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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힘의 상징

2019-10-05 17:40:00     责编:최월단     来源:央广网

제5부 간략판 영상

새 중국 창건초기, 세계는 이미 핵무기의 시대에 들어섰다. 당시 서방국가의 핵무기 위협은 먹구름마냥 중국인들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새 중국 탄생전인 1949년 3월부터 주은래 총리는 핵물리학자 전삼강의 건의를 듣고 프랑스에서 핵 과학연구 설비와 도서자료들을 구입하도록 했다.

1955년 유명 과학자 전학삼은 주은래의 도움하에 미국으로부터 귀국한 후 곧바로 미사일 발전 구상을 제기했다.

1956년 나라에서는 과학기술 발전의 첫 전망계획을 제정하고 원자력의 평화적 리용을 12가지 중점 과업중 하나로 배치했다. 한편 미사일과 원자탄 연구제조라는 두개 더 큰 항목을 배치했다. 

같은 해 4월, 모택동은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보다 더 강하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도 더 강해야 합니다. 더 많은 비행기, 대포가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원자탄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세계에서 우리가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자면 원자탄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중국은 “핵탄과 미사일, 인공지구위성” 연구제조 프로젝트 계획을 세웠다. 핵탄에는 원자탄과 수소탄이 포함되였고 관련 연구제조사업은 단계별로 전개되였다.

1956년10월, 국방부 제5연구원 즉 미사일연구원이 설립되고 전학삼이 원장직을 맡았다. 잇따라 핵무기 연구원도 설립되고 여러 첨단 핵물리학자들이 연구원에 들어왔다.

새 중국 연구제조 실험기지와 공업기업 건설이라는 방대한 공정도 전면 가동되였다.

1958년4월, 감숙 주천에서 미사일 발사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하고 핵무기 실험기지 터는 최종 신강 롭누르로 선정하였다.

우리 나라 미사일과 원자탄 연구제조 초기에 쏘련의 기술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1959년6월 중국과 쏘련간의 모순이 격화되면서 쏘련공산당은 돌연 중공중앙에 편지를 보내 중국에 원자탄 견본의 관련 기술자료 등을 제공하는 것을 중단한다고 선포했다.

쏘련 전문가들이 철수한 83번째 날, 중국인은 스스로 “체면폭탄(争气弹)”이라고 불리는 동풍1호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제조해냈고 발사와 목표물 명중에 성공하였다.

이는 중국인민해방군 장비력사상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1964년10월16일 오후 3시, 중국의 첫번째 원자탄이 굉음과 함께 성공적인 폭발을 알렸고 1967년6월17일 오전 8시20분 중국 최초의 수소탄이 성공적으로 폭발되였다.

첫 원자탄

첫 수소탄

1966년 10월 27일 9시 동풍2호 핵미사일이 하늘로 날아올라 9분14초후 핵탄두는 발사장 8백94킬로메터 떨어진 롭누르 목표지역 상공의 5백69메터 높이에서 폭발했다.

1970년4월24일 저녁 9시 35분, 동방홍1호 인공위성이 장정1호 운반로케트에 탑재되여 우주로 향했다. 

이로써 중국은 쏘련,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5번째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국가의 반렬에 올랐다.

2019년 3월까지 중국 우주항공사업에서는 8가지 장정계렬 운반로케트로 3백차의 우주 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지면관측, 통신방송, 네비게이션, 과학기술 실험 등 4대 계렬의 2백여개 인공위성이 지금 우주에서 운행되고 있다.

이는 당중앙의 통일령도하에 전국 여러 업종, 관계부문의 조률과 협력으로 극복한 과업으로서 힘을 모아 큰일을 해내는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과시하였다.

“원자탄과 수소탄 인공지구위성”의 성공적인 실험은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격상시켰고 나라 안전과 세계평화를 수호하였다. 이는 나라의 힘의 상징이자 민족부흥과 발달의 징표이기도 하다.

무수한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공화국을 지켜 울려준 고고성은 영원히 공화국 사책에 깊이 기록되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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