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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사과배, 그에 대해 우리가 알고 몰랐던 것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것은?

2019-10-21 17:20:00     责编:최월단     来源:央广网

요즘 가장 먹고 싶은 고향 과일은?

고향에 있을적엔 별로 먹지 않았으나 고향을 떠난지 10년이 되니 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고향의 과일이 있다. 

아삭하고 시원하며 또 아주 달콤한 그 과일... 바로 사과배이다. 

요즘 연변에 가면 겉보기에는 아주 투박하지만 맛은 놀라울 정도로 달콤한 사과배라는 과일이 한창이다. 사과배는 연변의 유명한 특산일 뿐만아니라 조선족들이 이 땅에 정착해 살아온 력사를 상징하는 과실(果实)로서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달콤한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한다. 

고향에 있을때 별로 먹지 않았던 사과배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 십수년을 한 지금에는 가장 그리운 고향맛의 하나로 되였다.  

요즘 부모님이 사전 통지 없이 보내주신 사과배를 먹다가 오래동안 잊고 지냈던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에 감동되여 이 기사를 구상하게 되였다. 

사과배의 력사는 1921년 최창호 농민의 집마당에서 시작되였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연변의 사과배는 최창호(崔昌浩 1897-1967)라는 분이 처음 재배한 과일이라고 한다. 

최창호는 조선 함경북도 경성군 주남면 태생이고 부친 최병일씨를 따라 1909년에 중국 안도현 경내로 이주했으며 그후 다시 룡정시 로투구진 소기촌(小箕村 - 지금 勇进村이라 부름)에 정착했다고 한다. 

1959년 출판된 “연변사과배”라는 책에 담은 최창호 생가와 사과배나무

1959년 길림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된 “연변사과배”라는 농업기술서적의 기록을 보면, 1921년 최창호는 동생 최범두(崔范斗)가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가져온 우량종 배나무 가지 4대(6대라는 경우도 있고 4대라는 경우도 있음)를 돌배나무에 접목시켰다고 한다. 

첫해의 혹독한 겨울을 겪고 살아 남은 3그루의 나무는 최창호의 손끝에서 겨우 살아났고 1927년부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세그루의 나무는 현재 우리가 먹고있는 달콤한 사과배의 원조 나무(母本树)가 되였고 지금까지도 그중의 한 그루가 살아 남아 있다. 

연변사과배는 이렇게 98년의 력사를 가진 연변의 특산이다. 

사과배는 배의 일종일텐데 왜 ‘사과+배’라고 부르는걸가??

사과배를 드신 분들은 모두 알겠지만 사실 사과배는 사과의 맛이 조금도 없는 배이다. 그냥 배라는 과일의 일종이다. 

많은 경우 사과배라는 이름때문에 “사과나무 가지를 배나무에 접목시키지 않았냐”라는 의혹을 가질수 있겠지만 사실 사과배는 그냥 배나무가지를 돌배나무에 접목시킨 과일로서 그냥 배의 한종류이다. 

현재 사과배는 중국에서 중국우량품종배(中国优良品种梨)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북방배 중의 꽃(北方梨中之秀)”이라는 고운 명칭을 가지고 있다. 

류연산의 “사과배와 조선족”이라는 글을 보면 사과배는 비록 돌배나무에서 자라난 배이지만 돌배에 비해 비할바 없이 좋다는 의미에서 처음에는 “참배(真梨)”라고 불렀다고 썼다. 

또 1989년 출판된 “사과배”라는 책과 룡정시 농촌농업국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952년 전까지 사과배는 민간에서 “大梨”, “青梨”, “黄梨” 등으로 불리웠다. 

하지만 1952년에 이르러 사과배가 새로운 품종으로 확인되였고 또  주덕해동지가 사과배 재배를 중시하며 이 과일의 이름을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당시 사람들은 이 배의 색상이 붉고 또 얼핏보면 사과의 모양을 가졌다고 해서 “사과배”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사과배는 조선족의 자랑이다!

1930년대 사과배라는 품종이 처음으로 나온후 로투구진을 중심으로 연변지역에서 재배되였다고 한다. 관련 기록을 보면 1949년에 이르러 연길, 룡정, 화룡, 왕청, 훈춘 등 지역에 사과배 나무가 재배되였는데 그 면적은 105무, 생산량은 19톤좌우였다고 한다. 

1989년 출판된 “사과배”라는 책과 룡정시 농촌농업국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952년 주덕해동지가 연변사과배라는 이 우량종 과일을 대대적으로 재배할것을 제창하며 료녕, 길림 등 여러 지역에서 기술인재를 초빙하여 사과배 재배기술을 연구했고 여러개 국영과수농장을 세웠다고 한다. 

농민원예가 최일선 - 70년대 촬영작가의 작품

이로해 지난세기 50년대부터 사과배는 점차 연변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되였으며 료녕, 흑룡강, 하북, 산서, 섬서, 하남, 내몽골, 감숙 등 지역과 구쏘련, 벌가리아 등 나라들에서도 연변사과배를 인입해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변사과배 재배시스템 농업문화유산명록으로

연변 사과배가 진정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개혁개방후였다. 1988년 전국 30여개 우량배품종선발에서 연변사과배는 “梨中之王”이라는 칭호를 획득했고 1995년에 룡정시는 “중국사과배의 고향”이라는 칭호를 받게 됐으며 2015년에는 연변사과배 재배시스템은 중국 중요 농업문화유산명록에 이름을 올렸다. 

2019년 통계를 보면 룡정지역에만 사과배 재배면적은 2450헥타르, 백만그루 좌우의 과수에서 매년 2.8만여톤의 사과배가 생산되고 있다. 

사과배는 우리민족 정착 력사를 보여주는 특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수필, 론문들에서 사과배는 우리민족의 정착력사를 보여주는 특산이라는 내용을 볼수 있다.

우리민족과 관련된 영화, 문학, 촬영 등 작품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요소가 사과배와 사과배꽃이라고 할수 있다. 

특히 사과배꽃이 만발한 과수원에서 한복을 입은 녀성의 이미지는 수많은 연변을 소개하는 기사들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진이다. 또 최근 몇년간 룡정에서 진행하고 있는 배꽃아가씨 선발 등 행사들도 사과배라는 이 문화적 산물을 진일보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조선반도에서 넘어온 배나무 가지를 연변의 산에서 자라난 돌배나무에 접목하여 속살이 희고 부드럽고 달콤한 사과배를 만들어낸 것처럼 조선반도에서 건너온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의 문화의 가지(树枝)를 연변이라는 이 황량한 황무지에 접목시켜 황페해진 땅을 비옥한 옥토로 개간해 벼를 심고 또 거친 산과 들에 향기로운 과일과 꽃들을 피웠다. 

소중한 사과배 선조나무 3그루 중 아직 한그루 남아있다! 

중국 조선족 소설가 김혁 작가가 쓴 “중국 조선족의 애환 담긴 명물 사과배”라는 문장을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1950년초 국가 관련부문에서는 사과배의 육성과정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던 과정에 최창호 농민이 사과배의 원조나무 3그루를 육성해낸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3그루 사과배 원조나무 곁에 ‘사과배모수’라는 패쪽을 세웠다고 한다. 그 패쪽은 세월속에서 분실되였고 1987년 9월25일 룡정시 정부에서는 사과배의 연변에 대한 공헌을 기념하고저 최창호가 처음으로 육성해낸 사과배나무 앞에 ‘사과배 선조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문장에서 김혁 작가는 선조사과배나무의 고사(枯死)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며 최창호의 생가에 입주한 한족 촌민 관복재의 말을 빌어 “사과배의 선조나무라고 들었는데 돌보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는 현실을 밝힌적 있다. 

일전 룡정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 김승종은 룡정시 로투구진 영진촌 소기툰(龙井市老头沟镇勇进村小箕屯)에 위치한 연변사과배 선조나무와 최창호 생가를 찾았다고 한다. 

그가 보내온 1987년 9월25일 세운 비석사진을 보면 사과배 선조나무 3그루중 한그루가 이미 1987년에 말라죽고 2그루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하지만 1998년 9월25일 세운 비석을 보면 1987년부터 1998년사이 또 한그루가 말라죽었다. 

현재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한그루의 사과배 선조나무! 

사과배선조기념비

사과배 육성한 최창호 농민의 생가

현재 남은 이 한그루의 사과배 원조나무는 사과배의 력사와 우리가 이땅에서 살아온 력사를 립증하는 유일하게 아직 살아있는 증거로 되고 있다. 

비록 9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이 사과배 나무는 지금도 해마다 달콤한 사과배를 생산해내고 있다고 한다. 

사과배의 미래는 어데로? 우리의 미래는?? 

사과배는 지난 세기 90년대까지 연변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과일의 하나였지만 연변에도 전국각지의 다양한 과일들이 등장하며 사과배는 점차 제1의 보좌에서 밀려났다. 

최근 몇년간 연변의 여러기업들에서 사과배 김치, 사과배 술, 사과배 음료 등 신제품 개발에 힘을 몰붓고 있지만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홍보가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흔해서 먹지 않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먹고 싶어도 몰라서 혹은 없어서 먹지 못하는 딱한 처지”이다.

비록 웨이상(微商), 토우보우(淘宝) 등 인터넷 거래플랫폼에서도 여러 상가들이 사과배와 그 개발제품들을 팔고 있지만 사과배 산업의 발전에는 효과가 미비하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룡정시 서시장에서 사과배 팔고 있는 농가구(김승종 찍음)

룡정 삽합 사과배 산지증명서. 

룡정시 삼합 사과배가 유명해지며 많은 상가들이 다른 곳의 사과배를 

삼합 사과배라고 거짓 판매하고 있어 

촌위원회에서 산지 증명서를 만들었다고 함.

(김승종 취재)

현재 룡정지역 사과배 재배 및 판매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연변화룡그룹유한회사의 관계자가 피로한데 의하면, 예전에는 화룡그룹과 협력하는 사과배 재배농가 중 조선족 농가가 99%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출국하거나 농사일을 그만두다 보니 사과배를 재배하는 조선족 농가가 1%도 안된다고 한다. 또 사과배의 질과 생산량은 예전보다 높아졌지만 경쟁이 심하다 보니 사과배 재배농들의 수입 역시 락관적이지 못하고 사회 각계의 주목과 관심도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한다.

기사의 결말은 어떻게 쓰면 좋을가, 고민에 고민을~

기사의 결말을 작성하며 여러번 수정하다가 전부 삭제했다. 

사과배 얘기를 하다 뭔 조선족 미래에 대한 고민이냐고 어이없어 하실분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과배가 우리의 력사를 책보다 더욱 생동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   

여러분께 이 기사의 결말을 맡겨드려도 괜찮을가요? 

댓글로 남겨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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