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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후 녀성, 향촌 치부의 길에서 앞장서다

2021-04-18 14:10:00     责编:김룡     来源:연변일보
 

농가락 고객들의 음식은 김성화씨가 직접 만든다.


1980년대생인 김성화는 룡정시 덕신향 룡암촌 태생의 조선족이다. 2007년, 로무수출의 바람은 여전히 거셌고 그녀는 홀로 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0년, 룡정시로 돌아온 김성화는 복권판매업에 뛰여들었다. 성심성의껏 경영한 덕분에 매출은 괜찮았으나 갓 태여난 아이를 돌보기 위해 2012년말에 복권 판매사업을 접고 룡암촌으로 돌아왔다. 젊고 활력으로 차넘친 김성화는 마을의 각종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누군가가 곤난에 처해있으면 늘 팔을 걷고 나섰다.

2013년 룡암촌의 기바꿈선거에서 김성화는 촌부련회 주석에 당선됐다. 빈곤해탈 난관공략전기간 부련회측에서는 독거로인, 빈곤부녀, 마을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 등 빈곤가정에 대한 방조부축 력도를 높였다. 매일 가족처럼 빈곤가정을 방문해온 김성화는 그들의 어려움 해소에 알심을 들였다.

빈곤호인 박수남네 안해는 반신불수로 로력을 잃은 상태였다. 2017년 여름, 이들 부부의 딸은 620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중점대학에 붙게 됐다. 딸이 대견한 한편 박수남은 학비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 상황을 접한 김성화는 즉시 촌민위원회에 보고하고 정부의 관련 부문과 련계를 취해 보조금을 적극 쟁취했다. 그 결과 8000원의 조학금을 받게 된 박수남의 딸은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 2015년, 우연히 위챗 모멘트에서 지인이 올린 화장품 광고를 보게 된 김성화는 자신도 위챗을 통해 뭔가를 판매해보는 것이 어떨가는 생각이 들었다. 시중에 류통되는 배추김치가 대부분 어릴 적의 맛을 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터라 움김치를 판매해보고 싶었단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함께 담근 배추김치 100여포기로 시작을 뗐다. 모멘트에 오르자마자 지인들 사이에서 열띤 인기를 끌게 된 움김치는 단골고객도 대거 확보했다. 입소문을 타고 멀리는 북경시, 섬서성, 강서성에까지 판매됐다. 움김치외 적지 않은 고객들이 감자, 옥수수, 마늘, 토닭, 토닭알 등 농산물도 문의해왔다. 이러한 ‘성황’에 김성화는 싱글벙글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촌민들을 도와 농산물 판매에 열을 올렸다.

2017년, 덕신향에서는 전 향의 부녀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치부법 강습반을 조직했다. 이 활동을 통해 김성화는 룡암촌의 실제정황에 립각해 농가락을 운영하려는 생각이 움텄다. 수려한 자연풍경을 자랑하는 룡암촌은 생태관광업을 발전시키기에 적합한 마을이였다.

가족들의 지지하에 김성화는 150만원을 투입해 면적이 1만평방메터에 달하는 ‘전원리산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차장, 식당, 민박, 야외 구이장소, 터밭 등 시설들이 갖춰진 산장은 400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으며 촌의 수입 증가에 한몫했다. 2019년, 산장은 15만여원의 수입을 올렸으며 30여가구 촌민들의 농산물 판매경로를 넓혀줬다.

“촌의 로인들이 이따금 편찮을 때도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녀분들은 로인들에게 도시에 와서 같이 생활하자고 하지만 한평생을 촌에서 살아온 로인들은 정든 이 땅을 떠나려 하지 않죠. 농가락사업이 점점 더 잘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촌의 독거로인들에게 따뜻한 양로장소도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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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후 녀성, 향촌 치부의 길에서 앞장서다

1980년대생인 김성화는 룡정시 덕신향 룡암촌 태생의 조선족이다. 2007년, 로무수출의 바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