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보름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6-01-04 13:55:00

음력 정월 15일을 정월 보름, 대보름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 한다. 상원은 도교(道教)의 명절명칭으로서 7월 15일을 중원(中元)이라 하고 10월 15일을 하원(下元)이라 한다.

보름명절은 정월 14일부터 시작되여 16일에 결속된다.

(1) 14일날의 풍속

정월 14일을 작은 보름이라 한다.

이날 생활이 가난한 집에서는 이른아침에 잘사는 집의 마당비를 가만히 가져다가 마당을 쓴다. 그것은 가난을 쓸어버리는 상징으로 후에 셈평이 펴진다고 한다.

농가에서는 이날 혹은 13일날에 화간(禾杆)을 세운다. 화간을 낟가리대라고도 한다. 벼짚이나 조짚의 웃초리를 가쯘하게 끊어서 단을 묶고 수수깡으로 여러가지 곡식이삭을 만들어 가득 꽂아놓는다. 긴 장대기로 그 곡식단을 세로 꽂아서 창고앞이나 두엄무지에 세워놓고 넘어지지 않도록 고착시킨다. 2월 1일 아침에 화간을 내리우고 "곡식"을 몽땅 뽑아 마당에 무져놓고 몽둥이로 "타작"한다. 길림성 영길현 강밀봉진 하강촌의 조선족들은 화간을 세우지 않고 수수깡으로 여러가지 곡식이삭을 만들어서는 그대로 처마밑 섬돌우에 늘여놓는다. 2월 1일날에 아이들을 시켜 "타작"을 하는데 몽둥이로 "곡식"이삭을 두드리면서 "한섬, 백섬, 천섬, 금년 보리농사 잘됐다. 콩농사도 잘됐다…"라고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13일에 화간을 세웠다가 15일에 "타작"하고 어떤 지방에서는 14일에 세웠다가 16일에 "타작"한다.

압록강과 훈강 일대의 평안도사람들은 이날 액을 물리친다 하여 왼새끼를 꽈서 대문, 창고문, 출입문의 문고리에 매놓으며 연변일대의 함경도사람들은 황토(黃土)를 물에 풀어 한자로 춘첩 비슷한 글귀를 써서 대문, 창고문과 가대기 같은 중요한 농구에 붙이여 새해의 길복을 기원한다.

평소에 밖에 걸어놓았거나 마당에 놔두었던 키, 바오래기, 호미, 낫, 도끼, 괭이, 광주리, 가대기 같은 일체 생산도구를 이날로 몽땅 창고안에 넣어 눈에 보이지 않게 한다. 만약 보름날에 마당에 널려있는 키를 보면 그해에 보습을 깨기 쉽고 바오래기를 보면 뱀을 많이 보게 되고 키나 광주리를 보면 범을 만나기 쉽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13일날에 키를 마당에 엎어놨다가 14일날에 산에 올라가 솔방울을 따다 광주리로 덮어놓으며 15일 아침에 광주리를 젖힌다. 그러면 그해에 병아리가 잘된다 한다.

일년농사의 흉풍은 주로 일기와 관련된다. 하여 농부들은 누구나 다 이날에 새해의 일기를 점쳐본다. 수수대를 한토막 끊어서 절반 쪼개고 그중 하나에 메주콩알 12개를 일선으로 박아넣고 쪼갠 수수대를 다시 합쳐서 실로 꽁꽁 동여맨다. 한쪽끝을 1월로 표시해놓고 수수대를 물독에 넣었다가 음력 2월 1일날에 꺼내여 콩알이 퍼진 정황을 보고 가물과 장마를 판단한다. 어느달에 해당되는 콩알이 되게 퍼졌으면 그달에 비가 많이 오고 제대로 퍼지지 않았으면 가물겠다고 한다. 이것을 "달불"이라고 한다.

길림성 집안시와 료녕성의 환인현, 관전현 등 지방에 살고있는 평안도사람들은 정월 14일에 명절을 쇠고 15일에는 일을 하는 풍속을 갖고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평안도사람들은 본래 조선 남부 혹은 중부 지역으로부터 평안도지방으로 이주하여 정배살이를 하면서 천민(賤民)으로 되였다고 한다. 당시의 관청과 량반들은 정배살이를 하는 천민들과 같은날에 명절을 쇨수 없다 하여 그들을 14일날에 명절을 쇠게 하고 15일날에는 밥을 아홉그릇 먹고 나무를 아홉짐(한짐에 넉단)을 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풍속으로 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