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래원:중앙인민방송국      2016-01-04 13:39:00

한식은 음력 2월말에 들기도 하고 3월로 넘어가기도 한다.

동지로부터 105일이 되는 날이 한식날이다.

한식은 조선왕조시기 정초(설), 수리날(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에 속하였다. 한식날은 조상의 무덤을 돌보고 제사를 지내는 성묘(省墓)의 날이다. 한식날에 성묘하는 풍속은 고대중국의 풍속을 조선반도의 신라시기에 받아들인것이다. 20세기 60년대 이전까지 중국 조선족은 한국, 조선과 마찬가지로 한식날에 성묘를 하였다. 후에 한족들의 영향을 받아 청명에 성묘를 하게 되였다.

한식의 유래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몇가지 설이 있다.

① 개자추(介子推)를 기념하기 위하여 생긴 명절이라고 한다.

개자추는 중국 춘추시대의 진(晉)나라 사람인데 진문공 중이(晉文公重耳)가 아직 왕위에 오르기전에 한무리 간신들이 중이를 모해하고 중이의 동생 신생(申生)을 왕자리에 올려놓으려고 꿍꿍이를 꾸미고있었다. 개자추가 이 기미를 알아채고 중이를 보호하여 외국으로 탈출하였다. 외국에서 19년동안 망명생활을 하는 과정에 개자추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그를 모시였다. 한번은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고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있을 때 개자추는 칼로 자기 다리의 살점을 베내여 불에 구워 중이에게 대접하였다. 후에 중이가 진나라에 돌아와 왕자리에 앉은후 그를 따라 망명살이를 하던 기타 충신들에게는 모두 관직을 주었지만 왜서 그랬던지 개자추에게는 아무런 벼슬도 주지 않았다. 후에 일부 대신들이 그 처사가 개자추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억울하다고 진문공에게 아뢰자 진문공이 자기의 불찰을 크게 뉘우치고 몇번이나 사람을 파견하여 개자추를 모셔오도록 하였으나 개자추는 종시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진문공이 몸소 행차하여 개자추네 집을 찾아가보니 문에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알아보니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綿山, 지금의 산서성 개휴(介休) 동남쪽]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한다는것이였다. 진문공은 개자추를 산속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시켜 산에다 불을 지르게 하였다. 산의 나무가 다 탄 뒤 산에 올라가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시꺼멓게 그슬린 한그루의 큰 버드나무밑에서 개자추와 그의 어머니의 시체를 발견하였는데 개자추는 그의 어머니앞에 무릎을 꿇은채로 불에 타 죽은것이였다. 진문공은 개자추의 시체앞에서 무릎을 꿇고 한동안 목놓아 통곡하다가 그들 모자의 시체를 안장하고 산에서 내려왔다. 진문공은 개자추를 기념하기 위하여 전국에 지령을 내려 개자추를 안장하던 날을 한식절로 정하고 매년마다 이날에는 누구나 부엌에 불을 때지 않고 미리 마련하여둔 찬 음식을 먹게 하였다.

이듬해 개자추의 기일에 진문공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개자추의 제사를 지내려고 면산으로 가서 먼저 하루동안 한식을 하고 이튿날에 묘소로 올라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개자추의 무덤곁에 있는 불에 그슬어 까맣게 되였던 그 버드나무가 다시 되살아나서 푸른 가지가 춘풍에 춤을 추듯 흐느적거렸다. 진문공은 마치 개자추를 다시 만난듯 자못 기뻐하며 버드나무가지를 하나 끊어 고리를 만들어 머리에 썼다. 그러자 신하들도 저마다 버드나무가지의 초리를 한토막씩 끊어서 머리에 꽂았다. 그리고는 군신(君臣)이 함께 정중하게 개자추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날 진문공은 되살아난 그 버드나무를 청명류(淸明柳)라 이름짓고 이날을 청명절로 정하였다.

② 개자추가 불에 타죽은 날자는 한식날이 아니라 음력 5월 5일이며 주조(周朝)시기에 동지로부터 105일이 되는 날에 불을 못 때게 하는 금화령(禁火令)이 있었는데 그것이 한식의 유래라고 한다.

③ 조선반도에서 고대시기에 종교적인 행사로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일정한 기간동안 낡은 불(旧火)을 일체 단속하던 례속에서 유래한것이라고 한다.

④ 조선왕조시기 세종왕때 생긴것이라 한다. 그때 병조(兵曹)에서 세종왕에게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하였다. 동지날부터 105일이 되면 매양 광풍이 불어치므로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이날에 불을 못때게 하여 “랭연절(冷煙節)” 혹은 “금연절(禁煙節)”이라 하였는데 조선에서도 이런 풍속을 모방하여 청명전 3일까지는 불을 때서 작식을 하게 하고 이날엔 밤낮 하루동안 서울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모두 불을 때는것을 엄금하고 찬 음식을 먹도록 하자고 하였다. 세종왕은 이 건의에 찬동하였다.

우에서 언급한 몇가지 설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것은 첫번째 설이다. 한식날에 흔히 비가 내리는데 그것은 하느님도 개자추의 운명을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는것이라고 한다. 비가 내리는 한식날을 “물한식”이라 한다. 물한식이 드는 해엔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