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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젊은이들의 것이다

2019-10-04 17:36:00     责编:최월단     来源:央广网

 

제4부 간략판 영상

대규모의 경제건설을 일으켜 중국을 번영하고 부강하고 현대화한 국가로 건설하는것은 몇세대 중화 아들딸들이 끊임없이 추구해오던 꿈이였다. 

감숙 옥문에서 석유 채굴

새 중국 창건초기 건설자들은 대내로 가난과 전쟁의 페허속에서 발전을 도모해야 했고 대외로는 제국주의의 봉쇄에 직면해있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친 중국인들은 곤난앞에 결코 굴하지 않았다. 자주적이고 독립된 공업체계를 건립하는 것은 새 중국 건설자들의 웅대한 포부였다.

1953년 우리 나라는 첫 5개년 전망계획을 집행하기 시작했고 전국 인민들을 총동원해 공업화의 실현을 위해 분발노력했다. 

첫 5개년 전망계획은 쏘련의 도움을 받아 설계 건설한 156개 건설항목을 징표로 한다. 중공업을 중점으로 발전시켰는데 여기에는 에너지, 원자재, 기계제조 등 기초공업항목이 포함됐다. 

쏘련을 처음 방문한 모택동은 쓰딸린 자동차공장을 참관하였다. 그때 공장의 현장에서 완제품 자동차들이 하나하나 출하되는 생산라인을 보던 모택동은 “우리도 이러한 큰 공장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1953년 7월 15일 새 중국의 첫 자동차 공업기지인 장춘 제1자동차 제조공장 정초식이 황량한 장춘시 교외에서 진행됐다. 

공화국의 첫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기술일군들은 2335개의 자동차 부품을 자체로 생산해냈다. 그리고 수십만장의 미숙한 도표를 만들었으며 도표작성에 동원된 인원만도 백여명에 달했다. 

당시 자동차생산에 참가한 한 로동자는, 그해 첫 자동차가 고고성을 울릴때 자기가 낳은 자식을 보는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동차모형을 책임진 로동자는 매일 공장에서 주숙하면서 첫 자동차생산에 진력했었다. 

1956년 7월 13일 첫 해방표 자동차가 성공적으로 시험 제조되였다. 

중국의 첫 국산 승용차인 동풍표 자가용은 장춘 제1자동차공장에서 생산한것이다. 

1958년 5월 21일 이른 아침, 붉은 색상의 동풍표 승용차가 북경 중남해에 들어서서 푸른 잔디밭을 두바퀴 선회한 후 천천히 멈춰섰다. 

차문이 열리는 순간 모택동이 나타나면서 “우리도 승용차를 만들게 됐다”고 기뻐했다. 

당시 산간, 평원, 고비사막을 불문하고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많은 항목이 착공됐거나 준공됐다. 

새 중국 건설의 웅대한 포부는 단순히 현대화 기초공업건설분야에서만 나타난것이 아니라 험산준령의 산간지대와 드넓은 고원지대에서도 실천되고 있었다. 

1950년초 해방군은 지시에 따라 서장으로 진군했다. 

모택동은 서장진군 부대에 “한면으로 진군하면서 한면으로 도로를 보수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중국인민해방군 장병 11만명과 공정기술일군 그리고 현지군중들은 망치, 끌, 삽, 괭이 등 원시적 도구를 들고 도로 보수작업을 벌였다. 

산턱에 매달려 작업하는 과정에 위험한 상황이 속출했지만 일군들은 결코 후퇴하지 않았으며 한걸음씩 라싸로 나아갔다.  

아안과 라싸구간의 통로를 개통하기 위해 근 3천여명의 장병들이 소중한 생명을 고원에 바쳤다. 1 킬로메터당 장병 한명이 쓰러지는 상황이였다. 당시 이들의 평균 년령은 23세에 지나지 않았다. 

급성장하는 조국은 공업화 건설에 관한 지식이 필요했고 청년들의 지혜가 필요했다. 

1957년 재차 쏘련을 방문한 모택동은 모스크바에서 중국류학생들을 접견했다. 모택동은, 세계는 젊은이들의 것이자 우리 모두의 것이지만 결국은 젊은이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모택동은, 생기발랄한 청년들은 바로 아침의 태양과도 같은 래일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령수의 절절한 기대는 청춘의 피로 들끓는 중국청년들을 크게 격려했다. 젊은 세대들은 한창 건장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기필코 웅위한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건설자로, 확고한 중견 력량으로 성장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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