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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에서 전진] 새 중국의 요람(단독영상), 여러 장면 최초공개!

2019-10-01 17:42:00     责编:최월단     来源:央广网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을 성대히 경축하기 위해 중앙라지오텔레비죤방송총국은 24부 대형 문헌 다큐 “대로에서 전진”을 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제1부 “새 중국의 탄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제1부 “새 중국의 탄생” 간략판 영상

태항산 기슭 호타하 강변에 위치한 서백파는 크게 눈에 띄이지 않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바로 이곳에서 모택동과 그의 전우들은 중국전쟁사에서 전례가 없을뿐더러 세계 전쟁사에서도 보기 드문 대 결전을 지휘했던 것이다.

해방군은 파죽지세로 전진하면서 하나 또 하나의 도시와 농촌을 해방하였다. 1949년, “해방구의 하늘”이라는 노래는 해방군의 포탄보다도 더 신속히 전파되였다. 

1년전의 4월 30일, 중공중앙에서는 5.1절 기념 구호를 제기하면서 여러 민주당파와 여러 인민단체 그리고 사회의 많은 개명인사들을 소집해 속히 정치협상회의를 열고 인민대표대회의 소집 사항을 론의하고 민주주의 련합정부를 성립할것을 제기했다. 

5.1절 구호가 제정된 후 중공중앙의 배정에 따라 민주 인사들이 다투어 호응해 나섰다. 그들은 비밀리에 북상해 해방구에 들어가 새 중국 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에 참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민정협 제1차 전원회의에 참가함으로써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제도의 확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1949년 6월 15일, 새 정협 준비회의 제1차 전원회의가 중남해 근정전에서 성대히 개막했다. 모택동 동지가 개막사를 했다. 

모택동 동지는, 참신하고 강성하며 명실상부한 중화인민민주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화인민민주공화국 만세! 민주련합정부 만세! 전국인민 대단결 만세!”

이때 모택동 동지가 말한 새 중국의 국명은 여전히 “중화인민민주공화국”이였다. 

이어 정협 준비회의에서 좋은 의견을 내놓았다. 

“민주”와 “공화”는 같은 함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모두 민주라는 뜻을 구현하고 있다. 국명으로 사용하자면 그래도 “공화”라는 두자가 비교적 좋다. 

대회의 론의를 거쳐 대표들은 국명을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일치하게 동의하였다. 이로써 새 중국의 국명이 탄생하게 되였던 것이다. 

1949년 9월 21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기 전원회의가 중남해 회인당에서 성대히 개막했다. 군악소리와 례포소리 그리고 뜨거운 박수소리는 5분간 지속되였다. 

이어 모택동이 개막사를 했다. 

“여러 대표 선생들, 우리는 하나의 똑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사업은 이제 곧 인류 력사에 새겨 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 총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이때로부터 일떠섰음을 설명해줍니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림시 헌법의 성격을 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조직법”,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 조직법”을 채택했다. 

회의에서는 또 북평을 수도로 정하고 북평을 북경으로 개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서력을 기원으로 년대를 기록하고 국기를 오성붉은기로 하기로 했다. 한편 “의용군행진곡”을 국가로 하기로 했다. 이 노래는 1982년에 공식 국가로 확정되였고 2004년에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 기록되였다. 

회의에서는 중앙인민정부 위원회를 선출했다. 모택동이 주석을 담임하고 주덕, 류소기, 송경령, 리제심, 장란, 고강을 부주석으로 선출했다. 이어서 정무원을 성립했다. 주은래가 정무원 총리에 취임했다. 

온 중국 대지에 중심이 잡히고 만민이 하나로 뭉쳤다. 

 

1949년 10월 1일 오후 3시, 중화인민공화국 개국대전이 천안문 광장에서 성대히 진행되였다. 

천안문 성루에서 모택동은 중화인민공화국 창립을 장엄히 선포하였다. 

“동포들,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되였습니다.”

이어 모택동이 천안문 성루에서 단추를 눌러 오성붉은기를 게양했다.

검열대에서 내려 온 주덕 총사령은 승용차에 앉아 다리 남쪽으로 갔다. 

열병식이 시작되였다. 

승용차를 탄 주덕 총사령이 인민해방군 3군 부대를 검열했다.  

“8.1”군기의 인솔하에 만 6천 4백명 장병들로 구성된 열병대오가 동으로부터 서부로 일치한 보폭으로 나란히 전진했다. 

열병식이 있은후 성대한 군중 대행진이 있었다. 인민군중들은 거대한 기쁨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다. 

새 중국의 탄생은 중국력사발전의 새 기원을 열어놓았다. 새 중국의 탄생은 낡은 중국의 반식민지 반봉건사회의 력사를 철저히 종말지었고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낡은 중국의 국면을 종말지었으며 중국의 수천년 봉건전제주의 정치로부터 인민민주의 정치에로의 위대한 도약을 실현했다. 인민은 국가와 사회,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였다. 중국사람들은 이로써 일떠서게 되였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행정도 새 단계에 진입하게 되였다. 새 중국의 탄생은 세계의 정치구도를 바꾸어 놓았고 인류 진보사업의 발전을 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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