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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약속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2020-10-18 17:05:00     责编:최월단     来源:央广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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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Haiyue  · 방송 구서림

오늘 나는 위챗 모멘트에서 신선생님이 올리신 아이들과의 일상 사진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신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기때문이다.

신선생님은 전에 나랑 한 유치원에서 출근할 때 유사직업에 충실하셨던 선생님들 중 한 분이였다. 춤에 소질이 뛰여난 신선생님은 아이들한테 춤을 배워 줄 때도 열정이 넘쳤을 뿐만 아니라 체육시간에도 어린이들과 뛰여 노는 모습 또한 천진란만한 아이들이랑 다를바 없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것이였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직을 알아 보던 중 월급이 너무 낮아 나는 부득이하게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연길에 세집도 맡아야 했고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으니 월급이 제일 낮은 유치원 교사직은 한 여름날의 꿈이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직업을 선택했고 몇년이 지나 돈도 좀 모았겠다 취미로 해보고 싶은 일도 해 보았지만 한 해 또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꿈에 대해 고민을 했다. 내가 갖고 싶었던 직업이 무엇일가? 내가 유치원 교사 자격은 있을가? 아이들한테 인기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는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 그때 마침 지금의 남편을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나는 남편한테 선생님 직업을 가진 친구가 있다고 자랑을 했었다. 직업고중에서 한어과를 가르치는 친구도 있고 연변일중에서 력사를 가르치는 친구도 있다고 자랑을 했다. 며칠후 남편은 나한테 유치원에 출근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또 "유치원 10년 경력을 쌓으면 내가 유치원을 차려줄게"하는 것이였다. 그냥 롱담으로 해본 말인 줄 알면서 나는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 보았다.

나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집 부근에 위치한 유치원에서 2개월 동안 실습부터 시작하게 되였던 것이다. 경력이 없는 나는 2개월의 실습 동안은 월급도 없다는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배웠다. 실습이 끝난 다음 날 나는 유치원에 물품 찾으러 갔다. 마침 수업 중이였다. 나는 먼저 중반에 들어가서 물건을 챙겨서 나오면서 아이들한테 인사를 했다. "친구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잘 자라세요." 내가 돌봤던 중반 어린이들한테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오려고 했다. 그때 중반에서 키가 제일 크고 장난이 제일 심한 남자 어린이가 달려와서는 나의 다리를 꽉 붙잡는 것이였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흑흑흑 ......"그 어린이는 울고 있었다. 8년전 일이라 성은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도 그 아이의 이름은 생각난다. 미운 7살이 아니라 미운 5살 반급에 다니는 이 태호라는 아이는  수업 시간이면 한시간이라도 얌전히 앉아서 수업에 참가 할 때가 없었다. 수업 시간이든 휴식 시간이든 시간을 불문하고 휴지를 갈기갈기 찢어 꽃가루를 뿌린다든가 책장의 책을 마구 찢어 놓기도 했으며 연필의 뾰족한 심으로 친구를 찌르기도 하였다. 다른 친구가 열심히 칠하고 있는 그림에도 락서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때 나는 이 어린이를 "감시"하느라 여간 골머리를 썩이지 않았던가. 그러던 태호가 나의 다리를 꽉 잡고 울면서 다리를 놔 줄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던 중반 20여명 아이들도 달려와 나를 에워쌌다. 다리를 끌어 안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허리를 껴안은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선생님, 가지 마세요!" 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면서 목이 메였다.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원장 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나 보오.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가끔 유치원에 놀러 오오." 나는 말 대신 머리를 끄덕이였다. 나의 다리는 몇명 아이들한테 "잡혀"있었다. 수업 중이라 이 상황을 빨리 종료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이들한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 지금 수업중이니 당장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조용히 앉으세요." 나의 말 한마디에 아이들이 모두 자리로 돌아가 앉는 것이였다.  그동안 태호를 비롯해서 많은 아이들이 나의 말을 아예 듣지도 않았으며 매일 나를 얼마나 지치게 했던가? 전에 좀 내 말을 잘 들어주지. 그랬더라면 내가 유치원 교사 직업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았을텐데......나는 유치원 교사 직업이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2개월 동안의 유치원 실습을 끝으로 나의 꿈을 접으려고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자꾸 개구쟁이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난 또 다시 용기를 냈다. 유치원에 출근하려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다. 내가 실습교사가 아닌 유치원 교사가 된다면 아이들한테 엄격하면서도 자애롭고 다정하고 엄마같은 선생님이 되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 모 유치원의 김원장선생님께서 나한테 유치원에 출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렇게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여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나의 직업에 충실했다. 유치원에 출근하는 동안에 나를 "엄마"라고 불렀던 아이가 두 명이나 있었다. 태여난지 얼마 안된 아이를 두고 외국으로 돈 벌러 가서 엄마 얼굴조차 모르는 아이였다. 조금씩 진보해가는 아이들이 너무 신기했고 티없이 해맑은 아이들이랑 률동 추고 유희 놀고 공부하면서 보내는 매일매일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올리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기 마련이다. 매일 해피할 것만 같던 나의 일상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내가 맡았던 소소반 친구들을 졸업도 못 시키고 유치원을 갑자기 그만 두게 되였다. 나를 믿고 어린 아이를 소소반에 맡긴 부모님들한테 교사로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아이들한테는 유치원이  처음으로 부모랑 떨어져서 지내는 낯선 공간이다. 하물며 유치원 교사는 아이의 엄마 역할을 대신하는 동시에 교사 역할에 친구 역할까지 했어야 했다.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부모랑 떨어져 선생님이 유일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정든 아이들한테 헤여져야 할 시간조차 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연길에서 살아갈 희망조차 보이지 않자 남편은 한국행을 선택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도 결국 남편의 뒤를 따라 한국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돌아가고 싶다. 딸아이가 있는 중국으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 그 곳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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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약속 |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딸아이가 있는 중국으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 그 곳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