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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은 잊지 않을 것이다” 항미원조의 녀 영웅 오형

2020-09-14 10:37:00     责编:최월단     来源:중앙인민방송국

지난세기 50년대의 영화 “상감령”은 조선전쟁에서 용감히 싸운 보가위국의 지원군 전사들의 영웅사적을 진실하게 기록하였다.

영화속 갱도에서 중상을 입은 부상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위생원 왕란의 형상은 실존하는 인물에 근거하여 새로 부각한 형상이다. 왕란의 원형은 바로 항미원조전쟁의 녀 영웅 오형이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지원군 전사들의 목숨을 구했던 오형은 만년에도 계속 사심없는 자원 봉사자로 살고있다. 비록 천진에서 60여년간 생활하였지만 오형은 여전히 사천사람의 구미와 시원한 성격을 보존하고 있었다. 현재 87세가 되였지만 오형의 머리속에는 17살 때 참군하던 정경이 또렷히 살아있었다. 당시 부대 령도는 오형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리유로 참군을 거부했지만 고집이 센 오형은 손가락을 찔러 혈서까지 쓰면서 자기의 참군 결심을 보여주었다. 그의 과감한 행동은 드디어 령도를 설득 시켰다.

1951년 오형은 지원군 15군 45사 감공1련의 위생원으로 항미원조 제일선에 나갔다. 1952년 년말 참혹한 상감령 싸움터에서 오형은 모습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불에 탄 전사를 발견했다. 부상자가 아직 미약한 맥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눈을 녹여 한방울 한방울 전사의 입에 먹여주었다.

45년후 서달이라고 부르는 이 전사가 드디어 자기를 구해준 오형을 찾아왔다. 가슴에 메달을 가득 단 두 전사는 감격으로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1954년 장춘영화촬영소에서 영화 “상감령”의 제작을 준비하면서 영화 작가들은 오형과 전우 왕청진의 사적으로 왕란이라는 인물형상을 창조했다. 오형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전쟁의 나날들이 머리에 떠오른다고 했다.

전쟁 승리후 선후하여 두차례 3등공과 한차례 2등공을 세운 오형은 무한시의 한 부대병원에 조동되였다. 그리고 제대한 후 그는 남편을 따라 천진으로 왔다. 1989년 퇴직한지 얼마 안되는 오형은 천진시 평화구 지원자협회에 신청해 최초의 자원봉사자로 되였다.

그후부터 백발로인 된 오형은 흰 가운을 입고 어깨에 약상자를 메고 지역사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지금도 오형은 청진기를 곁에 지니고 다닌다. 그에게는 또 옛날 영화를 보는 습관이 있다. 오형은 영화 “상감령”을 수없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속 주제곡 “나의 조국”은 그가 가장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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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은 잊지 않을 것이다” 항미원조의 녀 영웅 오형

지난세기 50년대의 영화 “상감령”은 조선전쟁에서 용감히 싸운 보가위국의 지원군 전사들의 영웅사적을 진실하게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