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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 돌아오고 싶다’는 념원을 전했던 타이 탁신 전 총리의 가석방

2024-02-19 13:51:00     责编:최월단     来源:중앙인민방송국

현지 시간으로 18일 복역 중이던 탁신 친나왓 타이 총리가 가석방됐습니다.

과거 그는 큰 주목을 받던 타이의 부호로 두 차례 총리를 지냈고 해외로 망명했다가 귀국 직후 옥고를 치렀습니다.

아버지의 석방 소식이 전해지자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딸 프아타이당 당수 패통탄은 소셜미디어에 “지금은 아버지가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낼 때”라고 말했습니다.

탁신 친나왓은 1949년 7월 26일 타이 치앙마이에서 태여났습니다. 24세에 방콕 경찰학교를 졸업한 탁신은 그해 정부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가 형사사법 석사,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일찍 탁신은 사업에 뛰여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82년 탁신은 시나왓컴퓨터서비스투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4년 후 타이 정부는 민간 운영을 위해 통신 산업을 개방했고 시나왓은 사업 허가를 받은 최초의 민간 통신회사 경영자가 되였습니다.

사업이 나날이 성장하면서 탁신은 한때 타이의 최고 부자 반렬에 올랐습니다. 1990년대에는 시나왓컴퓨터서비스투자회사 상장과 함께 타이의 당시 TV 위성 안테나와 휴대전화 산업을 독점했습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뒤 정계에 입문한 탁신은 타이 외무장관과 부총리 등 직을 지냈습니다.

1998년 탁신은 프아타이당을 창당해 의장을 맡았습니다. 3년 뒤 타이 하원에서 옛 정당인 민주당을 누르고 국회 단일 대당이 되였습니다.

2001년에는 타이의 첫 민선 정부를 이끌며 총리에 당선됐고 2005년 또 한차례 순조롭게 총리에 당선됐습니다.

탁신의 정책은 대중의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재임 기간 탁신은 타이를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었습니다. 강력한 마약단속과 조직폭력배 퇴치 등 사회 고질병을 치유하고 타이 남부의 무장분리운동에 대해서도 엄정 대응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2006년 9월 타이 군부의 갑작스러운 쿠데타로 탁신은 실각하고 10여 년간의 해외 망명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도 탁신은 장기간 타이 정계에서 퇴출했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2008년 한시적 귀국을 제외하고는 계속 망명 생활을 해온 탁신은 복권 부정 사건과 은행 불법 대출 등 사건에서 횡령 혐의로 기소되였습니다.

탁신은 2008년 타이를 떠나기 전 “행운이 따른다면 타이 땅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2023년 8월, 탁신은 마침내 망명 생활을 마치고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방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착륙 직후 탁신은 타이 경찰에 의해 타이 대법원으로 압송되여 판결 청문회에 출석했습니다.

타이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탁신의 여러 죄목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8년을 선고받았습니다.형이 확정된 지 몇시간 만에 탁신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현지 언론은 탁신이 고혈압으로 투옥 당시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족들에 따르면 탁신은 수감된 몇 달 동안 두 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복역 기간 타이 국왕은 특별사면을 결정하고 형을 1년으로 줄였습니다. 2024년 2월, 타이 법무장관은 탁신이 70세가 넘고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으며 6개월 이상 복역 중이라는 리유로 같은 달 가석방될 것이라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고희를 넘긴 탁신이 풀려난 현시점에도 그를 둘러싼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10년 전 형법 112조 위반 혐의로 법적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탁신은 혐의를 부인하고 검찰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공정한 대우를 요구했지만 검찰이 이 사건을 법정에 세울지는 미지수입니다.

”행복한 로후를 보내기를 바란다”는 딸 패통탄의 축원대로 이번 석방이 편안한 로후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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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 돌아오고 싶다’는 념원을 전했던 타이 탁신 전 총리의 가석방

현지 시간으로 18일 복역 중이던 탁신 친나왓 전 타이 총리가 가석방됐습니다.