이 되면 집집마다 엿을 달인다, 두부를 앗는다, 술을 곤다, 떡을 친다 하며 매우 분망히 보낸다. 특히 섣달 그믐날이나 설날 아침에 들려오는 찰떡치는 소리는 명절의 기분을 한결 돋구어준다. 한족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잡거지구의 농촌이나 향진에서 살고있는 조선족들은 한족들의 영향을 받아 음력설용으로 돼지를 한마리 길러 설무렵에 잡거나 시장에 나가 돼지고기 100~150킬로그람 정도 사서 설과 보름기간에 먹는다. 설명절에 먹는 음식은 다채롭고 풍성하다.

그중 대표적인 음식은 떡국이다. 때문에 상대방에게 자기의 나이를 말할 때 "떡국을 몇그릇 먹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변일대를 비롯한 함경도사람들이 많이 살고있는 지방에서는 떡국보다 찰떡을 먹는것이 오랜 습속으로 되여있다. 경상도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설날에 만두국을 먹는데 만두를 따로 만들지 않고 한족식 죠즈(餃子)를 싸서 고기국에 넣고 끓인다. 압록강류역에서 살고있는 평안도사람들은 메뿌리가루에 쌀가루를 섞어서 만든 메뿌리설기떡을 설날의 특별음식으로 먹는다. 지금은 그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고정적이고 통일적인 세찬이 없이 저마다 자기가 즐기는 음식을 먹으며 지난날처럼 많은 공력을 들여 음식을 장만하는것이 아니라 시장에 나가 음식을 사들이거나 한족들의 영향을 받아 죠즈를 설날의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찬을 먹을 때 새해를 의미하는 세주(歲酒)라 하여 누구나 다 술 한잔씩은 마신다. 재래적인 습관에 세주불온(歲酒不溫)이라 하여 설날 아침에는 찬술을 마신다. 이것은 봄을 맞는 의미에서 생긴 풍습이라 한다. 지난날 설날에 마시는 술로는 청주, 탁주, 토주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가운데서 가장 즐겨마시는 술은 도소주(屠蘇酒)였는데 그것은 도라지(桔梗), 방풍(防風), 산초(山椒), 육계(肉桂), 백술(白术) 등 여러가지 약초를 넣어서 빚은 술이며 설날에 먹으면 사기(邪氣)를 물리칠수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례절에 술을 마실 때 나이 많은 사람부터 마시는데 도소주는 나이 적은 사람부터 마시는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자기 집에서 곤 술을 마시는것이 아니라 상점에 가서 자기가 마시고싶은 흰술이나 색주 혹은 맥주를 사서 마신다. 또한 설날 아침에는 집집마다 세화(歲畫)로 호랑이그림을 대문에 붙인다. 조선민족의 속신에 호랑이는 맹수이면서도 신령스러운 길상동물이다. ≪삼국지≫에 의하면 예맥에서는 매년 10월에 호랑이를 신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十月…祭虎以爲神。) 설날 아침에 호랑이그림을 붙이는것은 호랑이의 위력을 빌어 귀신과 재액을 물리치고 집안의 평안을 보장하고저 하는것이다.

설명절의 전통적민속놀이로는 연띄우기, 널뛰기, 쥐불놀이, 농악놀이 등 여러가지가 있다. 연띄우기는 그 유래가 아주 오랜 놀이로서 설부터 보름사이에 많이 띄운다.

설날 저녁무렵에 대문이나 출입문에 채를 걸어놓으며 문밖 섬돌우에 벗어놨던 신발을 몽땅 집안에 들여놓는다. 설날 저녁이 되면 야광귀(夜光鬼,일명 약괭이—藥王鬼)가 민간에 내려와 잠자는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맞는 신을 가져가는데 그러면 그 애에게 액운이 떨어진다고 한다. 채를 걸어놓으면 귀신이 채구멍을 헤아리느라고 정신이 팔려 문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