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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교정에서 만난 멋진 사람-중산대학 황철강 교수

2019-09-26 17:30:00     责编:최월단     来源:央广网

 

지난 8월,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중산대학 교정에서 우리는 화학 분야 전문가 황철강 교수와 만났다. 2016년 <연해지역 조선족인물 탐방>시리즈 취재에 이어 3년만에 두번째로 되는 본 방송국 기자와의 만남이였다. 

“지난 3년간 저희 연구팀은 환경오염 대응과 약물배출 연구를 주로 진행해왔습니다.”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 중산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4년간, 황철강 교수는 그 사이 주요한 연구내용은 한국에서 접한 분야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중국에 와서 어떻게 더 변화시킬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에 정진했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찾은 과제가 바로 물오염과 대기오 연구 프로젝트이다. 물오염에 대응하려면 물 속에 있는 오염물질을 흡착 제거하는 필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필터에 부착된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 자칫하면 재오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오염물을 흡착했다 다시 제거하려면 선택적으로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나노 구조체를 개발해야 한다. 황철강 교수는 연구 끝에 소금물 또는 산성 조건하에서 오염물을 다시 배출할 수 있는 나노 구조체 개발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흡착하고 배출하는 시간까지 단축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했다.

“화학에는 키랄 분자(手性分子)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의 두 손과 마찬가지로 서로 대칭되면서 겹쳐지지 않는 경상체(镜像体)를 가진 분자입니다. 이런 산과 염기분자의 키랄 성질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흡착속도를 잘 조절하면 흡착효과가 더욱 뛰여납니다.”

황철강 교수는 해당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2018년에 임팩트 팩터(影响因子)가 22에 달하는 독일의 유명 화학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론문을 발표했다. 

 대기오염 연구과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기오염은 주로 공업상 화학반응이 많기에 황철강 교수는 친환경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힘썼다고 소개했다. 금속 촉매를 볼 때 작은 촉매일수록 촉매반응이 잘 되는 반면 불안정한 문제가 존재한다고 한다. 황철강 교수는, 촉매와 접착물 사이에 상분리 변화가 생기는 데 일단 반응이 시작되면 그것을 조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여 촉매 표면에 안정성 물질을 흡착하여 촉매가 서로 부딪치는 걸 방지할 수 있는 나노소재를 개발한 것이다. 이 나노소재를 용매 속에 분리시키게 되면 분리된 나노소재가 촉매반응을 정지시킬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나노소재 분리를 통하여 진행중의 촉매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반응이 끝난후 분리시키게 되면 생성물은 빠져나올 수 있고 또 분리된 나노소재를 다시 붙이면 새로운 촉매반응제가 될 수 있다. 황철강 교수는 그렇게 될 경우 촉매의 불안정성을 해결하고 촉매를 더 잘 리용하여 대기오염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론문은 2017년 화학 분야 탑저널인 독일 <응용 화학지>에 실렸다. 

이외에도 황철강 교수는 체내에 남아있는 약물을 운반체를 통해 배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론문을 <셀(cell)>자매지에 발표하였다. 이처럼 그는 한발작 한발작 실속있게 자신의 연구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중산대학에 와서 첫 1년을 실험실 세팅에 주로 시간을 할애한외에 황철강 교수는 매년 적어도 한편의 SCI 1구(1区) 론문을 발표하는 꾸준함을 견지했다. 

지금껏 <사이언스>,<네이처> 등 세계 최고 학술지에 35편 정도의 SCI 론문(최고 임펙트 팩터 40)을 발표한 황철강 교수는 사실 이제 갓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젊은 과학 연구자이다. 

금융 분야에 종사하던 부모님들이 모두 리과 출신이였던 원인으로 황철강 교수는 어릴 적부터 수학에 남다른 흥취를 갖고 있었다. 

고중 때까지만 하여도 그가 가장 선호하는 과목은 수학이였다고 한다. 그러다 화학에 애착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황철강 교수는, 연길시 2중에서 공부할 당시 화학교원이였던 김송화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고 회억했다. 

“1992년도에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연길시2중에서 교편을 잡게 된 김송화 선생님은 강의도 멋지게 하였고 또 실험도 차근차근 열심히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분의 영향으로 제가 화학에 입문하게 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후에 제가 연변대학에 입학하다보니 김송화 선생님과는 대학교 선후배로 된 셈이였습니다.”

1998년, 연길시 2중에서 대학입시에 참가한 황철강 교수는 그 전해 연변대학 합격점수보다 100점 정도 높은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대학 화학학부에 입학하게 되였다. 전공을 선택할 때 경제나 무역쪽을 념두에 두었었지만 연변대학에 입학하면서 화학전공으로 바꾸게 되였다. 

대학 초기에 황교수는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은 아니였다. 뽈도 차고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술도 한잔씩 기울이며 대학생활을 즐겼다. 역시나 전공성적은 우수했지만 정치와 같은 기초적인 리론학습은 “60점 만세”를 부르던 시절이였다. 

대학교 3학년에 진학할 무렵이였다. 한국으로 류학을 떠나는 한 선배와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중 황철강 교수는 자신도 착실하게 인생계획을 짜야 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되였다. 바로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이였다. 

2002년, 그는 연구생시험에 합격되여 연변대학 유기화학전공에서 3년간 연구생공부를 진행했다. 지도교수 윤병주 선생님의 지도 아래 황철강 교수는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갔다. 학부생 때부터 다른 학생들보다 손재주가 뛰여난 그였기에 남들이 하루 동안 진행하는 실험을 그는 반나절이면 성공시킬 수 있었다. 연구생을 졸업하면서 그는 동기들중 유일하게 SCI론문을 발표한 학생으로 되였다. 

“연변대학에서의 7년은 저의 전면 발전을 이끌어준 소중한 시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

서울대 이명수 교수와 함께

연구생 과정을 마친후 황철강 교수는 한국 연세대에 추천되여 박사 과정을 이수하게 되였다. 이곳에서 그는 인생행보에서 큰 영향을 준 또 한분의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연세대학교 이명수 교수였다. 

“윤병주 교수님이 실험방법과 같은 방법론을 가르쳐주었다면 이명수 교수님은 사유방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연구의 길에서 이 교수님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류학생활은 기대만큼 순탄치 않았다. 대부분 조선족 류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황철강 교수도 영어 장벽에 가로막히게 되였다. 그는 식사시간외에는 거의 휴식시간이 없을 정도로 실험실에 몸을 맡기고 연구에 정진했다. 론문을 손에 잡은 채로 잠들기도 일쑤였다. 그렇게 피타는 노력을 경주한 결과 그는 점차 스스로 진행한 실험을 토대로 론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물론 주변 동료들의 인정을 점차 받게 된 것이다. 연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후 황철강 교수는 서울대로 전근한 지도교수의 지도 아래 서울대학 화학학과에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가족사진

7년간의 류학 시절을 돌아보면서 황철강 교수는 안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한국에서 류학할 때의 대부분 시간을 안해는 남편을 위한 선택만을 고집했다. 당시 인천에 위치한 인하대학교에서 류학중이던 안해는 매일 서울에서 왕복 3시간씩 허비하며 통학하군 했다. 

“서울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집도 인천으로 이사하게 되였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 집사람의 로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습니다.”

 서울대에서도 그는 마음의 탕개를 늦추지 않았다. 접이식 침대를 마련하여 매주 서너번씩 실험실에서 쪽잠을 자며 연구에 심혈을 몰부었다. 힘든 시간이였지만 그만큼 풍성한 성과를 안겨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황철강 교수는 <사이언스>, <네이처 커뮤니게이션즈>(Nat. Commun) 등 국제 유명 학술지에 잇따라 이름을 올렸다. 특히 탑저널인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론문은 서울대 사상 1990년대 이래 20여년만에 발표한 첫 론문이기도 했다. 

 황철강 교수는, 박사공부를 하면서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키웠던 것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실험실 일각

2012년 황철강 교수는 7년간의 류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할빈공업대학에서 2년 남짓이 교편을 잡다가 그는 2015년 7월, 중산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4년 넘게 중산대학에서 교수, 박사생 지도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 그는 박사연구생 5명, 석사연구생 3명을 비롯하여 총 8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과학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학생들도 나젊은 황철강 교수의 지도 아래 잇따라 좋은 성과를 내놓고 있다. 연구실을 운영한지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미 박사생 한명과 석사생 한명이 국가장학금을 수여받았다. 지난 6월에 졸업한 석사연구생은 중산대학 우수 졸업론문의 영예를 안아 황철강 교수도 함께 우수 지도교수의 상장을 수여받았다. 

“오랜 연구 끝에 론문이 발표될 때, 또 학생들이 성과를 낼 때 저는 가장 큰 보람을 느끼군 합니다.”

매일 출근하여 8명 학생들과 일일이 면담하고 지도를 하다보면 어느덧 퇴근시간이 가까와 오군 한다. 하지만 황철강 교수는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한번도 없다며 학생들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취재 과정에 만난 그의 제자들은 황철강 교수가 학업에서는 매우 엄한 스승이지만 생활면에서는 푸근한 옆집 아저씨와 같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무산산(巫珊珊): 황교수님은 과학연구에서 매우 엄격하고 빈틈없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학생들에 대한 요구도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생활 면에서는 매우 상냥한 분이여서 우리들과 함께 회식도 자주 조직하군 합니다. 참고로 교수님이 사주신 한식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황리평(黄利平): 저는 2016년부터 3년간 황교수님과 함께 해왔습니다. 제가 연구팀에 금방 왔을 때 저의 짐이 많다는 소식을 들은 황교수님은 직접 차를 운전하여 짐을 실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교수님의 지도 아래에서 제가 부단히 진보할 수 있어 너무나도 행운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황철강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이들의 창조력을 키워주기 위해 힘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학계의 흐름을 제때에 파악하기 위해 그는 부단히 새로운 론문을 접하고 또 방학 때면 각지의 학술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제자들과 함께

“과학연구에는 종점이 없습니다. 동종 분야의 연구자들보다 먼저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분들의 연구성과에 어떤 부족점이 있는지를 모색하여 자신에게 적합한 연구과제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황철강 교수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접하고 참고할 수는 있지만 맹목적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학계의 인정을 받는 풍성한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황철강 교수는 나노 분야 연구에 이어 옹스트롬에 대한 연구를 새로 진행중에 있다. 

황철강 교수는 매년 한번 정도씩 고향을 찾아 모교인 연변대학을 방문하군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연구보고도 하고 선배들과 만나 소통과 교류를 진행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군 한다. 

취재를 마치면서 황철강 교수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조선족 기업가들과 손잡고 연구성과를 산업화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연구성과의 혜택을 받을수 있길 희망했다.

 

기자들과 기념촬영

어릴 적 고중 교원이 꿈이였던 그는 어느덧 명문대의 어엿한 교수로 성장했다. 앞으로 황철강 교수가 우수한 과학 연구자로서 부단히 자신의 립지를 다져 학계를 놀래우는, 더 큰 성과를 내놓길 기대해본다. 

글 중앙인민방송국 박민걸

사진 중앙인민방송국 연변편집부 리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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