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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을 해방하고 경비했던 156사, 어떤 부대인가?

2020-08-01 17:13:16     责编:박운     来源:央广网

    156사는 조선족 장병들이 대다수인 조, 한, 만 여러 민족 련합부대였다. 사장에 등극명(邓克明)이고 부사장에 조선인 전우(全宇)였다. 그 산하에 466퇀(원16퇀), 467퇀(원 17퇀), 468퇀(원 18퇀) 3개 퇀이 있었는데 466퇀과 467퇀은 거의 전부가 연변의 조선족 자제병들로 편성되고 468퇀은 한족이 다수인 길림성의 자제병들로 편성된 부대였다. 

 

156사 466퇀 2영

 

466퇀 련급이상 간부 기념사진

 

    156사의 전신인 독립6사가 길림시 구태에서 조직될 때 연변을 중심으로하는 길동군분구의 독립3퇀과 독립6퇀 그리고 길남군분구 71퇀이 각기 독립 6사 16, 17, 18퇀으로 편성되였다.

 

허영식과 전우

 

료심전역

 

    1948년 여름, 우리 동북인민해방군은 12보병종대, 1개 포병종대와 10여개의 독립사를 합쳐 70만에 이르렀다. 당중앙에서는 국민당군과의 최후결전의 첫단계를 동북전장으로 정했다. 장춘과 길림시주변에서 장기간 밀고당기는 간고한 지구전을 치러왔던 독립부대들이 이때 새롭게 독립 6사를 편성하게 되였다. 그중 연변의 자제병으로 구성된 독립 3퇀과 6퇀은 연변의 토비숙청을 마치고 장춘 쟁탈전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후 줄곧 길림시 주변에서 402고지 전투, 강밀봉 전투, 고점자전오가자 전투, 태평촌 추격전 등 국민당 60군과 크고작은 많은 싸움을 진행해 온 강철의 부대였고 길남의 71퇀도 장춘길림주변에서 싸워온 영웅적 부대였다.  

 

    독립 6사가 편성된후 아군은 길림시로부터 국민당 60군을 장춘으로 몰아내고 기타 야전군부대와 함께 장춘시를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장시기 포위에 견뎌내지 못한 장춘의 적은 1948년 10월19일 투항했고 장춘이 해방되였다. 11월에 동북인민해방군은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으로 개칭했고 독립6사는 중국인민해방군 43군 156사로 편성되였다. 그후 156사는 형제부대와 함께 만리장성을 넘어 관내로 진군하여 12월26일에 북평과 천진사이의 향하일대에 도착하였다. 

 

김성범련 정주입성

 

평진전역

 

    1948년 12월부터 우리 군이 북평과 천진의 적에 대해 전략적인 포위를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4야전군의 4개 병퇀과 화북야전군의 2개병퇀이 북평, 천진, 장기구, 신부안, 당고 5개 거점의 60만에 달하는 적을 각기 분할 포위함으로써 적이 남과 북으로 도망치는 통로를 차단해버렸다. 그중 156사가 소속된 43군은 향하 평안진 일대에 진주하여 북평의 적이 남으로 도주하는 길을 차단하였다.

 

49군 146사 포병부대

조선족 군부들 천진해방후 기념사진

 

    1949년 1월14일, 아군은 29시간의 격전을 거쳐 투항을 거부한 적 13만여명을 전부 소멸하고 천진을 해방했다. 천진의 적을 소멸한 다음 우리 군의 목표는 북평이였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북평의 국민당군은 드디어 평화적 개편방안을 접수하였다. 1월31일 인민해방군의 입성으로 북평은 평화적 해방을 선고하였다. 

 

평진전역에 지원 나갔던

길림성 훈춘담가대 기념사진

 

    평진전역이 승리적으로 결속되자 우리 군은 장강이남으로 진군하면서 국민당반동파를 철저히 깨끗하게 완전 소멸하려는 결심을 내렸다.

 

장강을 강행도하한 156사

 

    북평과 천진이 해방된 다음 4야전군이 남하할때 156사는 영광스럽게 선견병퇀에 편입되어 선두부대로 남하를 시작하였다. 하북하남을 지나 장강기슭에 도착한후 156사는 선봉부대로 도강작전임무를 맡게 되였다. 156사는 호북성 황강시 단풍(团风)을 급습해 적의 방어진을 헤치고 선박을 로획했다. 그리하여 아군의 선견부대는 이 선박을 리용해 장강을 건널수 있었다. 

 

467퇀 2영 전체장병 남창에서

홍수방지임무를 완수하고 남긴 기념사진

 

    제4야전군중 비교적 빨리 장강을 도하한 156사는 계속 남진하여 1949년6월4일, 강서성의 수부 도시이며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인민군대의 건군의 도시인 남창시에 진입했다. 그후 156사는 남창시와 구강시를 비롯한 전 강서성 경비임무를 맡았고 남창과 구강 두 군분구를 조직, 건설하였다. 

 

남창에서 156사 부분적 영웅모범들

 

156사 사직속

조선족 간부들 남창해방 기념사진

 

남창거리에서 156사 김준생

 

156사 위생대 간부들

남창을 떠나며 남긴 기념사진

 

전우들과 함께 남창에서

156사 경위원 김리덕(가운데)

 

전과

 

    156사 및 그 전신인 연변군분구 부대가 1946년 4월부터 1949년 8월말에 이르는 3년 반 기간 도합 적 25672명(정규군과 지방토비가 포함됨)을 소멸하였다. 그중 4134명을 격상격살하였다. 포로한 적은 10178명, 투항한 적은 11360명이였다. 

 

156사 2영 주요 조선족 간부들

남창을 떠나기전 남긴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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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을 해방하고 경비했던 156사, 어떤 부대인가?

156사는 조선족 장병들이 대다수인 조, 한, 만 여러 민족 련합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